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석재의 돌발史전] 집착에 해방을 許하라, 낙산사에서 얻은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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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의상대(義湘臺)에서 북쪽으로 놓여진 돌계단을 따라 몇 걸음을 걸어가면 절벽 바위 위에 전각 하나가 세워져 있습니다. 건물의 이름은 홍련암(紅蓮庵)입니다. 그런데 홍련암의 구조가 상당히 묘합니다. 바닥의 주변부만 땅에 닿아 있을 뿐, 그 가운데 바닥은 허공에 떠 있는 겁니다. 그 아래로는 파도가 들이치는 관음굴이라는 동굴이 있습니다.
이 사실을 극적으로 깨달을 수 있는 곳은 그 전각 안의 마룻바닥입니다. 예전에 바닥의 돗자리를 살짝 들어보면 손바닥만한 여닫이문이 마루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걸 열어본 사람들은 놀라기 일쑤였습니다.
바닥 구멍 아래로 푸른 파도의 포말이 넘실거렸던 겁니다. 바다입니다. 의상대사의 기도에 응답한 관세음보살의 형상이 동해바다에 가득찼다는 그 바다입니다. 마루 밑에 바다가 있다니! 상식을 벗어난 현상은,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다지 신기할 것이 없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경탄을 불러오기 마련입니다. 그때가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그곳에 같이 갔던 여학생들은 그 거대한 시멘트 관음보살상보다도 훨씬 신기했던지 연신 탄성을 질러댔습니다.
몇 년이 흘러 그곳에 다시 갔습니다. 동행들은 관동팔경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별반 볼 만한 것이 없는 낙산사에 적이 실망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그 전각으로 그들을 데려갔습니다. 마치 마술사라도 된 듯 의기양양했습니다. 봐라! 전 돗자리를 싹 들췄습니다.
근데, 아니? 돗자리 밑에 또 돗자리가 깔려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돗자리는 고정돼 있었습니다. 제가 당황한 표정으로 이곳 저곳 바닥을 들춰보고 있을 때, 한 나이 지긋한 보살(여성 신도) 한 명이 의상대 쪽에서 걸어오더니 호통을 쳤습니다.
“뭘 하고 있노! 거기서…”
그때 전 사태를 감지했습니다. 아하, 절에서 여길 못보게 막아놨구나. 이럴 수가 있나. 유홍준 교수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낙산사는 별반 남아있는 유적이 없고 (의상대사가 기도 끝에 동해바다에서 목격한 관세음보살을 형상화한) 그 거대한 해수관음보살상이야말로 정말 볼 것 없다”라고 쓰지 않았던가! 그래, 별로 볼 것도 없으면서, 이런 아기자기한 볼거리까지 막아놓다니, 그 여닫이문 연다고 전각이 무너지나? 이러고서도 관광을 진흥한다고 목소리만 높이나? 그래, 절이야 입장료를 받게 돼 있으니까 찾아오는 손님 줄어들 일이야 없다 이건가.
그곳 관계자로 생각되는 그 보살과 한바탕 할 생각이었습니다. 그 사람의 다음 멘트만 아니었다면 정말로 그랬을 겁니다.
“저렇게 넓은 바다가 저기 있는데, 뭐하러 그 좁은 구멍으로 바다를 보려는 것인가!”
그때, 전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보살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대로 눈길을 돌렸습니다. 망망대해가 바로 눈앞에 있었습니다.
바다가 저기 있는데.
바다가 저기 저렇게 있는데…
돌아오는 길에 가만히 생각해 보니 결국 그 ‘좁은 구멍’은 저의 작은 망집(妄執)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 좁은 구멍으로 세상을 다 보려 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정말로 대오각성했더라면, 지금쯤 전 원효대사가 됐을 것입니다.
온갖 사물은 신속히 변화해 머무르지 않고 시시각각으로 바뀌어 가서, 꽃잎에 맺힌 이슬과 같으며, 산골짜기의 물이 쏜살같이 흘러내려 잠시도 쉬지 않는 것과 같으며, 모래땅이 견고하지 못한 것과 같다. 지혜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집착을 일으키겠는가? (보운경(寶雲經) 중에서)
그렇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변하는 것들을 안타까워하고, 흐르는 시냇물을 부여잡으려 할 뿐입니다. 제가 설혹 그 좁은 구멍으로 다시 바다를 볼 수 있었다 하더라도, 이미 그 바다는 옛날의 그 바다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좁은 구멍이 영원히 남아있으리라 생각한 것부터가 어리석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무렵 저장해 둔 플로피디스크가 망가지는 바람에 애써 쓴 장문의 글 하나가 통째로 사라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작고 순간적인 집착으로 써내려간 글이 영속하리라 믿었던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그 깨지기 쉬운 디스크가 제 사유(思惟)의 한 조각을 굳건히 담아주리라 확신했던 것이 오류였습니다. 한 번 사라져버린 몇 조각 문자(文字)를 애달파하며 두 번다시 그런 글을 쓰지 못할 것임을 슬퍼하던 것 자체가 더없는 망집이었습니다. 떠나가버린 모든 것들을 그리워하며 가슴아파하던 모든 괴로움들은 그저 아집의 반죽일 뿐이었습니다.
이제는 조금이나마 마음을 비울 수 있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인연으로 이루어진 온갖 현상은(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꿈이랴, 허깨비랴, 물거품과 그림자들.(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더더욱 이슬 같고 번개 같거니,(여로역여전·呂露亦如電)
응당 이러히 보아야 하리.(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
[반야경(般若經) 끝머리의 게(偈)]
다시 세월이 흘렀습니다. 저는 신문사에 입사했고 낙산사는 산불로 인해 한 차례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복구에 한창이던 낙산사를 한 차례 찾았지만 홍련암에 다시 간 기억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쓴 블로그를 찾아보니 지금은 홍련암 바닥 구멍에 유리를 달아 놓아 바다를 볼 수 있게 했다고 합니다. 관광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고 손님을 예의 갖춰 맞을 줄도 모르는 그 보살이 다만 듣는 이에게 깨달음을 주는 일갈을 할 일도 없을 것 같습니다.
▶'유석재의 돌발史전’은
역사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입니다. 뉴스의 홍수 속에서 한 줄기 역사의 단면이 드러나는 지점을 잡아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매주 금요일 새벽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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