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자본시장의 '죄와 벌'
선진국 엄중처벌, 韓은 솜방망이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제재 강화
최대 2배 환수하게 된 부당이득
선진국처럼 피해자 보상 활용을
신진영 자본시장연구원장
신약 사도행전 5장 1절에는 아나니아와 삽비라라는 부부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부부는 자신의 땅을 모두 팔아 헌금하기로 약속했지만 이를 어기고 일부를 감췄다. 하나님을 속인 이 부부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즉시 죽게 된다. 이 구절에 대한 신학적 해석은 개인의 불경한 행동이 공동체 전체에 중대한 해를 끼칠 수 있으며 특히 그것이 고의적이고 노골적인 방법으로 행해졌을 때 치명적인 죄가 된다는 점이다. 절대자인 하나님을 속인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서구 자본주의 형성에 당연히 기독교는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신학에는 문외한이지만 금융을 전공한 학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사도행전의 예는 미국 등 선진국이 자본시장 불공정행위에 대해 엄중한 처벌을 부과하는 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자본시장의 불공정행위는 시장의 신뢰를 무너뜨려 ‘개인의 불경한 행동이 공동체 전체에 중대한 해를 끼칠 수’ 있으므로 시장에 대한 ‘치명적인 죄’라고 할 수 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입장에서는 자신의 전 재산 중 일부만 남기고 모두 헌금했는데 약간의 금액을 속였다고 해서 이렇게 큰 벌을 받아야 하느냐고 자신들의 억울함을 항변할 수 있다. 사실 이 구절의 핵심은 금액의 크기가 아니다. 선진국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처벌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부당이득 규모와 상관없이 그 행위 자체가 엄중한 처벌 대상이다. 그리고 부당하게 취득한 이득은 이후 벌금, 과징금 등을 통해 환수되게 된다.
지난 6월 30일 주가 조작 등 자본시장 불공정거래에 대한 제재를 대폭 강화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불공정거래로 얻은 부당이득의 최대 2배를 환수하는 과징금 제재가 신설된 것이 눈길을 끈다. 부당이득이 없거나 산정이 곤란한 경우에는 40억원을 한도로 하게 됐다. 두 번째로는 부당이득의 산정 기준을 ‘위반행위로 얻은 총수입에서 총비용을 공제한 차액’으로 명시했다. 부당이득은 불공정행위에 대한 벌금, 징역 가중 등의 기준이 되지만 그 구체적인 기준이 없었는데 이를 명확히 보완한 것으로 평가된다. 세 번째로 이번 개정안에는 불공정거래 행위자가 위반 행위를 자진 신고하거나 타인의 죄에 대해 진술·증언하는 경우 형벌이나 과징금을 감면할 수 있도록 하는 일명 플리바겐이 도입됐다. 효과적인 불공정거래 적발·예방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불공정행위에 대한 처벌이 매우 약한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매년 100건 정도가 자본시장 불공정행위로 금융위원회와 증권선물위원회에서 조치가 이뤄진다. 2016년부터 2021년까지 불공정행위로 증권선물위가 수사기관에 고발·통보한 854명 중 55.3%는 재판에 넘겨지지 않았다. 2020년부터 2021년까지 대법원은 불공정행위 48.5%에 대해선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결과적으로 불공정행위를 저질렀어도 최악의 경우 1~3년 정도의 실형을 사는 데 그치는 것이다.
선진국과 달리 형사 처벌 정도를 부당이득 규모와 연계하는 게 문제다. 더 큰 문제는 부당이득액 산정 자체가 쉽지 않고 법원은 ‘부당이득 액수가 불명확한 경우 위반자에게 유리하게 산정한다’는 원칙을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자본시장법 개정의 핵심은 부당이득의 최대 2배를 환수하는 과징금 제재를 신설하고 부당이득 산정 기준을 ‘총수입-총비용’으로 규정 법률에 명시한 것이다. 그러나 개별 위반 행위의 유형별 구체적인 산정 방식은 자본시장법 시행령으로 정한다고 해 기존 법률과 상충할 수 있다는 논란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선진국의 경우 법 위반의 경중, 해당 행위로부터의 취득 이익 또는 회피 손실의 인과관계 정도, 위반자의 고의성 및 상습성, 그리고 위반자의 재무 능력 및 수사 협조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해 벌금과 과징금을 결정한다. 우리나라도 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환수된 수익은 기금에 적립돼 피해자 보상에 쓰이고 피해자들은 민사소송을 통해서도 보상받을 수 있다. 이런 제도 역시 향후 도입을 고려하는 게 좋을 것이다.
앞으로 자본시장법 개정 시행 과정을 통해 자본시장 불공정행위에 대한 강력한 수사와 처벌이 이뤄져 보다 투명하고 효율적인 자본시장으로 발전해 가길 기대해본다.
▶ 클래식과 미술의 모든 것 '아르떼'에서 확인하세요
▶ 한국경제신문과 WSJ, 모바일한경으로 보세요
Copyright © 한국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관은 삼성전자 팔았는데…개미는 5200억 매수, 누가 이길까
- "삶의 질이 확 올라갔다" 인기 폭발…MZ세대 새 유행 정체 [긱스]
- "시계 찾아주시면 2천만원 사례합니다" 도대체 얼마짜리길래
- 부산 고층 건물에 문어가?…'카눈' 피해 가짜 사진 또 떴다
- "네가 왕이 될 상인가"…아들까지 먹은 그 남자
- 윤도현 "3년 투병 마쳤다"…암세포 완치 판정 [건강!톡]
- 아이브 합류 '잼버리 K팝 콘서트'…"섭외는 KBS, 정부 요청 아냐"
- 텍사스 대형 산불, 추신수 1200평 집도 삼켰다…"너무 충격적"
- '음주' 김새론, 뮤직비디오 출연으로 복귀 시동
- 국악 사랑한 20대 해금 연주자, 3명에 새로운 삶 주고 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