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이 불붙이고 태풍이 부채질…지상낙원 하와이가 잿더미로
인기 휴양지인 미국 하와이주(州) 마우이섬에서 발생한 산불이 빠른 속도로 번지면서 최소 36명(현지 시각 10일 오전 1시 기준)이 목숨을 잃었다. 한동안 가뭄이 이어진 가운데 불길이 강풍과 만나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해 대규모 재난으로 번졌다. 10일 CNN 등에 따르면 하와이제도를 이루는 섬 중 둘째로 큰 마우이섬에서 난 산불이 최대 섬인 하와이섬(빅아일랜드)으로 번지면서 사상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미국의 긴급 신고 번호인 ‘911′ 통화에도 장애가 발생해 구조를 기다리다 불길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바다로 뛰어드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번 화재는 8일 새벽 마우이섬 중부 쿨라와 서부 해안 라하이나 지역 등에서 시작됐다.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마우이 소방 당국은 이날 오전 라하이나 지역의 산불을 진압했다고 했지만, 잔불이 하와이로 접근한 허리케인 ‘도라’의 거센 바람을 타고 되살아나면서 상황이 악화했다. 산불은 섬 곳곳으로 확대됐고 불길은 바람을 타고 빅아일랜드까지 옮아붙었다. 이번 산불로 마우이·하와이섬 등지에서는 건물 약 271채가 소실되고 16개 도로가 폐쇄됐다. 다만 하와이 인구의 주도(州都) 호놀룰루가 있는 오아후섬(인구 95만명)은 아직 산불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고 알려졌다.
하와이섬과 마우이에는 비상 사태가 선포됐다. 마우이 당국은 위험 지대 주민을 상대로 대피령을 내리고 “방문객들은 가능한 한 빨리 마우이를 떠나야 한다”고 발표했다. 조시 그린 하와이 주지사는 “필수적이지 않은 마우이로의 모든 여행을 중단해달라고 강력히 권고한다”고 했다. 남아 있던 관광객들이 앞다퉈 하와이를 탈출하면서 도로와 공항은 큰 혼잡을 빚었다. 에드 스니픈 하와이 교통부 국장은 9일 “1만1000명 이상이 항공편으로 마우이를 떠났다”며 “수천명이 공항에서 밤을 지새우고 있다”고 전했다.
하와이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운영하던 상점이 불에 타거나 출입이 통제된 지역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교민이 있다고 알려졌다. 마우이에 사는 한인들은 500여 명으로 추정된다.
피해가 집중된 마우이의 대표적 관광 명소인 라하이나는 오래된 유적들이 크게 훼손되면서 큰 피해를 당했다. 마우이 최고(最古) 주택으로 1830년대에 지어진 ‘볼드윈 홈 박물관’과 1873년 인도에서 들여온 미국에서 가장 큰 반얀트리도 이번 화재로 소실됐다. 실비아 루크 하와이주 부지사는 “수천 에이커(1에이커=4047㎡)가 불에 탔고 집들과 상점을 포함한 수백개 구조물이 파괴됐으며 일부 지역은 학교와 도로가 폐쇄됐다”며 “복구에는 수년이 걸릴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 연방정부는 산불 진압을 위해 가용 인력을 총동원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9일 “연방정부 자산을 총동원해서 하와이 산불과 싸우라”고 지시했다. 바이든은 미 해안경비대와 해군에 수색과 구조 작업을 명령했고 미 해병대의 블랙호크 헬기들도 산불 진화에 투입했다.
AP에 따르면 산불이 급속도로 번진 데는 허리케인 ‘도라’의 영향이 컸다. 하와이에선 종종 계절성 화재가 발생하는데, 이번 산불은 ‘도라’의 상륙 시기와 맞물리면서 재난 수준으로 커졌다는 것이다. 화재가 최초로 발생한 것은 마우이 중부 쿨라와 서부 해안 라하이나 지역이었지만 허리케인이 일으킨 강풍을 타고 화재는 빠른 속도로 섬 전역으로 번졌다. 폭스뉴스는 “호놀룰루에서 남쪽으로 900마일(약 1450킬로미터)이상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도라’가 고기압 능선과 함께 하와이 전역에 거센 바람을 불러일으켰다”며 “시속 130㎞에 달하는 강풍이 불길을 키우고 있다”고 했다.
‘도라’가 일으킨 강풍 탓에 구조 작업이 늦어지면서 인명 피해도 커졌다. 소방헬기가 뜨지 못해 주민들은 구조를 기다리다 피해를 당한 경우가 많다고 알려졌다.
워싱턴포스트는 가뭄 또한 이번 산불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미 기상 당국에 따르면 이달 1일 기준 마우이의 3분의 1 이상이 가뭄에 시달렸다. 특히 지난 6월에는 평년보다 강수량이 적고 비정상적으로 건조한 상태가 지속됐다. 산불이 인재(人災) 성격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와이 산불관리기구는 2018년 보고서에서 화재에 취약한 풀과 관목을 인간이 섬에 들여와 곳곳에 심은 이래 하와이 산불 위험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었다.
하와이는 습하고 무덥다고 알려졌지만 최근 몇 년 새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여름철 강우량이 줄고 가뭄이 반복되며 산불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보도했다. NYT는 “화재가 발생한 마우이는 현재 하와이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이라고 전했다.
◇마우이섬은
하와이 제도(諸島) 중 하와이섬(빅아일랜드)에 이어 둘째로 큰 섬이다. 화산 용암으로 형성됐다. 거주자는 16만명에 불과하지만 지난해에만 관광객 약 300만명이 방문한 관광 명소다. 신혼여행지로도 인기다. 북서부와 남동부를 가르는 거대한 계곡 때문에 ‘계곡의 섬’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쥬라기 공원’ ‘캐리비안의 해적’ 등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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