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 혁신위, '대의원 투표 없애자' 제안 남기고 조기 퇴장

2023. 8. 10.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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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분란에 사과, '올드보이 용퇴' 제안도…비명계 "국민이 바라는 혁신안 아냐"

[서어리 기자(naeori@pressian.com)]
더불어민주당 '김은경 혁신위원회'가 당내 선거에서 대의원 1표와 권리당원 1표의 가치를 같게 만들어 사실상 기존의 '대의원 투표' 제도 자체를 없애고, 총선 공천시 당내 평가가 낮은 의원들에 대한 불이익을 강화하는 방안을 담은 3차 혁신안을 발표했다. 김은경 혁신위는 이번 발표를 끝으로 활동을 조기 종료한다고 밝혔다. 당 내에서는 혁신위가 그동안 각종 설화로 동력이 떨어진 데다 세 차례에 걸쳐 나온 혁신안이 당 혁신을 견인하기보단 내부 갈등을 키우는 데 그쳤다는 혹평이 주를 이루고 있다.

김은경 혁신위는 10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당 조직, 공천 규칙에 관한 혁신안을 발표했다. 혁신위는 먼저 "민주당은 250만 권리당원이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큰 정당"이라며 "그에 맞는 당 조직과 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당대회 투표 반영 비율을 '권리당원 투표 70%, 국민여론조사 30%'로 변경할 것을 제안했다.

현행 비율은 권리당원 40%, 대의원 30%, 여론조사 25%, 일반당원 5%으로, 혁신위 안대로라면 현재의 대의원 몫을 권리당원에 전부 넘겨준 셈이 된다. 대의원들이 권리당원과 별도로 투표하는 기존의 방식이 아니라, 대의원도 한 명의 권리당원으로서만 표를 행사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당내 비(非)이재명계 의원들이 강력하게 반발한 사안으로, 권리당원 가운데 이 대표와 친명(親이재명) 그룹 지지층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혁신위는 아울러 "전국대의원은 지역위원회 권리당원 총회에서 직접 선출하는 대의원 직선제를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고도 말했다.

서복경 혁신위원은 권리당원 투표와 별개로 뒀던 대의원 투표를 없애는 안을 제안한 배경에 대해 "초창기에는 지지 기반이 없는 지역에서 대의원을 통해서 확장성을 추구할 필요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때(대의원 제도 도입 시기)에 비해 당원 수가 100배가 늘었다. 대한민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가장 큰 정당이라 그런 제도가 필요없다"고 주장했다.

혁신위는 다만 이같은 방안이 '대의원제 폐지'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현행 대의원 역할 가운데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거에서 발휘했던 영향력만 없애겠다는 것이다. 서 위원은 "정당법상 대의기구를 두도록 하기 때문에 대의원은 있어야 한다. 시도당 활동도 해야 하고 전국위원회 활동도 하고 중앙위원회 활동도 하고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해서 대의원은 당연히 있는 것"이라면서 "이것(일상적 대의 활동)과 당 대표, 최고위원 투표 선출권과는 실질적으로 관련이 없다"고 했다.

의정 활동에서 낮은 평가를 받은 현역 의원의 경우 차기 총선 공천에서 최대 40%까지 감점을 하는 방안도 내놓았다. 혁신위는 "선출직 공직자 상대평가 하위자에게도 과거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수 있어야 한다"며 현재 하위 20%에게 경선 득표의 20% 감산을 적용하는 규정을 하위 10%까지는 40%, 10~20%는 30%, 20~30%는 20%를 감산할 것을 제안했다. 탈당 또는 경선 불복자에 대한 감산은 현행 25%에서 50%까지 높여야 한다고 했다.

혁신위는 마지막으로 "수차례 의원직을 역임하시고 의회직과 당직을 두루 맡으시면서 정치 발전에 헌신하신 분들 중에서 이제는 후진을 위해 용퇴를 결단하실 분들은 당의 미래를 위해 과감히 나서주시기 바란다"며 "현역 의원은 아니지만 여러 차례 의원을 역임하신 분들도 당 미래를 위해 불출마 결단을 내려주시고 당을 위해 헌신해주실 것을 요청한다"고 했다.

