[문화카페] 일본에서 경험한 K-POP의 또 다른 영향력
필자는 현재 일본 나고야(名古屋)에 체류 중이다. 학교 측의 제작 지원을 받아 네 명의 학생들과 함께 30분 분량의 다큐멘터리 영상물을 만들기 위해 현지에서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출장을 통해 카메라에 담으려는 바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청춘’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일본 청년들의 삶과 고민, 가치관과 미래상, 그리고 한국에 대한 생각 등에 관한 것들이다. 다루려는 주제가 추상적일 뿐 아니라 내용의 범주도 방대한 편이어서, 여러 대도시를 돌아다니며 많은 젊은이들과 직접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지난 주 금요일 출국 당시만 하더라도 막막한 감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첫 번째 행선지인 도쿄(東京)에서 만난 일본인 지인의 말을 듣고 희망이 생겼다. 그는 SM엔터테인먼트 소속의 4인조 여성 아이돌 그룹인 에스파(aespa)의 콘서트가 8월 5일 토요일 오후 6시와 다음날 4시에 도쿄돔에서 있을 예정이니, 일정이 겹치는 토요일에 같이 가보자고 제안했다. 듣고 보니 한국과 한국문화에 흥미를 지닌 일본 젊은이들을 인터뷰할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우리 일행은 도쿄 시내의 대표적 명소들을 차례로 방문할 계획을 변경한 뒤 도쿄돔으로 향했다.
도착 시간은 2시 반쯤이었는데, 도쿄돔 주변은 이미 콘서트를 보려고 몰려든 이들의 수많은 행렬로 인산인해를 이룬 상황이었다. 그리고 사람들 다수가 그룹 전체나 멤버 개인의 모습이 그려진 에스파의 ‘굿즈’를 착용 또는 소지하고 있었는데, 이를 통해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에스파의 히트곡인 듯한 음악 소리도 곳곳에서 들려왔고, 흥겹게 리듬을 타는 일부 관람객의 몸짓도 시야에 들어왔다. 이제껏 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해온 K-POP 가수들의 외국 콘서트 행사장의 전형적인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하지만 취재를 위해 좀 더 유심히 살펴보니, 다소 예상을 뒤엎는 광경들이 펼쳐져 있기도 했다. 우선, 콘서트장을 홀로 찾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이들은 주로 무선 이어폰을 귀에 꼽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서 4시에 개시될 관내 입장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또한, 걸그룹의 콘서트임에도 여성 팬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30대 이상의 연령층으로 보이는 관람객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이를 통해, 디지털 매체 및 통신 기기의 발달로 인해 대중문화 분야에서 역시 성별과 세대의 경계를 넘나들며 누구라도 팬덤을 형성하는 일이 가능케 됐음을 알 수 있었다. 아울러 이러한 현상은, “시공간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를 초월한 채 사람들 개개인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 정도로 합의를 이뤄놓은 청춘에 대한 제작진의 개념 설정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도쿄돔에 모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우리 일행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 및 한국문화를 둘러싼 관심사나 이해도를 묻는 질문에 대한 사람들의 답변이 제작진의 추측을 빗나가버렸기 때문이다. 인터뷰에 응한 일본인들 가운데 한국이나 한국문화에 정통한 경우가 거의 없었으며 오히려 상당수는 별다른 지식과 정보를 갖추고 있지도 않았던 것이다. 결국 다큐멘터리를 장식해줄 멋진(?) 인터뷰 장면은 찍지 못한 채 촬영이 마무리되고 말았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무엇이 문제였고 어디서 어긋났는지를 차분히 되새겨봤다. 그리고 K-POP을 좋아하는 외국인이라면 한국과 한국문화에도 각별한 관심과 이해를 지니고 있으리라는, 나아가 그런 상태이기를 바라는 당위적 기대가 결정적 요인이 됐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명칭에서부터 드러나듯, K-POP은 이미 한국 대중가요를 벗어난 그 너머의 영역에 자리한다. K-POP 그룹 중 하나인 에스파의 경우만 하더라도, 멤버들 자체가 한․중․일 다국적으로 구성돼 있고 노래 가사는 상당부분 영어로 이뤄져 있다. 활동 지역 또한 매우 넓은데, 8월 13일부터는 미국, 남미, 유럽 등을 도는 ‘월드 투어’ 일정이 잡혀 있기도 하다.
끊임없이 세상은 바뀌고 환경이 달라짐에 따라 인간의 사고도 변화를 요구받는다. 원하든 그렇지 않든 인간이라면 누구나 숙명처럼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 K-POP을 비롯한 대중문화에 대한 인식의 지평이 ‘내셔널’한 것에서 ‘글로벌’한 것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는 근본적 이유라 할 만하다. 이와 같은 깨달음 덕분에 이번 다큐멘터리 제작 콘셉트와 인터뷰 내용도 보다 소통 가능한 것으로 재설정하게 됐다. 이곳에서 경험한 K-POP의 또 다른 영향력 덕분일까, 오사카(大阪)와 교토(京都) 일정을 거쳐 어느덧 촬영 막바지에 다다른 현재까지 일본 스케줄은 다행히 순항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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