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기억문화’, 홀로코스트 넘어 식민주의 반성으로 이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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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특파원 부임 직전 베를린에 처음 왔을 때다.
독일의 식민주의 역사 전문가인 정치학자 헤닝 멜버는 2020년 7월 한 논평에서 "독일은 홀로코스트를 적극적으로 기억하려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식민지배 과거를 해결하기 위해 행동하는 데에는 실패하고 있다"며 "식민지 기억상실에 빠진 것"이라고 꼬집었다.
독일 특유의 '기억문화'(Erinnerungskultur)는 나치 반성, 홀로코스트를 넘어 식민주의 반성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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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특파원 칼럼] 노지원
베를린 특파원
지난해 특파원 부임 직전 베를린에 처음 왔을 때다. 베를린이란 도시를 개괄적으로나마 알고 싶어 3시간짜리 투어를 신청했다. 유럽 역사를 담은 박물관이 한곳에 모인 ‘박물관섬’을 지나 베를린돔에 닿았을 때였다. 독일인 가이드가 길 건너편 으리으리한 궁전을 가리켰다. “베를린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입니다.” 2차 세계대전 중 파괴된, 한국으로 치면 경복궁에 해당하는 옛 베를린궁을 재건해 박물관으로 탈바꿈시킨 ‘훔볼트 포럼’이었다.
독일 분단 시절 이 궁궐터에는 동독 의회 및 문화시설이 들어섰지만, 통일 뒤 독일 정부는 이를 허물고 과거 독일제국의 유산을 복원했다. 이데올로기와 무관하게 옛 베를린에 향수를 느끼는 시민에게 이 박물관이 ‘비호감’이 된 이유다. 그뿐 아니라 도심 한가운데 전쟁의 근본 원인인 옛 제국의 상징이 자리하자 일각에선 독일이 ‘기억상실’에 빠졌다고 비판했다. 베를린 시민, 관광객 상당수가 훔볼트 포럼 겉만 보고 내부 역시 궁일 거라고 착각하거나, 따가운 시선을 보내며 들어갈 생각도 안 하는 까닭이다.
사실 훔볼트 포럼은 독일의 식민주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겠다는 목표를 내세우며 2021년 9월 개관했다. 현재 눈에 띄는 전시가 있다. 바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베닌 왕국(현 나이지리아)의 청동예술품 특별전이다. 1897년 영국은 베닌 왕국을 침략해 궁을 장식하던 베닌 브론즈 등 수천점을 약탈해 유럽으로 가져가 전세계에 팔았다. 그중 약 1100여점이 몇년 전까지만도 독일 전역에서 전시됐다. 하지만 2022년 7월 독일 정부는 문화재를 나이지리아 정부에 돌려주기로 결정했다. 훔볼트 포럼 역시 보유하던 베닌 문화재를 반환했고 다시 20여점을 ‘빌려’와 전시 중이다. 전시장엔 이러한 과거와 현재의 서사가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다만 식민주의 반성 노력은 이제 시작일 뿐 갈 길이 멀다. 훔볼트 포럼에서도 식민지배기 들여온 문화재 수십만점 대부분을 충분한 맥락 설명 없이 나열식으로 전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내부에서는 ‘약탈 증거가 있어야 반환할 수 있다’는 주장과 ‘어떻게 합법적으로 획득했는지 밝히지 못하면 그것은 훔쳐온 것’이라는 주장이 대립하며 토론이 진행 중이다.
20세기 초 세계 4위 식민지 대국이었던 독일은 식민지들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1904~1908년 서남아프리카 나미비아에서 수만명을 집단 학살한 것이 대표적이다. 동아프리카에선 초토화 정책으로 수십만 아프리카인이 굶어 죽었다. 독일은 100여년 만인 2016년에야 나미비아 학살을 사죄했다. 하지만 독일 사회에 과거 식민지배를 엄격히 재조명하려는 공식 담론은 부족하다.
독일의 식민주의 역사 전문가인 정치학자 헤닝 멜버는 2020년 7월 한 논평에서 “독일은 홀로코스트를 적극적으로 기억하려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식민지배 과거를 해결하기 위해 행동하는 데에는 실패하고 있다”며 “식민지 기억상실에 빠진 것”이라고 꼬집었다. 제국주의 독일의 식민지배 기간(1884~1915)은 나치 정권(1933~1945)의 두배가 넘는다.
독일 특유의 ‘기억문화’(Erinnerungskultur)는 나치 반성, 홀로코스트를 넘어 식민주의 반성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기억의 사각지대를 밝히려는 이 박물관의 걸음걸이가 기대된다.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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