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막론하고 당파적 공영방송 독립 무관심”
감사원, 내 답변서 왜곡해
해임 절차 정당한지 의문
콘텐츠 경쟁력 위해서라도
정치권 방송 영향력 줄여야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에 대한 감사원 감사는 현 정부의 ‘언론장악’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감사원 국민감사청구는 ‘위법하거나 부패 행위’가 확인돼야 시작할 수 있지만, 감사원은 방문진의 이에 대한 문제 제기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행정법원 제5행정부(재판장 김순열)는 지난달 13일 1차 변론기일에 감사원이 ‘법령 위반, 부패 행위’를 소명하지 못하면 법령 위반 소지가 있다고 봤다.
이처럼 적법성 논란이 일고 있는 감사원 감사의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방송통신위원회는 감사원 감사 내용을 반영한 ‘해임 사유’를 근거로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을 해임하려 하고 있다. 오는 14일에는 방통위 청문기일이 잡혀 있다.
10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방문진 사무실에서 만난 권 이사장은 이 같은 상황과 관련해 “여야를 막론하고 당파적 이익에만 매몰돼 공영방송이 독립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방송산업의 콘텐츠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정치권의 영향을 줄이는 단단한 지배구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이사장은 방통위의 해임 절차에 대해 김효재 방통위원장 권한대행에게 ‘정당하다고 생각하냐’고 묻고 싶다고 말했다. 권 이사장에 따르면 김 권한대행은 2021년 권 이사장이 방문진 이사장으로 임명되기 전 방통위원들과 면접하는 과정에서 ‘강규형 KBS 전 이사가 해임된 게 부당하다고 보는데, 당신의 생각은 어떠냐’고 물었다. 강 전 이사는 2017년 12월 문재인 정권 당시 감사 결과 300여만원을 전용한 이유로 해임됐다가, 해임 취소 소송에서 승소한 인물이다. 권 이사장은 “김 권한대행에게 당시 그가 했던 질문을 돌려주고 싶다”며 “해임 악순환의 고리를 꼭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권 이사장은 또 감사원이 자신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문답서의 질문 내용을 ‘왜곡’해 법을 어긴 것으로 몰아갔다고 주장했다. 권 이사장에 따르면 감사원은 지난 3일 조사에서 감사원이 국민감사를 시작한 이유로 밝힌 미국 리조트 개발 투자로 인한 105억원 손실 관련자 문책 방치 등 6대 감사 사항은 하나도 묻지 않았다. 공공기록물 관리법 위반 관련, 감사 방해 관련 질문만 던졌을 뿐이다.
방문진은 감사 방해는 하지 않았고, 감사원이 ‘공공기록물 관리법 위반’으로 보는 사항은 애초에 방문진에 ‘접수’된 적 없는 문서를 문화방송(MBC)이 단순 회람 차원에서 공유했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권 이사장은 “총 40쪽 정도 되는 문답서의 질문 내용을 2~3쪽 정도 보니, 질문에 ‘MBC에서 보내와서 방문진이 접수한 회의 자료’라는 표현이 있는 등 내 답변이 법을 위반한 것처럼 보이게 왜곡돼 있었다”고 말했다.
방통위는 권 이사장의 감사 내용이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감사 방해’와 ‘공공기록물 폐기’ 등을 지난 3일 권 이사장의 해임 절차 시작 사유로 적시했다. 해임 사유에는 권 이사장이 MBC 임원에게 과도한 성과급을 지급하는 등 경영 관리·감독 의무 위반, MBC 사장 선임 과정에서의 부실 검증 등이 적혀 있었다. 권 이사장은 “영업이익이 컸던 2021년 300%의 임원 성과급을 줬고, 이후 방송의 영향력 등 별도 기준을 마련해 2022년 성과급을 결정한 것”이라며 “경쟁사의 경우 최대 1100% 성과급을 준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권 이사장은 지난 9일 방통위에 청문 절차를 일주일 정도 늦춰달라고 요청하며, 해임 사유로 적시된 내용에 대한 근거 자료를 요구했다. 하지만 방통위는 10일 권 이사장의 자료 열람 및 청문 연기 요청을 거부했다.
권 이사장은 “공영미디어가 주축인 유럽과 달리 미국의 ‘사영 언론’ 중심 언론 구조는 ‘폭스뉴스’ 같은 매체를 낳고, 극단적인 갈등을 만들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등장하는 토대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공영방송을 공격하고, 사영화한다면 한국의 기울어져 있는 언론 지형은 더 기울 것이고, 민주주의도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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