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걸 칼럼] 부실 잼버리, 호되게 책임 물어야 한다
일본 히로시마에서 개최된 G7 정상회담을 앞둔 지난 5월,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주요국의 국력을 비교 평가한 적이 있었다. 군사력과 경제력, 과학기술력 등을 종합적으로 비교한 이 평가에서 대한민국은 일본, 프랑스 등을 제치고 당당히 세계 6위에 자리매김했다. 이에 앞서 미국 시사주간지 유에스 뉴스&월드 리포트의 세계 강대국 순위에서도 우리나라는 78개국 중 8위로 평가되었다. 누가 봐도 당당한 선진국의 일원임을 국제사회가 인정한 것이다.
그런 나라가 불과 4만5000여 명이 참여하는 세계 잼버리 하나 제대로 개최하지 못해 국제적 망신을 자초했다. 한류로 세계적 찬사를 한몸에 받던 나라가 하루아침에 개도국 수준보다도 못한 화장실과 샤워시설, 모기 등 각종 벌레가 창궐한 낮은 위생상태로 전 세계의 집중적 비난을 받았다. 국격은 땅에 떨어졌고 국민의 자존심은 큰 상처를 입었다.
부실 잼버리는 다양한 원인의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우선 구조적 측면에서 새만금 매립지는 폭염과 장마, 태풍이 예상되는 시기에 캠핑이 근본적으로 부적합한 지역이다. 이 지역 생태계를 관찰하고 보호하는 시민단체가 수년 전부터 부적합성을 지적해 왔지만 지역 정치인과 전라북도, 부안군 등 정치권과 지방정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들에게 잼버리는 새만금지역 개발을 위한 기반 시설 확보의 수단에 불과했다. 정치인들은 지역의 표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새만금에의 국비 투자 유치에 열을 올렸다.
조 단위 국비를 지원받아 4차선 도로를 확보하고 국제공항 건설에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한 것이 그 때문이다. 지방 공무원들에게 잼버리는 각종 해외출장 비용을 정당화시켜주는 기가 막힌 호재일 뿐이었다. 전라북도와 부안군은 총 80여 차례 가까운 외유성 출장을 다녀왔고, 그런 도덕적 해이 속에 잼버리의 성공적 개최라는 공적 의무감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미국 잼버리가 개최되었을 때 현지 출장을 다녀온 출장팀은 출장보고서를 통해 비교적 관점에서 새만금의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했지만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잼버리가 목적이 아니라 국비유치와 기반시설 확보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부실 잼버리의 두 번째 문제는 추진 체계의 복잡성과 책임 분산에 있었다. 한국 스카우트연맹, 전라북도, 부안군, 여성가족부, 문화관광체육부, 행정안전부 등 다수의 관계자가 조직위원회에 있었고, 이에 따라 책임이 분산되었다.
의사 결정의 포인트가 나뉘어 있으니 잼버리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필요한 사업의 발주 시기와 예산의 효율적 활용을 위한 최종 결정이 신속히 이루어질리 없었다. 게다가 5년 여 준비기간 동안 중앙정부도 세 차례 바뀌면서 주무 부처의 장관도, 관계 공무원들도 수없이 바뀌었다.
순환보직제로 잼버리 관련 업무 출장자의 대부분은 현재 이 업무를 담당하지 않는다. 현장은 모르고 책상에 앉아 입으로 업무를 수행하니 잼버리가 제대로 추진되었다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30여년 전 강원도 고성에서 개최된 잼버리 대회도 문제없이 잘 치렀던 대한민국이 한 세대 후 자타가 공인하는 8대 강국으로 도약했음에도 허접한 상태로 잼버리를 치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이러한 정략적 선택, 도덕적 해이, 행정체계의 취약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여성가족부는 청소년 정책의 주무 부처라는 이유로 중앙의 지원부처가 되었지만, 실제 잼버리를 준비하고 지원하는데 필요한 예산과 인력, 전문성, 그리고 유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를 이끌어갈 리더십 등 어느 하나도 제대로 갖춘 것이 없었다. 그 결과, 2015년 일본이 새만금과 유사한 야마구치현의 해안가 매립지에 불과 38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잼버리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는데 반해 우린 직접 예산만 그 3배인 1171억 원을 쓰고도 총체적 실패와 함께 국제적 망신을 자초했다.
정치권은 서로를 비난하며 책임 떠넘기기에 여념이 없다. 예상을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한심한 정치권에 실망을 넘어 절망한 지 오래되었기에 그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이유도,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이번 부실 잼버리는 전 과정에 걸친 철저한 감찰과 수사를 통해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지역이기주의와 정치적 이익이 결합돼 부적합한 지역을 선정한 것이나 관계자들의 도덕적 해이, 비효율적인 행정체계 등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명확히 밝혀 다시는 이런 어이없는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막대한 국민 혈세를 수업료로 지불하고서 그나마 얻어야 할 중요한 교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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