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균의 쓰고 달콤한 경제] 주가로 보는 경제, 소수만 흥하고 다수는 어렵다
주식시장은 당대의 경제 상황을 반영한다. 한국 증시를 대표하는 코스피가 처음 1000선에 올라선 때는 1989년 3월이었다. ‘3저 호황’을 등에 업고 한국 경제가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누린 시기에 코스피지수는 사상 처음 네 자릿수에 올랐다. 코스피가 2000선에 도달한 시기는 2007년 7월로 1000선 도달 후 18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중국 경제 고성장의 수혜를 누리면서 당시 코스피는 레벨업됐다. 이후 코스피는 코로나 팬데믹 직후의 초저금리를 동력으로 2021년 1월 3000선에 올라섰지만 이후 조정 국면이 이어지면서 2000선으로 내려앉았다.
한국경제 고민이 녹아든 장기 정체
2000선에 도달한 2007년 이후 1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코스피는 2600선에 머물러 있다. 2007년 7월 이후의 코스피 등락률은 30.0%, 연평균으로는 1.6% 상승에 불과하다. 중국 특수의 소멸 이후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는 한국 경제의 고민이 주가지수의 장기 정체에 녹아들어 있다.
2007년 이후 장기 정체는 주가 양극화라는 외피를 쓰고 나타났다. 코스피는 20개 세부 업종지수로 구성돼 있는데, 코스피보다 성과가 나았던 업종은 5개에 불과했다. 전기전자(2007년 7월 이후 307%)·비금속광물(181%)·의약품(178%)·화학(69%)·서비스(34%) 등 5개 업종만이 코스피 대비 초과수익을 기록했다. 반도체와 바이오·배터리 등의 성장에 대한 기대가 투영될 수 있는 일부 업종들만 좋은 성과를 기록한 셈이다.
반면 건설(-82%)·전기가스(-56%)·기계(-41%)·유통(-35%) 등 10개 업종지수의 2007년 7월 이후 등락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이들을 포함해 총 15개 업종이 코스피 수익률을 밑도는 부진한 성과를 나타냈다. 대부분 중국에 대한 노출도가 크거나 내수 관련 업종들이다.
코스피가 처음 2000선에 올라선 2007년 7월25일(2004)을 기준점으로 수익률이 좋았던 5개 업종에 속하는 종목들로 지수를 산출해 보면 지난 9일 기준 5758에 달하는 반면, 수익률이 부진했던 15개 업종에 속하는 종목군으로 생성한 지수는 1486에 불과하다.
개별 종목들의 주가 흐름을 살펴봐도 투자자들이 2007년 이후 힘든 시간을 보내왔음을 알 수 있다. 2007년 7월의 2000선 도달 이후 총 482개 종목이 코스피 대비 초과수익을 기록했지만, 707개 종목은 코스피 수익률을 밑돌았다. 특히 코스피 수익률을 하회한 707개 종목 중 592개는 16년 동안의 절대 수익률이 마이너스였다.
한편 2007년 7월 이후 부도 발생 등의 사유로 상장이 폐지된 종목도 446개에 달한다. 상장 폐지 종목들을 포함할 경우 최근 16년 동안 수익률이 마이너스인 종목은 1038개나 된다. 같은 기간 LG화학(580%)·삼성전자(431%)·현대차(135%) 등 한국 경제를 대표하는 일부 대기업들의 주가 움직임이 양호했기 때문에 코스피가 그나마 완만한 강세를 나타냈다. 다수 종목들은 투자자에게 지뢰밭에 다름 아니었다.
지금까지는 특정 기간의 주가 등락을 살펴봤는데, 주가지수의 절대 수준을 살펴보는 것에서도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코스피의 업종지수들은 1980년 1월4일 100을 기준점으로, 이후의 주가 등락을 반영해 산정되고 있다. 한국 증시의 종합적 성적표인 코스피는 8월9일 현재 2605이니 43년여 동안 26배 상승한 셈이다.
개별 업종지수들의 편차는 매우 큰데, 역시 8월9일 기준 코스피 제조업지수는 7067인 데 비해, 금융업지수는 360에 불과하다. 금융업 주가의 장기 부진이 한국 증시의 발목을 잡아 왔던 셈인데, 1980년 이후 금융업지수의 연평균 등락률은 3%에 불과하다.
건설업 주가 장기 부진은 엽기적
은행과 증권, 보험사 등이 주축인 금융사들이 돈을 못 벌어 주가가 부진한 것은 아니다. 최근 금융지주회사들은 사상 최고 수준의 순이익을 올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업 주가가 장기간 부진한 이유는 규제 리스크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금융업은 주주들의 출자금보다는 고객들이 맡긴 예탁금을 활용해 영업을 하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금융당국의 규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은 개발연대 시기에 관치금융이 극심했는데, 제조업 부실이 금융으로 전가된 후 국민 세금으로 이를 메꾸고 다시 관료들의 입김이 강화되는 패턴이 반복돼 왔다. 규제산업이라는 특성을 금융이 떨쳐버리기는 어렵겠지만,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는 상장사로서 주주가치가 장기간 파괴돼 왔다는 점에 대한 고려는 필요해 보인다.
이 밖에 유통(382)·통신(355)·섬유의복(320)·건설(71) 등도 업종지수 절대치가 낮다. 내수경기의 장기 부진과 규제 리스크가 주가에 투영된 결과인데, 건설업 주가의 장기 부진은 엽기적이란 생각이 들 정도다. 주가가 43년 동안 조금이라도 오르기는커녕 29% 하락했기 때문이다.
건설주의 장기 부진은 기저효과에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 앞서 코스피의 세부 업종지수는 1980년 1월 초를 기산점으로 산정된다고 했는데, 건설업종의 경우 1970년대 후반의 주가가 기록적으로 높았다. 당시의 건설업은 당대 최고 성장산업이었다. 중동 건설 붐을 등에 업고 오일머니를 빨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경향신문은 ‘긴 낮잠 증권가에 건설주만 불사조’(1977년 7월26일), ‘건설주 폭등, 과열 막기 위한 대책 검토’(1978년 4월24일) 등의 기사를 실었다. 1970년대 후반 건설업지수는 50배 가까이 급등했다.
어떤 자산이건 성장에 탐닉해 너무 비싸게 사게 되면, 장기간 보유해도 손실을 만회하기 힘들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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