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 잼버리 파행과 ‘죄책감 지수’
“죄책감에 휩싸인 사람들이 훌륭한 리더가 된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2011년 1·2월호에 이런 도발적인 제목의 인터뷰가 실렸다. 미국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의 조직심리학자 프랭크 플린 교수가 진행한 ‘죄책감이 성과에 미치는 연구’에 대한 심층 인터뷰였다. 플린 교수는 ‘포천’지가 선정한 500대 기업의 재무임원 약 150명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경향을 측정하는 표준 심리 테스트를 실시하고, 업무성과를 비교했다. 죄책감을 잘 느끼는 사람이 업무성과 점수가 높았고, 조직에 헌신적이며 동료들에게 강력한 리더로 인정받고 있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연구자도 이런 상관관계에 놀라워했다.
플린 교수는 죄의식 경향을 평가하는 ‘자기의식적 정동 테스트 도구(TOSCA·Test of Self-Conscious Affect)’를 사용해 많은 공저자와 연구를 계속한 뒤 2018년 응용심리학 저널에 죄책감과 성과 간의 연관성은 분명히 존재하고, 더 많은 죄책감이 더 많은 헌신을 낳는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죄책감이란 무엇인가. 규범을 어겼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잘못을 저질렀음을 인정하고 후회하는 감정인 것이다. 종종 수치심과 비교되는데, 이는 자신에 대한 부정적 평가로 자책하는 감정이다. 죄책감과 유사한 것이 책임감이다. 자신의 의무와 역할을 인식하고 그에 따라 갖는 감정이나 태도를 말한다. 모든 감정은 병리적 측면과 건강한 측면이 있기 마련인데, 여기서 말하는 감정들도 대개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측정된 것이다. 플린 교수는 죄책감과 수치심을 구별했는데, 수치심이 타인이나 다른 요인을 탓하게 한다면 죄책감은 자신이 야기한 문제를 해결하고 타인이나 조직에 해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하게 만든다고 한다.
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해서 죄책감을 일부러 불러일으킬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성찰 없이는 갖기 어려운 감정이기에 곱씹고 반성하는 자세를 갖게 한다면 죄책감이야말로 성취동기라고 할 만하다. 죄책감과 사촌쯤 되는 감정이 후회인데, 이는 과거의 선택이나 행동에 대한 아쉬움에 중점을 두며, 좀 더 나은 결과를 바랐을 때 생긴다. 어떤 감정을 규격화할 수는 없지만 죄책감이나 후회뿐 아니라 감정이 행동의 동기로 작용하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는 지난해 펴낸 <후회의 재발견>에서 “후회하는 능력은 고등동물인 인간이 갖는 일종의 특권으로, 인간을 다른 동물보다 뛰어난 존재로 만들어준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니 후회는 피해야 할 감정이 아니라 ‘최적화’시켜 활용해야 하는 역량이 아닐까.
5년 넘는 준비기간이 있었음에도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는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 됐다. 태풍 ‘카눈’은 저승피리 같은 소리를 내며 한반도를 관통했다. 지구가 끓고 있어서 예측 불가능한 기후재난이 도사리는 상황에 새만금 잼버리라는 아수라는 다가올 재난에 정부의 대응 역량이 어떠한지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잼버리 조기 철수’ 사태가 “한국의 위기 대응 역량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것”이라는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의 발언엔 어떤 죄책감도, 후회도 없어 듣는 이들에게 수치심을 안겨주었다. 앞으로 기후재난을 막으려면 공직자 인사청문회 때 ‘죄책감 지수’를 공개해야 하나.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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