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새롭게 인사드립니다~우리의 유승희입니다' 데뷔 10주년, 함께하는 기대 가득한 새 출발

박진이 2023. 8. 10.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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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박진이 기자] ‘새’ 출발, ‘새’ 도전, ‘새’ 기분. ‘이미 있던 것이 아니라 처음 마련하거나 다시 생겨난’의 의미를 지닌 관형사 ‘새’. 신한은행에서 우리은행으로 이적한 유승희와 함께 언급되는 관형사의 사전적 의미이다. 유승희 이름 앞에 붙은 ‘새 출발’, ‘새 도전’, ‘새 기분’이라는 수식어는 유승희에게 어떻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본 인터뷰는 7월 5일에 진행됐습니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8월호에 게재됐습니다.
 
유승희-김지영 1대1 트레이드 소식, 처음 들었을 때 기분은 어땠나요? 
어떻게 보면 새로운 기회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다행이기도 하고 감사 했던 것 같아요. 또 감독님과 코치님이랑 통화했을 때 이제 적은 나이도 아니고 엄청 건강한 선수도 아닌데도 그저 농구로만 보겠다고 말해 주신 게 기억에 남고 참 감사했던 것 같아요. 2016년부터 8년간 신한은행에 몸 담았는데, 떠날 때 심경이 복잡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시작은 삼성생명에서 했지만 신한은행으로 트레이드 후 오래 있기도 했고 신한에서 특히 많은 일이 있기도 했어요. 많은 일 가운데서도 항상 응원해주신 팬들도 그렇고 신한은행이라는 회사에서 너무 감사한 분들을 많이 만났거든요. 그분들에게 죄송한 마음도 있지만 그래도 저를 응원해주는 분들이 원하는 건 제가 건강하게 코트에 오래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꼭 코트에서 건강한 모습 오래 보여드리고 싶어요.
 
신한은행에서 같이 뛰었던 김단비를 1년 만에 우리은행에서 재회, 어떤가요?
너무 좋죠. 저에게 단비 언니는 농구선수로서 롤 모델이자 넘사벽인 존 재예요. 코트 안에서도 의지할 수 있고 밖에서도 의지할 수 있는 언니와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아요. 근데 한편으로는 단비 언니가 이렇게 표현을 하진 않았지만, 그냥 언니한테 제가 짐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되긴 해요. 그래도 잘 챙겨주고 의지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트레이드 후, 김단비의 반응도 궁금한데요? 
트레이드 공식 기사 나기 전에 제가 먼저 언니한테 연락했어요. 언니도 제가 마음고생한 거 아니까 “다른 거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운동할 생 각만 해”라고 하더라고요. 여기서 이끌어주는 대로 하다보면 후회 없 을 거라고 이야기해줘서 엄청 든든했어요. 기사 떴을 땐 뜨자마자 카톡으로 딱 “축하해”라고 되게 형식적인 말투로 카톡이 와있더라고요(웃음). 

 

김단비가 말해주는 우리은행은 어떤 팀이었나요?
언니랑은 트레이드 전부터 우리은행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제가 신인 때부터 우리은행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거든요. 신인 때는 만약 내가 건강하다면 20대 중반 정도에는 ‘우리은행에 가서 농구 하고 싶다’라는 생각도 했었어요. 우리은행은 지금도 강팀이지만 제가 신인 때에도 강팀이었기에 우리은행이라면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한 농구 인생을 그릴 수 있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인지 언니한테 전부터 우리은행 팀에 대해 많이 물어봤던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언니는 밖에서 보는 우리 은행과 이미지가 다르다고 저한테도 잘 맞을 것 같다고 말해줬어요.

타 팀에서 바라본 우리은행과 직접 몸을 담고 있는 우리은행은 어떤가요? 
타 팀에서 바라볼 때 우리은행은 그냥 강팀이에요. 강팀. 훈련 힘든 건 진짜 유명하고 예를 들어서 김단비가 결장을 해도 오히려 그게 더 무서운 팀인 것 같아요. 누군가가 결장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그럼 또 얼마나 강하게 나올까 싶은 그런 팀이에요. 지난 시즌에는 “차라리 정상 멤버 그대로 있어줘”라고 얘기한 적도 있을 정도예요. (그런 팀에 소속 되어보니 어떤 것 같나요?) 밖에서 느꼈던 강팀 이미지의 이유를 알 것 같고 저도 이제 우리은행의 유승희로 잘 녹아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유승희가 프로에 데뷔한 지 어언 10년이 흘렀다. 10년이라는 농구 인생 동안 유승희의 강산은 어떻게 가꾸어졌고 어떤 모습일까. ‘10년이면 강 산도 변한다’라는 속담에 걸맞게 유승희의 강산도 새롭게 변했다. 우리 은행이라는 유승희의 새 강산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기대를 불러온다.
 
프로데뷔 10주년, 감회가 새로울 것 같은데?
뭐 어떻고 그런 건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저는 2년 공백이라는 시간도 있었고 또 저번 시즌도 다 완주하지 못해서 진짜 시간 빠르구나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제가 10살 때부터 농구를 시작했으니까 그거까지 합치면 여태 20년 한 건데, 여태 농구를 해온 20년이라는 시간보다 앞으로 농구를 할 시간이 적은 게 아쉬운 것 같아요.
 
