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중국 첨단기술 투자 제한' 속내는?…중 "시장경제원칙 위배"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미국이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을 이유로 중국 첨단 기술 분야에 대한 미국 자본 투자를 제한하기로 했다. 중국이 크게 반발하며 복구 수순에 있던 미·중 관계에 미칠 파장이 주목된다.
9일(현지시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우려국의 첨단반도체,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등 세 가지 첨단기술 분야에 대한 미국인의 투자를 제한하는 '우려국 내 특정 국가 안보 기술 및 제품에 대한 미국의 투자에 관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부속 문서에서 '우려국'은 중국, 홍콩, 마카오로 명시됐다.
이에 따라 미국 사모 펀드, 벤처캐피털 등이 중국 해당 분야에 투자하고자 한다면 재무부에 사전 신고해야 하고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투자 금지를 포함한 규제권을 가진다. 재무부는 미국에 특히 심각한 안보 위협을 가하는 투자는 전면 금지된다고 못박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행정명령에서 "우려국의 군사, 정보, 감시 또는 사이버 능력에 중요한 민감한 기술 및 제품 발전이 미국의 국가 안보에 대한 이례적이고 특별한 위협을 구성한다"며 "특정 미국 투자가 이러한 위협을 악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판단한다"고 이번 조치를 내린 이유를 설명했다. <로이터> 통신은 이 명령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인물을 인용해 해당 조치가 몇 차례 공개 의견 수렴을 거친 뒤 내년에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이번 조치가 경제가 아니라 안보에 초점을 맞춘 표적 조치임을 강조했다. 미 CNN 방송은 한 관리가 기자들과의 통화에서 "이는 국가 안보 조치이지 경제 조치가 아니다. 우리는 국경을 넘나드는 투자 흐름이 미국 경제 활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며 이 행정명령은 우리 국가안보 이익을 좁게 보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약 2년 간의 내부 토론을 거치는 동안 규칙 적용 범위가 초기 제안보다 좁아졌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짚었다. 매체는 공화당 내 대중국 강경파인 마이클 맥컬 하원 외교위원장이 이번 조치에서 생명공학 및 에너지 분야가 제외된 데 대해 "어느 때보다 공격적 조치가 필요한 때 정부가 (규제 범위를) 축소하는 것은 국가 안보를 희생하며 산업계 달래기를 계속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고 전했다.
미국은 이번 조치로 중국 첨단 산업에 대한 돈줄 끊기 그 자체보다 미 벤처캐피탈이나 사모펀드의 투자에 수반되는 기술 및 경영 노하우의 중국 이전을 막는 것을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CNN은 한 고위 관리가 "중국은 우리 돈이 필요하지 않다. 중국은 순자본 수출국이다. 따라서 우리가 막으려는 건 중국으로 돈이 흘러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돈은 많지만 노하우가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는 상태에서 이미 중국 기술 산업에 대한 미국 투자금이 크게 줄어든 상태라고 지적했다. 통신은 시장정보업체 피치북 자료를 인용해 중국 기술 스타트업에 대한 미국 벤처캐피탈 투자 규모가 2021년 329억 달러(약 43조2470억원)에서 지난해 97억 달러(12조7506억원)로 급감했고 올해 들어선 12억 달러(1조5774억원)로 쪼그라들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축소 시도에도 중국 쪽은 크게 반발했다. 이날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기자의 관련 질문에 이번 미국의 행정명령은 "탈위험(디리스킹)을 가장한 탈동조화(디커플링)"라며 "이는 미국이 줄곧 주장해 온 시장경제와 공정경쟁원칙을 위배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중국은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조치를 취할 권리가 있다"며 보복을 시사하기도 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해당 조치는 "안보 개념을 과도하게 확장하고 사업 활동을 정치화 하는 것"이라며 "즉시 취소"할 것을 촉구했다.
미국은 지난해 10월에도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을 통제하는 조치를 발표한 바 있다. 이에 중국은 지난 5월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제품 구매를 중지하는 제재를 발표하고 반도체 원료인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을 이달부터 통제하는 등 보복 조치를 감행했다.
연초부터 살얼음판을 걷던 미·중 관계가 다소 완화되고 있던 시점에 나온 이번 조치가 향후 관계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지난달 옐런 장관이 중국을 방문하는 등 미 정부 고위 관리들이 차례로 중국을 방문하며 소통 채널 유지 및 복구가 이뤄지고 있고 오는 11월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회담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단기적으로는 최근의 외교적 진전이 무산되지 않더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미국과 중국은 경쟁 관계에 갇혀 수십 년 간 양국 관계의 버팀목 역할을 해 온 경제 및 상업 관계를 해체하고 있다"며 "이번 투자 제한 조치가 양국이 멀어지는 데 가속도를 붙일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조치는 중국 경제가 수출 부진과 물가 하락에 시달리며 취약점을 노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왔다. 7월 중국 수출은 전년 대비 14.5% 급감했고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년 5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청년실업률은 역대 최고 수준이며 부동산 경기도 침체 상태다. 때문에 <월스트리트저널>은 향후 중국이 보복한다 해도 경제를 더 약화시키지 않고 기업에 피해를 입히지 않는 방향으로 신중하게 행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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