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 노송 부러지고, 맨홀 뚜껑 시내버스 덮치고 강원 영동은 '물폭탄'… 대구선 물 휩쓸린 60대 사망
침수·붕괴·고립·도로 통제 등 피해 잇따라
침수·강풍 대비… 전국서 1만명 일시 대피
폭우 피해 컸던 예천·오송 주민들도 '긴장'
제6호 태풍 ‘카눈’이 한반도에 상륙하면서 전국 곳곳에서 침수, 시설물 붕괴, 고립, 도로 통제 등 다양한 피해가 속출했다. 집중호우가 내린 대구에선 불어난 하천 수위로 사망과 실종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고, 강원 영동지역에선 400mm가 넘는 물 폭탄이 쏟아졌다. 서울에서도 나무가 쓰러져 외벽 펜스가 손상되거나 도심의 한옥 지붕이 무너졌다
10일 소방 당국 등에 따르면 이날 낮 12시 33분쯤 대구 군위군 효령면 불로리에서 소방대원들이 다른 피해 신고를 받고 출동하던 중 물에 떠 있는 A(67)씨를 발견했다. A씨는 구조 후 심정지 상태에서 병원으로 옮겼으나 끝내 사망 판정을 받았다. 오후 1시 45분쯤 대구 달성군 가창면 상원리에서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가던 장애인이 도랑에 빠졌다. 소방과 경찰은 인근에서 휠체어를 발견했지만 사람이 보이지 않아 장비 9대와 100여 명을 동원해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같은 날 오전 6시쯤 경북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서 천연기념물 357호로 지정된 반송이 강풍에 쓰러졌다. 반송은 줄기가 밑동에서부터 여러 갈래로 갈라져 가지와 구별 없이 마치 우산과 같은 모습을 한 소나무를 말한다. 쓰러진 나무는 수령 400년으로 추정되며 높이 13.1m 둘레 4.05m로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반송으로 알려져 있다. 수령 600년으로 추정되는 천연기념물 제103호 속리산 정이품송 가지 2개도 부러졌다. 이날 속리산엔 순간풍속 초속 18.7m의 강한 비바람이 몰아쳤다. 보은군 관계자는 “많은 비로 무거워진 가지가 강한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폭우로 인해 밀려드는 빗물의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맨홀 뚜껑이 시내버스를 덮친 일도 있었다. 오전 8시 5분쯤 창원시 의창구 대원동 부근에 정차해 있던 101번 시내버스 밑바닥으로 맨홀 뚜껑이 뚫고 올라왔다. 당시 버스에는 5, 6명의 기사와 승객이 탑승 중이었지만, 맨홀 뚜껑이 승객 좌석 쪽이 아닌 버스 차체 중앙 부분으로 뚫고 들어와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 버스는 바로 운행을 중단했다. 창원시 관계자는 “맨홀 뚜껑이 많은 비로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위로 솟구치면서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설명했다.
폭우로 인한 고립 사고도 발생했다. 경북 경주와 경산 지하차도에서 각각 차량 1대씩이 물에 잠겼으나 2명의 운전자 모두 무사히 구조됐다.
강원 영동지역은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퍼붓는 비로 도로 곳곳이 잠겨 도시기능이 마비됐다. 강릉과 동해, 삼척, 속초, 고성, 양양 등 동해안 시군에서 비 피해 360건이 접수됐다. 고성 거진ㆍ간성읍 등지에서 주민 837명이 물 폭탄을 피해 급히 대피했다.
속초엔 자동기상관측장비(AWS) 기록상 오후 2시 5분부터 오후 3시 5분까지 91.3㎜ 비가 내렸다. 고성 대진리에도 시간당 84㎜의 장대비가 쏟아져 누적 강수량이 400㎜를 넘었다.
고성에선 오후 한때 간성읍, 거진읍 시가지가 물에 잠겼다. 거진읍 생활체육센터로 대피한 김모(71)씨는 “오후 들어 한치 앞이 안보이더니 금세 마을 입구가 불어난 물에 막혀버렸다”며 “피해 없이 집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 뿐”이라고 말했다. 속초에서도 금호동 등 주택 44곳과 관광시장 등 상가 32곳이 물에 잠겼다. 한두삼 속초관광수산시장 상인회장은 "태풍 전에 배수로 정비를 다 마쳤지만, 비가 이렇게 쏟아지니 대책이 없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강릉에선 이날 오전 경포 해수욕장 인근 진안상가가 물에 잠겼고, 경포호 인근 도로에서는 침수 피해로 인해 미처 대피하지 못한 주민 일부가 소방대원들의 도움을 받아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다.
지난달 폭우로 인해 17명의 사상자가 나온 경북 예천군에서도 나무가 쓰러지거나 토사 유실 등 피해가 발생했다. 예천군은 태풍에 대비해 주민 700여 명을 마을회관 등으로 임시 대피시키는 등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궁평지하차도 참사 현장인 충북 청주시 오송읍 일대 주민들도 임시 대피소 등으로 몸을 피했다.
태풍이 이날 오후 9시 기준 경기 동부까지 북상하면서 서울에서도 크고 작은 시설물 피해가 잇따랐다. 종로구 필운동에 있는 한옥 지붕 일부가 붕괴해 인근 두 가구가 긴급 대피했다. 다행히 빈 집이어서 인명 피해는 없었다. 앞서 오전 9시 47분에는 강북구에서 주택 마당으로 나무가 쓰러지면서 외벽 펜스가 붕괴됐고, 서대문구와 양천구, 노원구, 광진구, 도봉구 등에서 가로수가 쓰러지거나 나뭇가지가 부러졌다는 신고가 다수 접수됐다. 서울 시내 하천 27곳은 모두 전면 통제됐다.
태풍이 한반도 전역에 많은 피해를 미칠 것으로 예상되며 경남 318개교와 경북 243개교, 부산 238개교 등 1,579개교가 휴업하거나 원격 수업으로 전환하는 등 학사 일정을 조정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태풍에 대비해 10일 오후 6시 기준 16개 시도, 108개 시군구에서 1만487가구 1만4,153명이 일시 대피했다고 밝혔다. 경북이 9,208명으로 가장 많고 경남 2,960명, 전남 975명, 부산 350명 등이다. 도로 620곳을 비롯해 둔치주차장 284곳, 하천변 598곳, 해안가 198곳, 21개 국립공원 611개 탐방로와 숲길 전 구간도 전면 통제됐다.
강풍과 높은 파고 등으로 기상이 악화하면서 하늘길과 뱃길도 막혔다. 14개 공항에서 국내선과 국제선 등 355편을 비롯해, 여객 102개 항로 154척 운항이 중단됐다. 철도 역시 이날 첫차부터 고속열차 161회, 일반열차 251회의 운행이 중지됐다.
중대본은 관계기관에 산사태, 축대ㆍ옹벽붕괴, 비탈면붕괴, 반지하주택, 하천변 등 위험지역 거주자는 즉시 대피 조치하도록 하는 한편 침수 우려가 있는 지하차도에 대해 지역자율방재단, 경찰서 등을 지정하고, 현장에 배치해 긴급상황 시 즉시 통제할 것을 지시했다. 또 각 기관에서는 행사, 체험 등 야외활동을 자제하고, 부득이한 경우 실내행사로 전환하도록 했다.
김재현 기자 k-jeahyun@hankookilbo.comㆍ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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