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미래] B 푸드에 거는 기대
부산은 서울과 닮았다. 부산은 서울처럼 주변 지역의 인구와 특산물을 흡수하는 거대 소비 도시다. 지하철이 있고 백화점이 있다. 그렇지만 부산에는 서울과 크게 다른 게 있다. 바다가 있다. 그래서 부산은 먹거리가 풍족하다. 낙동강을 따라 내려온 경상도 내륙의 매운맛과 남해·동해 바다의 짠맛이 융합돼 있다.
서울에선 아무리 신선하다고 해도, 기장 봄 멸치와 가덕도 겨울 숭어 맛을 제대로 느끼기는 어렵다. 돼지로 뽀얀 국을 끓이는 실용성도 체면치레가 심한 서울과는 다른 결의 음식을 낳는 비결이다. 가까운 거리 때문에 빠르게 수입되는 일본 문화와 한국전쟁 때 피란 온 실향민의 눈물이 섞이면서 부산의 맛은 더 깊어졌다.
나는 이런 부산이 좋다. 날씨가 괜찮으면 대마도도 보인다는 탁 트인 바다도 좋지만 서면 돼지국밥 골목과 남포동 자갈치시장에서 풍겨오는 부산 내음이 좋다. 부산이 갖고 있는 탈서울의 생동감도 좋다. 서울을 카피하려고 안달인 많은 도시와 달리 부산은 모든 문제의 뿌리인 서울 쏠림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도시다.
부산을 상징하는 ‘부산음식 B-푸드’가 공개됐다. 엑스포 유치를 준비 중인 부산시가 지역성이 담긴 글로벌 만찬 행사용 음식을 마련하기 위해 기획한 것이다. 공개된 23종 음식이 흥미롭다. 식전 빵부터 특이하다. 짭짤이토마토 기정떡이나 기장미역 치아바타가 눈길을 끈다.
부산 명물인 붕장어(아나고)로 만든 파테(다진 생선살을 향신료와 함께 틀에 넣어 익힌 요리)도 인상적이다. 이는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구치 오스테리아의 장어 메뉴를 연상케 한다. 세계 최고 레스토랑에 두 번이나 선정된 이탈리아 모데나에 있는 프란체스카나의 셰프인 마시모 보투라가 만든 레시피다. 그는 특이하게 전통적 호박 파스타를 이용해 장어를 디저트로 선보였다.
보투라는 치즈와 발사믹 식초로 유명한 이탈리아 북부 도시 모데나 출신이다. 그는 지역 농산물을 이용해 전통요리를 새롭게 해석했다. 그렇지만 1995년 개업 이후 ‘모데나 음식의 전통을 망치는 반역자’라는 비판을 오랫동안 받았다. 그러다 2001년 평론가들로부터 ‘포스트 모던한 이탈리아 요리’라는 평가를 받으며 같은 해 미쉐린 원스타가 됐다. 그리고 곧 새로운 철학을 선보인 레스토랑에만 부여되는 미쉐린 스리스타 반열에 올랐다. 개인의 창의성과 고집이 지역 음식에 모던함과 진귀함을 부여한 것이다.
B-푸드의 목표도 비슷하다. 부산 지역 음식에 글로벌한 보편성과 특별함을 입히려는 것이다. 이는 한식의 오래된 고민이기도 하다. 또 안동, 전주, 강릉 등 유서 깊은 도시와 제주, 신안같이 특유의 개성을 가진 지역이 주목할 만한 시도다. 중앙정부 주도의 한식 세계화에는 관심이 없던 내가 지역 주도의 B-푸드에 높은 점수를 주는 이유다.
B-푸드가 부산의 개성이 균형 잡힌 맛으로 얼마나 잘 표현됐는지 궁금하다. B-푸드가 기존 한식세계화 사업과 비슷한 보여주기 행사인지,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는 시도인지는 부산 시민들과 SNS의 해시태그가 판단해줄 것이니까 말이다.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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