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인력 이동 블랙홀 될까?…우주청 계획에 과학계 '당혹'
과학계가 '우주항공청 설립·운영방향'에 당혹감을 드러냈다. 우주청 산하로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과 한국천문연구원(천문연)을 이관하지 않고 현행 조직체계를 유지하기로 하면서다. 과학계는 30여년간 국가 우주개발을 이끌어온 이들 기관 역할없이 우주청 설립이 이뤄질 경우 R&D(연구개발) 기능 이원화와 정책 집행 비효율 등을 예상했다.
10일 과학계 복수 관계자들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최근 발표한 우주청 설립·운영 기본방향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과기정통부는 우주청 출범 규모로 인력 300명과 예산 7000억원을 발표하면서도 항우연·천문연 등은 기존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산하 체제를 유지키로 했다. 대신 이들 기관을 우주청 임무센터로 지정해 R&D를 맡기겠다는 방침이다.
천문연 관계자는 "우리나라 우주개발 특성상 기업·대학과 같은 민간 기관에 전문인력이 많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우주청 출범 규모가 인력 300명이라면 정부출연연구기관 전문가들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주청에 인력을 지원하고 나머지 인력들이 R&D를 수행한다면 연구원 존립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했다.
국내 우주개발은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됐다. 이때부터 항우연이 인공위성·발사체·항공 분야 R&D를 수행했고, 천문연도 우주과학 분야 연구를 책임졌다. 이 때문에 우주청이 설립될 경우 최소 항우연·천문연은 그 산하로 옮겨져 정책 집행에 힘을 보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정부가 발표한 대로 우주청 내 우주항공임무본부를 만들고, 그 산하에 항우연·천문연이 외부 임무센터로 지정될 경우 조직이 쪼개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소속은 항우연·천문연이지만 실질적인 R&D는 우주청 지시를 받아야 하는 형태로 기관 운영이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항우연 노동조합은 "우주항공청이 항우연과 천문연이 수행하던 일들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며 "항우연이나 천문연과 중복되는 업무를 우주항공청이 하겠다는 것일 뿐 아니라, 통합이 필요한 조직들을 더 작고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조직들로 분해시키겠다는 안을 내놓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우주청 산하로 항우연·천문연이 흡수되지 않으면서 그동안 연구자 처우 개선 문제도 다뤄지지 않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항우연은 지난해 누리호·다누리 발사에 성공한 이후 낮은 초임 연봉으로 열악한 처우 개선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기관은 우주청 설립과 산하로 조직이 개편될 경우 처우 문제를 다뤄보겠다고 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항우연 일부 관계자는 우주청 설립을 급하게 추진하지 말고 일본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본은 2003년 10월 문부과학성 우주과학연구소(ISAS), 독립법인 항공우주기술연구소(NAL), 특수법인 우주개발사업단(NASDA)을 통합해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를 출범했다. 이어 2012년 일본 내각부 우주개발전략본부를 설치했다. 국가 우주정책 시스템을 만드는데 10년 이상 걸렸다는 것이다.
한편,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달 27일과 31일 안건조정위원회를 열어 우주청 법안 논의를 추진했지만 안건조정위원장 선임에 합의하지 못했다. 국회 차원의 입법 논의가 첫 발 조차 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과기정통부의 연내 우주청 개청 목표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김인한 기자 science.inh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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