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국제 표준' 태풍 닥친다 … 테슬라·현대차도 선점 경쟁

송민근 기자(stargazer@mk.co.kr) 2023. 8. 10.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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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美 표준기관·협회 '협력 강화방안' 간담회
북미 충전표준 NACS 맞서
현대차, GM·벤츠와 공동대응
채택 소외땐 막대한 비용 소요
EU·中·日 국가 표준전략 수립
개별 기업간 이해관계 엇갈려
협력 이끌려면 정부가 나서야

◆ 국제 표준 ◆

9일 서울 강남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호텔에서 한미 표준협력 간담회가 열렸다. 참석자인 진종욱 국가기술표준원장, 강명수 한국표준협회장, 강병구 고려대 경영학부 교수, 조 바티아 미국국가표준협회(ANSI) 회장, 제인 모로 미국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 표준정책선임자문관(왼쪽부터)이 한국과 미국의 표준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

'테슬라·포드 vs 현대차·GM·벤츠·스텔란티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인 미국 전기차 시장을 두고 주요 완성차 업체가 표준 경쟁을 벌이고 있다. 누가 미국 전기차 충전의 '표준'이 될 것인가를 두고 테슬라가 주도하는 '북미충전표준(NACS)' 방식과 현대차그룹을 비롯해 다른 전기차 업체들이 사용하는 복합충전체계(CCS) 방식이 경쟁하는 상황이다. 한쪽이 승자로 결정되면 다른 한쪽은 자사 전기차 충전 시스템을 완전히 갈아엎어야 할 판이다. 현대차그룹을 비롯해 7개 완성차그룹은 북미 지역 전기차 충전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해 3만개의 충전 인프라스트럭처를 직접 설치한다는 계획까지 밝히고 나섰다.

SK그룹이 투자한 인공지능(AI) 반도체 팹리스(설계전문회사) 사피온은 칩 양산을 앞두고 있을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성능과 전력 효율성을 기존 대비 4배까지 끌어올리자 고객사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을 정도다. 자체 개발한 소프트웨어 개발 키트(SDK)까지 갖추고 있지만 정작 이를 활용하기는 쉽지 않다. 전 세계 AI반도체 표준을 엔비디아가 꽉 잡은 탓에 새로 들어오는 대학·대학원 출신들이 엔비디아 개발 언어인 '쿠다(CUDA)'밖에 쓸 줄 모른다고 하소연하는 상황이다.

반도체·인공지능 등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새로운 기술의 '표준'을 선점하기 위해 많은 나라가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미래 산업의 표준을 선점하면 자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타국 기업에 비용과 기술비용을 증대시키는 효과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도 반도체·인공지능·자율주행자동차·양자기술·탄소중립 5대 표준화 목표를 제안하며 표준 경쟁력을 강화하고 나섰다.

9일 국가기술표준원과 한국표준협회, 미국 국가표준협회(ANSI),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는 공동으로 양국의 표준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간담회를 열었다.

강병구 고려대 경영학부 교수는 "각국은 자국 기술을 국제표준으로 만들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며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등 주요국은 모두 국가 차원의 표준 전략을 수립 중"이라고 했다.

미국은 핵심·신흥 기술에 대한 국가표준전략을 올해 5월 발표했다. EU는 양대 국제표준화기구인 ISO와 IEC에서 지리적 이점과 수적 우세를 바탕으로 경쟁하고 있다. 일본은 오랜 기간 여러 표준화 기구에서 상임이사국으로 활동해온 것을 내세우고 있으며, 중국은 '중국 표준 2035' 전략을 발표하며 표준협력을 강화하는 모양새다.

표준화는 기업의 이윤과 직결된 사안인 만큼 쉽지 않다. 예를 들어 휴대전화를 충전하는 데 사용하는 케이블 형태만 해도 많은 기업이 USB-C 타입을 채택하고 있지만, 애플은 자신만의 독자 규격인 '라이트닝'을 고수하고 있다.