유승희의 농구 인생 10년을 돌아보고자 하는데, 어떻게 농구를 시작하게 되었나요? 
제가 전주에서 살다가 윗동네인 분당에서 잠깐 살았던 적이 있어요. 근데 외동이다보니 여름방학에 맨날 혼자 집에 있고 그러니까 엄마가 신경 쓰였나봐요. 그래서 전주에 있는 사촌 언니네 놀러 가라고 내려 보내준 거예요. 지금도 저는 사촌언니랑 친언니처럼 지내는데 당시에도 되게 잘 놀아서 너무 재밌었어요. 그래서 떼를 썼죠. 전주에 살고 싶다고… 그렇게 전주에 내려와서 살게 되었어요. 그때 제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고 사촌언니랑 저랑 5살 차이라서 언니 중학교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로 전학 갔어요. 근데 그 초등학교에 농구부가 있었던 거죠. 아침 조회를 하는데 분당에서는 제가 큰 키가 아니었거든요? 근데 전주에선 제가 제일 컸던 거예요. 체육 선생님이 체육관에 와보라고 해서 갔는데 수업도 4교시만 받아도 된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또 공부하는 걸 안 좋아했는데 수업도 4교시까지만 들어도 되고 운동 끝나면 간식도 먹고 그러니까 재밌었어요. 그렇게 저는 농구를 시작하게 되었죠.
 
‘농구 선수가 돼야겠다’라고 느낀 순간이 있나요? 
저는 촌에 살았어요. 또 팀도 강팀도 아니여서 프로팀에 대한 생각이 0이었던 것 같아요. 프로에 대한 생각없이 그냥 했던 것 같아요. 고3 때도 드래프트에 대한 생각이 없었어요. (그렇기엔 2013 신입 드래프트 에서 1라운드 3순위에 지명되었는데…) 그 당시엔 제가 막 안 된다고 그랬었어요. 대학교 갔다가 프로에 가겠다고 했는데 지금은 대학 출신 선수들도 많지만 그때는 더더욱 없어서 고등학교 선생님이 저한테 정신 차리라고 누가 너 대학교 갔다 오면은 뽑아줄 줄 아냐고 하시면서 선생님이 너 드래프트 떨어지면 내가 제일 좋은 대학교 알아봐줄 테니까 드래프트 나가라고 하셨어요. 근데 된 거죠. 그래서 드래프트 다음 날 바로 입단했어요(웃음). 그 때 삼성생명에 이호근 감독님이셨는데, 저 보시더니 “내일 들어와” 이러셔서 바로 서울에서 전주까지 내려가서 짐 싼 다음에 다음 날 바로 용인으로 갔어요.
 
신한을 상대로 성장통을 겪고 2년 후 3대3 트레이드로 신한 행, 그때 기분은 어땠나요? 
그때는 화나고 슬펐던 것 같아요. 팔꿈치 재활을 하다가 간 거여서… 근데 또 웃기게 이야기를 하자면 지금은 제가 (곽)주영 언니랑 진짜 잘 지내거든요. 근데 제가 삼성에 있을 때 언니랑 조금 신경전이 있었어요. 신경전이라는 단어도 말이 안 되는 게 제가 언니보다 10살이나 어려요. 근데 당시엔 저 나름의 억울함이 있어서 언니를 째려봤어요. 언니도 이 어린애가? 하면서 약간의 신경전이 있었는데 그래서 신한 트레이드 소식 들었을 때 “아 신한 가면 난 언니한테 죽었다”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근데 사람 일은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지금은 제가 주영언니 너무 좋아하고 언니도 저 너무 잘 챙겨주거든요. 지금은만나면 ‘언니 그때 왜그랬어요?’라고 말할 정도로 웃으면서 이야기하곤 해요. 이런 비하인드가 있답니다!
 
