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 (84) 남원 광한루
두 장의 사진은 전북 남원시에 있는 광한루(廣寒樓)의 1971년 겨울과 2023년 여름의 모습을 담고 있다. 왼쪽의 2층 기와집이 광한루이고, 연못 위의 돌다리가 오작교(烏鵲橋)이다. 광한루는 밀양 영남루,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한국 4대 누각으로 꼽힌다.
그런데 광한루는 나머지 누각과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나머지 3개 누각은 물론, 우리나라 누각의 대부분은 경치가 빼어난 강변이나 전망이 좋은 언덕 위에 지어져 있으나, 광한루는 남원의 젖줄 역할을 하는 요천이라는 하천에서 조금 떨어진 평지에 서 있다. 즉 광한루는 자연 그대로의 경치보다 인공적으로 꾸며진 경치를 즐기기 위한 곳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광한루가 있기까지는 많은 사람의 손길을 거쳤으며, 그들은 조선을 대표하는 관리였다. 광한루를 처음 지은 사람은 남원으로 유배된 명재상 황희였다. 그는 1419년 조상이 글을 읽던 서실(書室) 터에 누각을 세우고 광통루(廣通樓)라고 이름 지었다. 광통루를 광한루로 개명한 이는 훈민정음 창제에 공헌한 정인지였다. 1444년 전라도관찰사 정인지는 이 누각의 아름다움을 월궁(月宮)에 비유해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라고 칭하였고, 이를 줄여 광한루라 부르게 되었다. 광한청허부는 달의 여신 항아가 산다는 궁전이다.
1461년에는 남원부사 장의국이 요천의 물을 끌어와 누각 앞에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을 파고, 그 위로 견우직녀의 전설을 담은 오작교를 놓았다. 그 후 1582년에는 전라도관찰사 정철이 연못에 영주, 봉래, 방장 등 삼신산(三神山)을 상징하는 3개의 섬을 만들었다. 현재의 광한루는 정유재란으로 불탄 뒤, 1626년 남원부사 신감이 재건한 것이다. 남원과 인연을 맺은 유명인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천체우주의 원리와 신선 사상을 반영해 이상향으로 조성한 누각과 정원이 바로 광한루와 광한루원(廣寒樓苑)이다.
광한루는 ‘춘향전’의 무대이기도 하다. 이몽룡과 성춘향이 처음 만난 곳이 광한루이다. 그래서 광한루원에는 춘향관, 월매집 등 춘향과 관련된 볼거리가 만들어져 있고, 매년 남원을 대표하는 문화 행사인 춘향제가 열린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한국의 누각은 올라가 앉아 보아야 그 진정한 가치를 음미할 수 있는데, 광한루는 훼손 우려로 출입이 금지돼 밑에서 올려다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정치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지리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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