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당신의 지갑을 태운다’ 지구촌 식탁에 히트플레이션
주요 산지 가뭄·폭우 여파
멕시코 할라피뇨 대흉작
남유럽 올리브유 값 2배
아르헨 쇠고기는 ‘금고기’
인도선 토마토 도둑 기승
설상가상 국제정세 불안
식품 물가 상승 계속될 듯
쌀밥, 토마토, 올리브유, 스리라차 소스, 쇠고기…. 전 지구를 덮친 이상기후로 세계인의 식탁이 위협받고 있다. 세계 주요 농산물 산지마다 가뭄이나 폭우로 흉작인 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보호무역으로 공급마저 차질을 빚으면서 향후 전 세계의 식탁물가는 계속 고공행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쇠고기 대국’ 아르헨티나에서는 쇠고기를 사 먹는 게 힘든 일이 됐다. 아르헨티나 인구 3분의 1이 거주하는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지난 6월 쇠고기 가격은 1년 전보다 72% 올랐다. 가뭄으로 목초지가 황폐해진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 4월 소 800마리 중 200마리를 판 아우구스토 매카시(39)는 “가뭄으로 소들에게 먹일 풀이 충분하지 않았고 콩도 상태가 좋지 않아 수확할 수 없었다”고 블룸버그통신에 말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에 따르면 아르헨티나의 올해 콩 생산량은 51%, 옥수수는 36%, 밀은 48%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는 업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오는 10월까지 쇠고기 가격이 40% 더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남유럽에서는 올리브유 가격이 1년 전의 2배 이상으로 치솟고 있다. 지난주 스페인의 엑스트라버진올리브유 1㎏당 가격은 지난해보다 약 125% 높은 가격에 거래됐다. 올봄 가뭄 때문이다. 1991~2020년 평균 14.2도였던 4월 기온이 올해는 38.7도까지 치솟았다. 스페인 농업단체인 COAG는 지난 4월 중순 가뭄으로 350만㏊의 농지가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입었다”고 발표했다. 블룸버그는 “스페인의 히트플레이션이 당신의 지갑을 태울 것”이라고 전했다. 히트플레이션은 열을 의미하는 ‘히트(heat)’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폭염으로 식량 가격이 급등하는 현상을 말한다. 스페인은 전 세계 올리브 수요의 3분의 1, 유럽연합(EU) 채소 수요의 4분의 1을 공급하고 있다.
멕시코를 덮친 가뭄은 할라피뇨 고추 흉작을 초래하며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스리라차 소스’의 가격을 1병당 5달러에서 최대 80달러까지 치솟게 만들었으며, 인도에서는 ‘금값’이 된 토마토 도둑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근 인도 북서부 마하슈트라의 한 농부는 자신의 토마토 밭에 거금을 들여 폐쇄회로(CC)TV를 설치했다. 지난 5월 수확철 홍수로 인해 올 상반기 토마토 가격이 445% 넘게 오르자, 토마토 운송 트럭이 통째로 사라지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설탕 가격은 1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브라질, 멕시코, 인도 등 사탕수수 생산국들이 이상기후 현상으로 수확량에 타격을 입어서다. 설탕 가격 상승은 아이스크림, 초콜릿 등 가공식품 가격까지 줄줄이 끌어올리고 있다.
문제는 히트플레이션이 하반기 이후 더욱 극심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호주 농무부는 호주가 7월부터 엘니뇨의 영향권에 들면서 강우량이 줄어들어 밀 생산량이 최대 기록 대비 34%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5호 태풍 ‘독수리’가 강타한 중국 북동부 허난성, 산둥성, 허베이성에서도 홍수로 인한 생산량 감소가 예상된다. 이 지역은 중국 전체 곡물의 24%를 생산하는 곳이다. 지난해 기록적 홍수로 농경지를 잃은 파키스탄의 경우 지난 4월 식량 가격 상승률이 전년 대비 48%에 달했다.
각국의 보호무역주의와 불안정한 국제정세도 식품 가격에 기름을 붓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최근 발표한 쌀가격지수는 1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인도 정부가 지난달 바스마티 품종을 제외한 나머지 쌀 수출을 금지한 데 따른 영향이다. 인도는 설탕 수출 제한 조치도 검토 중이다. 이로 인해 쌀을 주식으로 삼는 태국, 베트남, 네팔 등이 크게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흑해곡물협정 파기로 인해 우크라이나 밀 수출이 제한되면서 밀 가격도 최대 15% 오를 것이라고 국제통화기금(IMF)이 전망했다.
뉴욕타임스는 2020년 초에 비해 식품 소비자가격은 유럽에서 약 30%, 미국에서 23% 상승했으며, 저소득 국가에 더 큰 타격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의 투자은행 바클레이즈의 분석가 히랄 파텔은 “세계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농작물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증가하고 있다. 변동성을 분석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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