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당신의 지갑을 태운다 …전 세계 식탁물가 비상

박은하 기자 2023. 8. 1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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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 폭염·가뭄·홍수에 흉작
토마토·할라피뇨 품귀…곡물가 상승
하반기 이후 더 심해질 수 있어
인도 뭄바이의 한 여성이 지난 4일(현지시간) 시장에서 토마토를 고르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쌀밥, 토마토, 올리브유, 스라리차 소스, 쇠고기…. 전 지구를 덮친 이상 기후로 세계인의 식탁이 위협받고 있다. 세계 주요 농산물 산지마다 가뭄이나 폭우로 흉작이 발생한 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까지 더해져 전 세계의 식탁물가는 계속 고공행진할 전망이다.

먼저 ‘쇠고기 대국’ 아르헨티나에서 쇠고기 사먹기란 힘든 일이 됐다. 아르헨티나 인구 3분의 1이 거주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지난 6월 쇠고기 가격은 1년 전보다 72% 올랐다. 가뭄으로 목초지가 황폐해진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4대째 농부인 아우구스토 맥카시(39)는 지난 4월 소 800마리 중 200마리를 팔았다. 그는 “가뭄으로 소들에게 먹일 풀이 충분하지 않았고 콩도 상태가 좋지 않아 수확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에 따르면 아르헨티나의 올해 콩 생산량은 -51%, 옥수수는 -36%, 밀은 -48% 감소할 전망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업계를 인용해 오는 10월까지 쇠고기 가격이 40% 더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남유럽에서는 올리브유 가격이 1년 전보다 2배 이상 치솟고 있다. 지난주 스페인의 엑스트라버진올리브유 1㎏ 당 가격은 지난해보다 약 125% 높은 가격에 거래됐다. 올봄 가뭄 때문이었다. 1991~2020년 평균 14.2도였던 4월 기온은 올해는 38.7도까지 치솟았다. 스페인 농업단체인 COAG는 지난 4월 중순 가뭄으로 350만헥타르(㏊)의 농지가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입었다”고 발표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스페인의 히트플레이션(heatflation)이 당신의 지갑을 태울 것”이라고 전했다. 히트플레이션은 열을 의미하는 ‘히트(heat)’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폭염으로 인해 식량가격이 급등하는 현상을 말한다. 스페인은 전 세계 올리브 수요의 3분의 1, 유럽연합(EU) 채소 수요의 4분의 1을 공급하고 있다.

2023년 4월 13일(현지시간) 스페인과 프랑스 경계 지역인 피레네조리앙탈 리허살트 지역과수원 인근을 흐르는 강이 극심한 가뭄으로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박은하 기자

이뿐만이 아니다. 멕시코를 덮친 가뭄은 할라피뇨 고추 흉작으로 이어지면서 세계적으로 인기있는 ‘스리라차 소스’의 가격을 1병당 5달러에서 최대 80달러까지 치솟게 만들었으며, 인도에서는 ‘금값’이 된 토마토 도둑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근 인도 북서부 마하슈트라의 한 농부는 자신의 토마토 밭에 거금을 들여 폐쇄회로(CC)TV를 설치했다. 지난 5월 수확철 홍수로 인해 올 상반기 토마토 가격이 445% 넘게 오르자, 토마토 운송 트럭이 통째로 사라지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설탕가격은 11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브라질, 멕시코, 인도 등 설탕의 원료인 사탕수수 생산국들이 이상기후 현상으로 수확량에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설탕가격 상승은 아이스크림, 초콜릿 등 가공 식품의 가격까지 줄줄이 끌어올리고 있다.

문제는 히트플레이션이 하반기 이후 더욱 극심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호주 농무부는 호주가 7월부터 엘니뇨의 영향권에 들면서 강우량이 줄어들어 밀 생산량이 최대 기록 대비 34%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5호 태풍 독수리가 강타한 중국 북동부 허난성, 산둥성, 허베이성에서도 홍수로 인한 생산량 감소가 예상된다. 이 지역은 중국 전체 곡물의 24%를 생산한다. 지난해 기록적 홍수로 농경지를 잃은 파키스탄의 경우 지난 4월 식량 가격 상승률이 전년 대비 48%에 달했다.

각국의 보호무역주의와 불안정한 국제 정세가 식품 가격에 기름을 붓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최근 발표한 쌀가격지수는 1년 만에 19.6% 급등하면서 1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인도 정부가 지난달 바스마티 품종을 제외한 나머지 쌀 수출을 금지한 영향이다. 이로 인해 쌀을 주식으로 삼는 태국, 베트남, 네팔 등 인접국들이 크게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인도는 설탕 수출 제한 조치도 검토 중이다. 러시아의 흑해곡물협정 파기로 인해 우크라이나 밀 수출이 제한되면서 밀 가격 역시 최대 15% 오를 것이라고 국제통화기금(IMF)이 전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2020년 초에 비해 소비자 식품 가격은 유럽에서 약 30%, 미국에서 23% 상승했으며 저소득 국가에는 더 큰 타격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의 투자은행 바클레이즈의 분석가 히랄 파텔은 “세계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농작물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증가하고 있다. 변동성을 분석하기 더욱 어려워졌다”고 NYT에 말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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