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만년 전 유럽 인류 사라진 원인 찾아냈다…"우리가 몰랐던 빙하기"

윤현성 기자 2023. 8. 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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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만년~90만년 전 유럽 내 고대 인류 화석 발견 안돼
북대서양 수온 13℃ 급감…유럽 기후 건조한 반사막화
유럽 내 첫 대규모 빙하기 기존 추론보다 20만년 앞당겨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 연구단 악셀 팀머만 단장(부산대 석학교수) 연구팀은 약 112만 년 전 발생한 북대서양의 냉각화 현상과 그에 따른 기후·식생·식량 자원의 변화가 당시의 유럽을 '무인 지대'로 만들었다는 연구 결과를 11일 발표했다. (사진=IBS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윤현성 기자 = 약 110만년 전 유럽 대륙에서 나타났던 '인류 멸종' 현상의 원인이 파악됐다. 그간 고대 인류 종족의 하나인 '호모 에렉투스'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유럽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추정돼왔다. 국내 연구진의 연구 결과 이같은 멸종 원인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112만여년 전의 강력한 빙하기-한냉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 연구단 악셀 팀머만 단장(부산대 석학교수) 연구팀은 영국 임페리얼컬리지런던 연구팀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약 112만 년 전 발생한 북대서양의 냉각화 현상과 그에 따른 기후·식생·식량 자원의 변화가 당시의 유럽을 '무인 지대'로 만들었다는 연구 결과를 11일 발표했다.

약 10만년 전 멸종한 고대 인류인 호모 에렉투스는 180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중앙 유라시아로 이주했다. 이후 중앙 유라시아에서 서유럽으로 점차 거주지를 확장해 약 150만년 전 이베리아반도(남유럽)까지 도달했다. 조지아·러시아·이탈리아·스페인 등에서는 이같은 고대 인류의 이주와 서식 시기를 설명하는 시대별 화석 증거들이 발견됐다.

그런데 110만년~90만년 전 사이 고대 인류가 유럽에 거주했다는 화석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호모 에렉투스가 계속 유럽에 터전을 두고 거주했으나 증거가 발견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약 120만년 전부터 증가한 강도 높은 빙하기로 인해 유럽 거주가 잠시 중단됐는지에 대해 학계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유럽에서 발견된 고대 인류의 거주 흔적들. (사진=IBS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고기후 대신 해양 퇴적물 분석으로 멸종 원인 파악…3000~4000년 걸친 한냉기 탓

연구진은 유럽의 초기 인류가 경험한 환경 조건을 이해하기 위한 연구를 수행했다. 200만년에 걸친 고기후-인간 서식지 모델 시뮬레이션과 포르투갈 해안의 'U1395' 해저 지역에서 습득한 '심해 퇴적물 코어' 자료를 결합했다. 이를 기반으로 인구 감소 현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간 전후의 기후 및 식생을 재구성했다.

연구진은 처음에 고기후 자료를 분석했으나 알려진 고기후 자료들을 확인한 결과 아무런 특이사항이 포착되지 않았다. 이에 고기후가 아닌 해양 퇴적물 코어로 눈을 돌렸고, 그 결과 호모 에렉투스 멸종의 원인이 될 수 있는 현상이 발견됐다.

특히 연구진은 해양 퇴적물 코어에 저장된 작은 식물 화분(꽃가루)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강과 바람은 인접한 땅에서 작은 화분을 바다로 옮기고 이는 깊은 바다에 가라앉는다.

이렇게 축적된 수천개의 화분 성분을 분석하면 지역적 식생과 기후를 유추할 수 있다. 예컨대 온대림 화분은 따뜻한 기후였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는 식이다. 화분 성분과 함께 작은 해조류에 남겨진 유기 화합물도 분석했다. 유기 화합물은 수온의 영향을 받아 불포화 정도가 달라지는데, 그 정도를 분석하면 해수의 온도 변화를 유추할 수 있다.

조사 결과 연구팀은 112만7000여년 전 약 20℃ 정도이던 동부 북대서양 인접 지역의 수온이 7℃까지 낮아지고 염분도 상당히 줄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빙하기 종료 시점에 나타나는 '한냉기(terminal site)' 현상의 증거가 된다. 기존에도 학계에서는 약 200만년 전부터 지구에서 규모가 약한 빙하기가 찾아왔던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유럽 대륙의 첫 대규모 빙하기는 약 90만년 전으로 추정돼왔으나, 이번 연구 결과 강한 빙하기가 112만년 전에도 이미 발생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난 셈이다. 112만년 전의 빙하기-한냉기 기간이 약 3000~4000년 정도로 매우 짧아 기존의 저해상도 코어로는 포착이 안됐던 것으로 보인다.

대서양 수온 급감하며 유럽의 반사막·대초원화…인류 서식 적합성 반토막 나

호모 에렉투스 멸종 이후 빙하에 더 잘 적응한 '호모 안테세소르'가 유럽 정착

약 112만년 전 유럽의 인구 감소의 원인이 된 북대서양의 냉각화 현상 추이. (사진=IBS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같은 북대서양의 급격한 냉각화가 남·서유럽의 식생을 초기 인류가 거주하기 부적합한 반사막(사막과 유사하나 강수량이 많은) 환경으로 바꿔놓았다는 게 연구진의 분석이다. 이베리아 반도의 경우 따뜻한 온대림에서 건조하고 차가운 대초원 기후로 변모했다.

이어 연구팀은 초기 인류가 급격한 기후 변화에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정량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한냉기 기간에 대해 또 다른 기후 시뮬레이션을 수행했다. 심해 순환(대서양 열염순환)의 붕괴와 급격한 냉각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빙하의 붕괴'를 변수에 추가시켰다.

급격한 단주기 기후 변화는 빙상의 갑작스러운 확장과 후퇴로 인해 주로 발생한다. 연구진은 이를 고려해 기존 기후 모델 실험에 유럽 빙상의 갑작스러운 붕괴로 생성된 담수를 북대서양에 추가함으로써 더 정밀하게 한냉기 현상을 모사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보수적으로 추정해도 인류의 서식 적합성이 50% 가량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처럼 약 112만년 전 유럽 대륙에 나타난 거대한 냉각 현상이 90만년 전의 빙하기 조건보다 더 강력했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호모 에렉투스의 서식에 적합한 환경 조건을 찾기 위해 화석 및 고고학적 증거를 기후 데이터와 연결한 첫 번째 연구다. 연구진은 한냉기 시기 호모 에렉투스는 남유럽의 많은 지역에서 생존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호모 에렉투스의 멸종 이후 유럽 대륙에 등장한 고인류는 '호모 안테세소르'다. 약 90만년 전 유럽은 증가한 빙하 상태에 더 잘 적응한 호모 안테세소르 집단에 의해 다시 인구가 증가했다.

악셀 팀머만 단장은 "북대서양 온도 변화는 남유럽의 식생과 인간의 식량 자원에 밀접한 영향을 미친다"며 "이번 연구는 인류 역사가 과거 기후 변화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증거에 한 줄을 덧붙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11일(한국시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 IF 56.9)'에 실렸다. 연구단은 기후 시뮬레이션과 고고학 자료를 결합해 초기 인류의 역사를 재구성한 연구로 올해만 총 3개의 논문을 사이언스에 게재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hsyhs@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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