신한에서 녹아들 때 즈음, 부상을 당했는데 당시를 한번 돌아보자면요? 
오프시즌에 운동량이 진짜 많았거든요. 2018년 박신자컵에서 다쳤는데 그때 몸이 너무 좋은 걸 제가 느낀 거예요. 그래서 볼 잡아라. 난 뛴다. 약간 이런 생각밖에 없을 정도였어요. 당시 경기 내용도 그렇고 성적도 괜찮았어요. 근데 박신자컵 자체가 벤치 멤버 적은 선수들로 일주일 동안 네, 다섯 경기를 하다보니까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기도 하고 제가 그때 허리도 안 좋았는데, 지친 상태에서 정신 넋 놓고 하다가 다친 것 같아요. 그래서 딱 다쳤을 때 열심히 준비한 오프시즌이 너무 아까웠고 그걸 한 번도 못 보여준 게 아직도 아쉬웠던 것 같아요. 그렇게 긴 시간 재활도 처음이고 수술 자체도 처음이다보니 아무것도 몰랐는 데, 두 번째가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두 번째는 딱 다치는 순간에 알았어요. (십자인대) 나갔다. 그러면서 제가 바로 넘어지자마자 트레이너 선생님한테 저 병원 가야 된다고 말했어요. 이제 병원에 갔는데 결과는 이미 다쳤을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교수님의 수술해야 한다는 그 말을 들으니까 눈물 나고 감정을 주체하기가 힘들었어요. 목발도 다 집어 던 지고… 그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 다행히도 트레이너 선생님도 그렇고 주위에 되게 좋은 분들을 만났어요. 제가 그 때 엄청 부정적이었는데 그런 것들을 다 받아주시고 이해해주시고 옆에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복귀 직전 인터뷰 내용 중, 부상을 당하고 쓰러진 이후에 어머니께서 단 한 번도 체육관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인터뷰했었는데… 
한동안 엄마가 경기를 못 보셨어요. 지금도 제가 넘어지면 가슴이 철렁하신대요. 그래도 엄마가 되게 쿨해서 지나간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러니까 지금은 괜찮으신 것 같아요. 제가 막 우리은행 와서 힘들다고 투정부려도 “힘든 게 낫지~”라고 하시니까… 그래도 그 부상 두 번으로 단단해진 것 같아요. 이런 표현이 맞나 싶지만 사람이 됐다고 할까요?(웃음) 그냥 독기만으로 되는 건 아니구나. 약간 이런 생각도 들고… 아직 더 유해져야 할 필요성이 있지만요.ㅎㅎ
 
2020-2021시즌엔 건강히 복귀, 우리은행 상대로 3점슛을 5방을 터트 리며 23점 커리어하이도 기록했는데 기억이 나는지? 
기억나죠. 그 한 경기로 너무 많은 분들이 그렇게 관심 가져주셔서 기억이 안 날 수가 없는데 그때는 뭘 해도 되는 날이었고 제가 열심히 준비한 것들이 다 맞물렸던 것 같아요. 열심히 운동을 했고 또 제 기억으로는 우리은행 선수들이 가용 인원이 별로 없기도 했고 연속 게임이었나 그랬을 거예요. 그런 것들이 맞물려서 제가 조금 되는 날이었던 것 같아요. (2년간 부상의 아픔을 보상받는 느낌이었을 것 같은데, 다시금 일어설 수 있었던 원동력이 있다면?) 처음에는 분노였어요. 제가 유튜브에서 방시혁 프로듀서가 자기는 되게 불평불만과 분노가 많은 사람이었다고 인터뷰하는 영상을 봤어요. 근데 불만을 갖고 아무것도 안 한 게 아니라 불만들을 바꾸기 위해서 자기는 움직였다고 그러는 거예요. 저도 그랬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이제 끝났다고 하는 말들이 저에게 자극제가 되어서 그러한 분노와 불만들을 바꾸기 위해 움직였던 것 같아요. 

 

 
현재 몸 상태는 어떤가요?
아픈 건 조금씩 있는데 운동을 쉴 정도의 통증이 있거나 그런 건 아니 고, 일단 체력이 너무 없어서… 감독님이 계속 “너는 1년을 쉰 거다”라 고 말씀하실 정도로…(웃음)

이렇게 유승희의 농구인생을 돌아봤는데, 10년간 본인은 어떤 선수였고, 앞으로 어떤 선수가 되고 싶은지? 
제 주위에 좋은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항상 하는 말로 “난 그래도 인복은 있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요. 근데 주변에 그 좋은 사람이 없었다면 지금 저는 여기까지 못 왔을 것 같아요. 문득 드는 생각으로는 누군가는 제가 왜 그랬고 왜 예민했고 왜 그 상황에서 화를 냈는지 저에 대해 알아주는 사람 한 명이라도 있으면 저는 그게 성공한 삶이라 생각하거든요. 뭐 MVP 이런 건 바라지도 않고 제가 이렇게 도움받아서 여기까지 버틴 것처럼 여러 명한테는 그렇게 못해도 그래도 한 명에게라도 힘이 돼줄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데뷔 10주년과 동시에 새로운 팀에서 새 출발을 하게 되었는데, 유승희 선수의 새 목표가 있다면?
제 개인적인 성장도 성장이지만 우리은행에 새로운 선수들 중에 우승 못한 선수가 없대요. 그 우승 못한 선수가 제가 되면 안 되잖아요. 뭐 이게 비단 다음 시즌이 아니어도 그 다음 시즌에도 전 항상 도전할 거 예요. 지금 주변에 좋은 선수들도 있고 좋은 감독, 코치님들이 지도해 주시니까 진짜 저만 잘하면 될 때라고 생각해요. 저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기회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우승도 하고 싶고, 다시 열심히 잘 배워서 대표팀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아까도 말했듯이 우리은행에서 어린 선수들이랑 운동했을 때도 내가 부족하다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내가 농구를 아예 처음 배워야겠구나…’라는 생각도 드 는데 그래서 저는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라고 생각을 하고 은퇴 하기 전 농구선수로서 성장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발전된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요. 이 전까지는 열심히 하는 이미지였다 면 이제는 농구를 잘하는 유승희가 되고 싶습니다.

 

# 사진_점프볼 DB(문복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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