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뼛조각 소녀 출생의 비밀은... 과학이 풀어낸 고대 인류 '러브 스토리'

이현주 2023. 8. 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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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 년 전 '데니' 부모는 서로 다른 호모종
데니소바인 아버지, 네안데르탈인 어머니
슈퍼컴퓨터로 수십만 년 전 기후·식생 분석
간빙기 때 서식지 겹쳐 이종교배 환경 조성
고대 인류인 데니소바인과 네안데르탈인, 현생 인류와 같은 종으로 분류되는 호모 사피엔스가 계통학적으로 같은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음을 표현한 그림. 노벨상위원회 제공

2012년 러시아 베리아 지역 알타이산맥의 '데니소바 동굴'에서 한 소녀의 뼛조각이 발견됐다. 뼛조각을 발견한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는 뼈의 유전자(DNA) 정보를 분석했다. 그 결과 소녀는 약 5만 년 전 13세 나이로 사망했으며, 멸종한 고대 인류인 데니소바인 아버지와 네안데르탈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종'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서로 다른 호모종(인간의 조상으로 분류되는 종족)에 속하는 고대 인류들이 자식을 낳았다는 강력한 증거가 된 그녀는 학계에서 '데니'(Denny)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데니소바인과 네안데르탈인은 어떻게 만나 데니라는 '결실'을 맺게 된 것일까. 그간 데니소바인은 시베리아 지역과 우랄산맥, 알타이산맥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됐고, 네안데르탈인은 유럽 대륙과 아프리카 북부,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지역에 주로 거주했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데니소바인과 네안데르탈인의 서식지가 어떤 시기에, 어느 지역에서 겹쳐 상호교배가 일어난 것인지는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었다.

최근 국내 연구진이 슈퍼컴퓨터 기반 고기후 연구를 통해 두 호모종의 서식지가 겹친 시기와 위치를 밝혀냈.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연구단의 이 연구 결과는 11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렸다.


네안데르탈인-데니소바인 다리 놔준 온난화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연구단은 고대 인류인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이 이종교배를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와 서식지를 밝혀내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빨간색으로 표시된 곳이 네안데르탈인, 초록색으로 표시된 곳이 데니소바인의 서식지로 추정된다. 기후 온난화로 인해 서식지가 중첩된 곳에서 이종교배가 일어났을 것이라고 연구단은 분석했다. IBS 제공

고대 인류에 대한 연구가 통상적으로 화석 표본과 DNA 연구를 기반으로 이뤄지는 것과 달리, 연구단은 슈퍼컴퓨터를 활용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데니소바인과 네안데르탈인이 살기에 적합했던 서식지를 유추해냈다. 과거의 지구 공전궤도, 온실가스, 대륙빙하의 변화 수치를 슈퍼컴퓨터에 입력하면 당시의 기온, 강수량, 구름의 양 등이 도출되고, 이를 통해 데니소바인과 네안데르탈인이 선호했던 서식 환경을 파악한 것이다. 이탈리아 기후학자와 고생물학 연구팀도 연구에 동참했다. 그 결과 데니소바인은 유라시아 대륙 북동쪽의 툰드라 식생 및 냉대림(冷帶林) 지역을, 네안데르탈인은 유라시아 대륙 남서부의 초원지대와 온대림(溫帶林)을 선호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이어 연구진은 약 21만 년에서 32만 년 전 사이 간빙기에 기후가 온화해지면서, 네안데르탈인의 선호 서식지인 온대림이 북유럽에서 유라시아 중앙까지 확장됐을 것으로 봤다. 바로 이때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서식지가 중첩됐고, 상호교배가 이뤄졌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기후 온난화가 '오작교' 역할을 한 셈이다. 악셀 팀머만(부산대 석학교수) IBS 기후물리연구단장은 "두 집단이 서식지를 공유했을 때 상호작용이 늘어나 교배 가능성도 함께 높아졌을 것"이라며 "빙하기와 간빙기 사이 변화가 오늘날까지 유전적 흔적으로 남아 있는 인류의 '러브 스토리'를 만들었다"고 해설했다.


사라진 호모 에렉투스 미스터리... 수온이 원인

IBS 기후물리연구단은 112만 년 전 북대서양 냉각화로 유럽 남서쪽 일대 인구가 감소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11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게재했다. 그래프의 빨간 선은 슈퍼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계산된 북대서양 수온, 파란 선은 해양 퇴적물을 통해 분석한 수온으로, 112만 년 전 수온이 크게 떨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IBS 제공

아울러 연구단은 약 112만 년 전 남유럽에서 고대 인류인 호모 에렉투스가 사라진 배경도 입증했다. 이 연구 결과 역시 고대 인류 이종교배 논문과 함께 '사이언스'에 동시에 게재됐다.

호모 에렉투스는 약 18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유라시아 중앙부로 이동해 서유럽과 남유럽인 이베리아반도까지 영역을 넓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모 에렉투스의 화석은 조지아, 러시아,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 발견됐다. 그러나 110만 년 전부터 90만 년 전 사이에는 호모 에렉투스가 유럽에 거주했다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아 학계의 논쟁거리가 됐다. 거주는 했으나 증거가 발견되지 않은 것인지, 강도 높은 빙하기가 도래해 아예 거주지를 옮긴 것인지가 불분명했다.

연구진은 이를 규명하기 위해 200만 년에 걸친 고기후·서식지 모델 시뮬레이션을 시행했다. 더불어 포르투갈 해안에서 습득한 해양 퇴적물도 분석했다. 해양 퇴적물에 축적돼 있는 수천 개의 꽃가루 성분을 조사하고, 해조류에 남겨진 유기화합물을 분석해 당시 식생과 기후를 유추해낸 것이다. 연구진은 20도에 달했던 북대서양 인접 지역 수온이 약 112만7,000여 년 전 7도까지 낮아진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빙하기 종료 시점에 나타나는 '한랭기 현상'의 증거다. 연구단은 이 때문에 유럽 서남부가 인류가 거주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으로 바뀌었으며, 이런 현상이 4,000여 년간 지속됐을 것으로 봤다.

연구단은 슈퍼컴퓨터 기반 고기후 시뮬레이션과 고고학의 결합을 통해 고대 인류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연구를 해 오고 있다. 지난 5월 300만 년에 걸친 고기후 시뮬레이션 연구 결과를 내놓은 것을 포함해 올해만 총 세 차례나 '사이언스'에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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