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이태원과 오송, 그리고 잼버리

기자 2023. 8. 10.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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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총선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위성정당이라는 볼썽사나운 모습도 있었지만 대세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니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역구에서만 163석으로 넉넉히 과반을 차지했다. 위성정당 없이 더불어시민당 17석 비례의석을 다 넘겨줬다 해도 미래통합당 쪽의 의석은 120석에 불과했다. 그 정도였다면 문재인 정부의 하반기 국정운영은 생선을 굽듯 조심스러웠을 것이고,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관후 정치학자

어쨌든 21대 총선 결과는 이례적이었다. 참여정부 시절 열린우리당이 152석으로 과반에 턱걸이를 한 적은 있지만, 민주개혁 세력이 의회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둔 것은 처음이었다. 탄핵으로 치러진 19대 대선에서도 문재인 후보의 득표율은 41%에 불과했다. 그런데 왜 총선에서는 압도적 승리를 거둔 것일까?

국정운영 능력의 차이였다. 코로나19 때문에 쟁점이 실종된 선거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사실 가장 큰 쟁점이 있었다. 박근혜가 쫓겨나고 문재인이 집권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게 나라냐!”는 한탄과 분노였다. 세월호와 메르스에 대한 국가의 대응과 대통령의 언행을 보면서, 국민들은 무능으로 점철된 국가 운영에 아연실색했다. 무엇보다 국민의 생명을 다루는 안전, 국가의 생존과 미래를 결정하는 외교에서 박근혜 정부는 철저하게 무능했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첨예한 국익의 각축장을 박근혜 대통령은 패션쇼장으로 착각했다. 의전의 기본을 몰라 창피를 당하는 장면도 여럿이었다. 그 배후에서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확인되자 더는 갈 곳이 없었다.

21대 총선 당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신뢰는 그렇게 단단한 것이 아니었다. 부동산 정책은 표류를 거듭했다.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성장 사이에서 경제정책 기조는 갈팡질팡했다. 최저임금과 비정규직 문제는 사회적 합의 없이 진척되기 어려운 과제였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세대 간에 남북관계와 공정에 대한 견해 차이가 얼마나 큰지가 드러났다. 가장 돋보인 성과는 적폐청산이었는데, 득을 본 것은 검찰이었다. 박영수·윤석열 특검 수사팀은 정의의 사도처럼 칼을 휘둘렀다. 코로나19가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중장기 과제에 대한 명확한 비전과 가치, 심도 있는 논쟁과 체계적인 준비가 없었던 정부였지만 비상시에 무능한 정부는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는 순발력을 발휘했다. 핵심은 국민의 생명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는 정치적 자세와 헌신적 리더십, 단호하고 선제적인 조치, 지시와 명령보다 낮은 자세로 설득하는 태도에 있었다.

코로나19 초기 일개 본부장이었던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에게 대통령을 비롯한 장차관급 고위 공직자들이 귀를 기울였다. 시·도지사들이 상시적으로 참여한 중대본 회의는 사실상 매일 열린 확대 국무회의였다.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가 정부 최상위까지 한 번에 전달됐고, 즉시 조치들이 결정됐다. 온라인 회의에 배석한 전국 수백명의 공무원들은 정부의 대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고, 정책 목표와 수단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코로나19가 전국으로 확산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재난지원금’ 논의가 불붙었다. 지자체들이 먼저 필요성을 주장했다. 피해액 통계를 기다리던 예산당국에는 ‘아군이 다 죽고 나면 그제야 지원물품을 보낼 거냐’는 설득이 통했다. 국민들은 여당의 손을 들어줬다. 그전까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의회의 적폐세력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호소했지만, 총선 판세는 오리무중이었다. 그러나 비상 상황에서 국민들은 ‘유능한 정부’를 선택했다.

잼버리 사태의 근본 원인은 중앙과 지방의 격차 심화, 근시안적 개발주의가 언젠가는 성공하리라는 시대착오적 오만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국정도 계획대로만 되지는 않는다. 계획이 부실하거나 없는 경우도 많다. 그때 정부의 실력이 드러난다. 잼버리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는 계통이 없었고, 책임감이 없었고, 상식도 없었다. 왜 그랬을까? 감사와 수사가 국정 기조가 되면 공무원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현장의 합리적 건의가 계속 묵살되면 그다음엔 ‘알면서 무얼 했느냐’는 질책이 두려워 더욱 입을 닫게 된다. 잼버리 사태는 이태원 참사와 오송 지하차도의 미래였다.

이순신이 지휘하던 수군과 원균이 물려받은 군사들은 같은 사람들이었다. 이순신은 보이지 않는 적을 만나도 당황하지 않았으나, 원균은 눈앞에 있는 적을 보고도 어쩔 줄 몰랐다. 이순신 군대는 군율이 엄격했으나, 원균의 배에선 술판이 벌어졌다. 원균은 한 번의 칠천량 해전에서 1만7000 조선 수군을 궤멸시켰다. 문재인은 이순신이 아니고, 윤석열은 원균이 아니다. 나라가 그렇게 돼서도 안 된다.

이관후 정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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