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선] ‘하면 된다’식 軍문화 이제 그만

박수찬 2023. 8. 10.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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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된다.' 군 복무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었을 말이다.

지난달 19일 경북 예천에서 집중호우 실종자를 찾다 급류에 휩쓸려 순직한 해병대 채수근 상병의 사례는 이 같은 문제가 한국군에 얼마나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지 잘 드러낸다.

채 상병 사고 후 군 당국은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부적절한 지시를 바꾸지 못하는 '위험한 복종'이 한국군의 조직문화에 자리 잡고 있다면, 이 같은 사고는 또 일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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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된다.’ 군 복무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었을 말이다. 기자도 현역 복무하면서 많이 들었지만,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이기도 했다. 내심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생각했으나, 계급과 간부라는 두 가지 권위를 지닌 상관의 지시를 거스르기는 어려웠다. 그게 부적절한 명령이었어도.

권위와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인간에겐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지구에서 일정 수준의 문명을 이룬 문화권에서는 복종을 긍정적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종이 지나치면 ‘까라면 까는’ 식의 지시가 조직 최하층까지 내려가는 것을 막지 못한다.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근거나 충분한 인적·물적 뒷받침이 없는 지시를 “명령에는 따를 뿐”이라며 순응하면 개인과 조직에 커다란 상처를 남긴다.
박수찬 외교안보부 차장
지난달 19일 경북 예천에서 집중호우 실종자를 찾다 급류에 휩쓸려 순직한 해병대 채수근 상병의 사례는 이 같은 문제가 한국군에 얼마나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지 잘 드러낸다. 물이 불어난 하천에 들어갈 때는 구명조끼 등 안전장비를 갖춰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이번 사고는 구명조끼도 없이 하천 수색에 병력을 투입했다가 벌어졌다. ‘하면 된다’와 ‘까라면 깐다’가 결합한 결과다. 부대 지휘부부터 일선 초급간부에 이르는 해병대 군 조직체계 속에서 누군가 구명장비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하며 섣부른 하천 수색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이의를 제기했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채 상병 사고 후 군 당국은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부적절한 지시를 바꾸지 못하는 ‘위험한 복종’이 한국군의 조직문화에 자리 잡고 있다면, 이 같은 사고는 또 일어날 수 있다. 지휘관의 지시가 규정이나 상식에 맞지 않는데도 부하나 참모들이 경력 등에서 불이익이나, 이의 제기에 따른 스트레스 또는 조직 내 따돌림을 회피하려고 명령에 순응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이를 개선하려면 지휘관이 잘못된 판단을 내릴 때, 참모나 부하가 이를 지적하고 개선할 수 있는 상하관계를 한국군에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 리더십 전문가 아이라 살레프의 말처럼 ‘똑똑한 불복종’이 필요한 셈이다.

똑똑한 불복종은 군 조직에 대한 저항이나 도전, 항명이 아니다. 더 좋은 조직을 만들기 위한 것이고, 지휘관이 과오를 저지를 가능성을 차단하는 행동이다. 높은 계급과 직위, 풍부한 경력과 고결한 성품을 지닌 지휘관일지라도 부적절한 지시를 내릴 위험은 피할 수 없다. 부하와 참모는 지휘관의 지시가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라면 복종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의를 제기하면서 지휘관의 잘못을 고치려고 노력해야 한다. 지휘관은 똑똑한 불복종을 배척하는 대신 부대원들이 똑똑한 불복종 개념을 이해·실행하도록 해야 한다. 군 수뇌부는 교육과 훈련 등을 통해 이 같은 관계를 키우고 장려할 필요가 있다. 똑똑한 불복종의 개념을 한국군 간부들이 이해하고 활용하도록 군 당국이 적극 나선다면, 채 상병 사고처럼 귀중한 인명을 잃는 비극은 재발하지 않을 것이다.

박수찬 외교안보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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