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AI·양자·반도체에 '美돈줄' 끊는다…韓에 동참 압박 가능성
수출 규제 이어 자본통제까지…中기술굴기 막아
세부지침 따라 강도 달라질듯…간접투자는 제외
해빙 모드 들어간 미·중 관계… 다시 악화일로
한국 직접적 영향 제한적…동맹국 동참 요청 관건
[뉴욕=이데일리 김상윤 특파원 조민정 기자] 중국의 첨단 반도체와 양자 컴퓨터, 인공지능(AI) 등 기업에 대한 미국 자본의 투자가 사실상 막힌다. 반도체 수출 규제에 이어 자본투자 규제까지 꺼내 들면서 중국의 ‘기술 굴기’에 확실한 타격을 입히겠다는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의도로 보인다. 최근 해빙 분위기가 형성됐던 미·중 관계가 다시 경색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마저 나온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9일(현지 시각)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중국의 첨단 기술 기업에 대한 투자 제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의회에 보낸 성명에서 “군사, 정보, 감시, 사이버 지원 능력에 대한 중요한 민감한 기술과 제품에서 우려 대상 국가(중국)의 발전이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되고 있다”며 “이같은 위협을 대처하기 위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한다”고 밝혔다.
행정명령에 따르면 중국에 투자하려는 미국 사모펀드, 벤처캐피털을 비롯해 합작·지분 투자나 그린필드(법인신설) 투자에 나서는 미국 기업도 사전에 투자계획을 의무적으로 재무부에 신고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이 투자금지 등 결정을 내릴 방침이다. 규정을 위반한 미국 투자자들은 벌금 납부 또는 획득한 중국 회사 지분의 강제 처분 등 조치를 당할 수 있다. 신고 규정이긴 하지만 사실상 투자가 막힌 것으로 해석된다.
바이든 정부가 이같은 조치를 발표한 것은 안보 관련 중국 첨단 산업에 미국 자본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원천적으로 막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중국의 반도체 생산 기업에 대한 미국산 첨단 반도체 장비 판매를 사실상 금지하고 AI와 슈퍼컴퓨터에 사용되는 첨단 반도체의 수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발표했는데, 한발 더나아가 ‘돈줄’까지 틀어막은 셈이다. 중국이 수출 규제에도 불구하고 첨단 기술 개발을 지속하자 미국은 심지어 반도체 장비 수출기준을 더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당초 블룸버그는 반도체, AI, 양자컴퓨팅 등 최첨단 분야에서 얻는 매출이 전체의 절반 이상인 선도 중국 기업들에 대해서만 투자를 금지할 것이라고 보도했지만, 이날 발표에는 전면 통제인지 부분 통제인지 담기지 않았다. 이는 향후 의견수렴을 거친 뒤 지침 형태로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당초 예상보다 규제 수준이 완화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 의회 강경파 사잉에선 자본 규제 대상에 생명공학과 청정에너지도 포함하고, 심지어 주식시장을 통한 거래, 지수연동형 펀드 등 간접투자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거셌다. 재무부는 간접투자에 대해서는 규제를 면제하는 것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의회의 강한 규제 목소리에 대항해 나름 행정부가 규제 범위를 제한하는 데 성공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백악관은 “이번 조치가 국가 안보상 이유로 취해진 것이지 중국과 경쟁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미 행정부가 실질적으로 자본 투자를 규제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AI, 양자컴퓨팅 등에 대한 정의부터 범위까지 세부적으로 정하는 게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무역 및 기술프로젝트 책임자 에밀리 벤슨 선임연구원은 “행정부는 어떤 AI 기술이 군사용인지 결정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조치로 지난 6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방중 이후 미·중이 고위급 대화를 본격적으로 재개하며 형성된 해빙 분위기가 다시 악화할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중국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류펑위(劉鵬宇) 주미 중국 대사관 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미국이 무역과 과학기술 이슈를 무기화하고 정상적인 경제·무역 교류와 기술 협력에 의도적으로 장애물을 만드는 데 반대한다”며 “이 상황을 면밀히 파악해 우리의 권익을 확고하게 보호할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 기업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이다. 미국 자본의 중국 기업 투자 규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반도체 수출 규제처럼 미국이 한국 등 동맹국에도 동참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불확실성은 남아 있다. 백악관은 “이번 규제를 만들면서 미국의 동맹국과 파트너들과 논의했다”며 “이같은 목표를 진전시키기 위해 이들과 계속 긴밀히 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형준 서울대 명예교수(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는 “중국이 투자 규제 등으로 반도체 수출에 제동이 걸리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우리 기업엔 되레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면서도 “다만 중국 반도체 공장에 수출하는 우리 소재·부품·장비 업체들은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번 조치는 45일간 업계 의견 수렴과 세부 규칙 제정에 필요한 시간을 고려하면 자본 통제 행정명령은 내년에 시행될 전망이다.
김상윤 (yoo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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