USB-C 타입을 더 많은 기업이 사용한다지만 애플 입장에서는 표준 경쟁에서 패배를 인정하는 순간 다른 표준에 맞춰 제품을 바꾸기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진종욱 국가기술표준원장은 "지난 4월 한미 정상은 경제안보 분야에서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하기로 했다"며 "이번 표준협력 포럼은 정상회담 후속 조치의 일환으로 핵심 기술 분야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개별 기업들이 표준 선점을 위해 발 벗고 나서지만 개별 기업들만으로는 표준 확보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자동차 표준을 두고 국내 기업끼리도 의견이 갈릴 수 있다.

각자 기반한 기술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 기업들의 공통적인 표준을 만들기 어렵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개별 기업끼리는 표준협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공공이 나서 '교통정리'를 해줘야 한다"며 "그래야 한국의 표준이 하나로 확립되고, 글로벌 표준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한미 양국의 협력이 강화되면 큰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진 원장은 "미국과 협력이 논의되는 양자기술, 반도체 등 분야는 미국이 앞선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며 "한미가 전략적 표준 파트너십을 갖추면 기술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간담회에서 양국 대표들은 양자기술, 인공지능, 반도체, 자율주행차 등 국가 첨단전략산업 4대 핵심 분야, 17대 첨단기술 분야 협력을 논의했다.

제인 모로 NIST 표준정책선임자문관은 "신기술 분야에서 미국은 국제 표준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정보 공유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기술 개발과 기술 고도화 과정에서 꼭 필요한 표준을 마련하면 글로벌 무대에서 자국 기업의 경쟁력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 바티아 ANSI 회장도 한미 표준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바티아 회장은 "기술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는 만큼 표준협력에 대한 수요도 커지고 있다"며 "특히 표준을 한번 선점하면 그 효과가 크기 때문에 이를 위해 한국과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한미 양국이 표준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면 의료, 통신, 제조 등 사람의 삶 전 분야에 영향을 주는 기술 개발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바티아 회장은 "ANSI는 국표원, 표준협회와 협업하며 꾸준히 표준 관련 정보를 공유해 양국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공적 영역에서 상무부 산하 NIST가 표준 관련 정책을 담당하고, 민간 분야에서는 ANSI가 표준과 관련한 협력을 이끌고 있다. 한국은 국가기술표준원이 정부 차원의 표준 제정과 확립을 이끌고 민간에서는 표준협회가 ANSI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

양국의 표준협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네트워크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모로 자문관은 "ANSI와 국표원이 협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NIST도 국표원과 교류·협력을 강화할 것"이라며 "공동 연구개발(R&D)을 추진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국표원과 NIST는 표준 정책 수립뿐 아니라 공동 R&D, 인력 양성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으며 신흥국 대상 공적원조(ODA)를 통해 한미 표준협력에 참여하는 국가를 더욱 늘리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양국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자체적인 표준 역량 제고도 필수적이다. 강명수 표준협회장은 "양대 글로벌 표준화 기구인 ISO와 IEC의 임원이 되면 자국 산업계 의견을 표준화 과정에 반영할 기회가 커진다"며 "현재 한국 국제표준화기구 임원은 250명에 달하며 영향력을 꾸준히 키우고 있다"고 했다.

표준협회는 국표원과 협력해 표준 분야 영향력을 강화하고 표준화 주도권 선점 경쟁이 치열한 양자기술, 인공지능, 반도체, 미래차 등 분야에서 민간 표준 전문가가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할 방침이다. 표준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미국 기관과 인력 양성 협업을 강화할 방침이다.

표준 분야에서 미국과의 협력이 중요한 이유는 미국이 표준 분야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핵심 표준 확보 대상으로 꼽은 반도체, 인공지능 등 5대 분야는 모두 미국이 가장 강력한 특허를 확보한 분야다.

진 원장은 "한국이 핵심으로 하는 5대 분야 협력에 더해 미국이 언급한 14개 기술 분야까지 협력 확대를 추진하겠다"며 "한국이 ISO 회장을 처음 배출한 임기 동안 특히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은 조성환 현대모비스 대표가 지난 ISO 총회에서 차기 회장에 선출됨에 따라 2024~2025년 회장 임무를 수행하게 됐다.

[송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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