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시럽급여’ 아닌 ‘밀수’의 해녀에게도 실업급여를
지난달 정부·여당이 개최한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에서 나온 발언은 단순 해프닝이 아니다. 지난 한 달 동안 언론에는 주로 ‘시럽급여’와 ‘샤넬 선글라스’ ‘해외여행’ 발언이 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하는 개미보다 베짱이를 더 챙겨주냐”는 여론을 거론한 국회의원 발언이 핵심으로 보인다. 이 주장은 우리나라 실업급여가 지나치게 관대해 구직의욕을 낮춘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지난 5월25일 보수신문들이 그 서막을 알렸다. “일하는 사람의 월급보다 실업급여액이 많다”는 기사였다. 최저임금의 80%가 하한선인데, 27.8%나 세후 수령 월급보다 많아 근로의욕을 떨어뜨린다는 기사들이 지면을 장식했다. 실업급여 소득역전 현상과 불공정 담론의 확산이다.
국민의힘은 법안을 발의하고, 해당 의원실은 고용노동부 요청자료를 보도자료로 활용했다. 제도 개편 밑 작업의 시작이다. 그 순간 ‘얌체 퇴사족 차단’ ‘베짱이 아웃’ ‘복지 함정’ ‘혈세만 낭비’ 등의 기사가 난무했다. 동시에 “일시적으로 줘야 하는 거지, 너무 많으면 실업급여에 의존하는 루팡족만 많아진다”는 글들이 커뮤니티를 장식했다. 전형적인 도덕적 해이를 강조한 후진적 관행의 모습들이다. 여론의 후폭풍 속에 보수학자들은 ‘돌출 발언’ 정도로 취급한다. 그런데 과연 개인의 일탈로 볼 수 있을까. 우리 사회의 관료조직과 보수 정치인들의 오래된 습성과 내면화된 태도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낙인과 혐오는 불평등과 차별을 고착시킨다.
과연 우리의 실업급여는 관대성이 높아 재취업률을 낮추는 요인일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의 실업급여 요건은 오히려 까다롭다. 고용보험 가입자 중 계약만료나 구조조정 등 비자발적 퇴사자가 수급 대상이다. 영국·프랑스·독일·스웨덴·스위스 등 20여개 국가들은 자발적 퇴사자도 일정 유예기간 후 실업급여를 받는다. 실업급여 역전현상 주장도 사실과 조금 다르다. 우리나라는 월 184만원의 실업급여를 최소 4개월 받는다. 반면 주요 국가들은 최소 6개월에서 1년 또는 2년의 실업급여를 지급한다. 결국 실직기간 동안 실업급여 총액은 우리나라가 적은 편이니 정보의 왜곡을 걷어내고 봐야 한다.
게다가 반복 수급자와 하한액 적용자의 재취업 문제 또한 인과성이 결여된다. 우리나라는 1년 미만 근속 비율이 30.9%로 OECD 평균(21.1%)에 비해 10%포인트 높다. 단기 계약의 불안정 일자리가 많고, 정규직 전환율이 낮기 때문이다. 실업급여 수급자의 반복 수급은 지난 10년 동안 6% 정도로 일정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오히려 짧은 구직급여 기간은 저임금 일자리 양산을 늘리는 요인이 된다. 경기침체와 불황 파편화된 노동시장과 같은 구조적 요인이 핵심이다. 지금은 초단시간이나 65세 이상 고령노동자 등 사각지대 해소에 주력해야 한다. 특히 플랫폼 노동자와 프리랜서 등에게까지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은 OECD 보고서의 주요 내용이다. 1300만명의 일하는 사람이 제도 밖에 있는 것이다.
영화 <밀수>의 해녀들에게 부분 실업급여제도가 적용됐다면 위험한 곳에서 물질하지 않았을 것이다. ‘장도리’와 같은 악덕 사업주의 횡포에 굴하지 않고, 더 나은 일자리를 찾기 위한 시간과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고용과 해고의 권한’을 자본과 기업에 주었다면, ‘사회적 보호의 권리’는 노동자들에게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무릇 국가는 벼랑 끝에 내몰린 국민들에게 필요한 제도와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코로나19 시기에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이 논의됐던 취지를 잊으면 안 된다. 이제라도 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소득기반 고용보험제도로 전환해야 한다. 한국(1995년)은 영국(1911년), 프랑스(1914년), 독일(1924년), 스웨덴(1934년)에 비해 실업급여 도입 시기가 늦었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사단법인 유니온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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