당초 혁신안에 '3선 이상 현역의원 경선 시 불이익' 내용이 포함된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혁신위는 당내 '올드보이'에 대한 자진 용퇴를 권유하는 정도만 혁신안에 담은 것이다. 해당 제안이 '박지원 전 국정원장, 천정배 전 의원 등을 겨냥한 것이냐'는 질문에 서 위원은 "솔직히 저희 안에서 합의된 바는 없다"면서도 "다소 두루뭉술한 표현이 만들어지는 것은 이런 저런 의견을 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용퇴'라고 저희가 권고드린 것은 '3선 의원 출마 제한'을 이야기한 게 아니"라며 "다선 의원보다 초·재선 의원이 더 청렴하다거나 더 능력이 있다거나 이런 기조를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그는 "굳이 말하면 3선 이상 다선 의원은 희귀 인적 역량"이라며 "3선 이상 용퇴라고 회자되는 주장과 저희 혁신위 입장은 다르다"고 못박았다. 다만 서 위원은 자신의 개인 의견은 박지원·천정배 전 의원 등이 용퇴하는 게 맞다고 보는 쪽이라고 부연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은경 혁신위원장이 10일 혁신안 발표를 위해 국회 당 대표실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은경 위원장은 이날 준비한 혁신안을 모두 발표한 뒤 혁신위 활동 조기 종료 의사를 밝혔다. 김 위원장은 "혁신위 활동은 오늘로써 마무리하도록 하겠다"며 "그동안 혁신위 활동을 성원해주시고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또 "그동안 부족한 말로 불편함을 드린 점에 대하여 정중히 사과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 "(혁신안은) 치열하게 논의하고 논쟁하고 만들어낸 피땀의 결과인데, 피땀의 결과가 여러 가지 일로 조금 가려질까 조금 두렵다"면서 "그래도 혼신의 힘을 다해서 죽기살기로 여기까지 왔으니 잘 받아서 민주당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혁신안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김남희 혁신위 대변인은 혁신위의 조기 마감 배경에 대해 "저희 불찰이기도 하고 여러 공격이나 비난들이 있어서 저희도 동력이 더 떨어지기 전에 할 수 있는 준비된 안을 내놓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판단해서 발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각종 구설로 인해 동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혁신안이 수용될 것인지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현역 의원으로 혁신위에 참여한 이해식 의원은 "혁신위가 안을 제안하면 당 워크숍에서 다루겠다고 말씀하셨다. 이 혁신안에 대한 의원들의 전반적인 생각이 워크숍을 통해서 토론되지 않을까 한다"고 했다.

이어 "혁신안은 다 제도 개선과 연관돼있는데 당헌·당규를 개정해야 하는 작업과 연결돼있어서 최고위원회에서 어떤 절차와 과정을 거쳐서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만일 수용을 안 한다면 그와 관련해서 (이유를) 밝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비명계 "대의원제 때문에 당 위기 왔나", "여의도 정치에 함몰" 비판

혁신안 발표를 두고 당내 비명계 의원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대의원제 폐지·축소라는 방향에 대해서는 당내 친문계나 친이낙연계 등을 막론하고 비명계 전체에서 강한 반발이 나왔다.

이원욱 의원은 혁신안 발표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혁신할 수 없는 분들로 꾸려진 사람들이 내놓은 안은 관심 대상이 아니"라고 꼬집었다.

그는 혁신위가 중진 및 원로에 대한 용퇴를 요청한 것과 관련해 "위 구절은 아래와 같이 치환돼야 한다. '수차례 시장직을 역임하시고, 지사직과 의원직을 두루 맡으시면서 지방 발전과 의회 발전에 헌신하신 분들 중에서 후진을 위해 용퇴를 결단하실 분은 당의 미래를 위해 과감히 나서주시기 바란다. 바로 당의 최고의 기득권자, 수혜자 이재명 대표"라고 비꼬며 이 대표를 향해 "용퇴를 결단하시겠나. 당의 미래를 위해 과감히 나서주시겠나. 응답을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조응천 의원은 사실상 대의원제가 폐지되는 혁신안 방향이 발표 전부터 미리 알려진 상황에서 이날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대의원 때문에 우리가 '3대 리스크'(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가상화폐 투자 논란)가 왔느냐"고 지적했다. 조 의원은 "대의원제 때문에 우리가 그 동안의 각종 리스크에 휘말렸고, 국민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았고, 민주당이 이렇게 힘들어졌느냐"고 거듭 지적했다.

이낙연 전 대표와 가까운 윤영찬 의원은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 인터뷰에서 "혁신위가 길을 잃었다"며 "혁신을 위해서는 사실은 우리가 지난 1년 동안 해 왔던 일에 대한 반성에서부터 시작해야 되고, 그걸 이끌어왔던 체제, 즉 이재명 대표 체제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해야 된다. 그런데 이런 부분은 건드리지 않겠다고 선언해 버렸다"고 비판했다. 그는 "기존에 잘못했던 기득권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것을 어떻게 방향을 바꾸겠다고 제시했어야 혁신위가 제 길을 가는 건데, 오히려 기득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거꾸로 길을 선택했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당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의원도 이날 문화방송(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지금 혁신위가 이야기하는 것은 국민들이 바라는 게 아니"며 혁신위 활동에 대해 전반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혁신위에 전권을 부여하자고 최초로 제안한 사람도 저고, 여전히 민주당의 살 길은 혁신과 변화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너무 아쉽다"면서 "최근 혁신위가 잇따른 설화로 당에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다. 더불어 국민들의 관심은 덜한 여의도 정치에 너무 함몰되는 것 아닌가 싶다"고 진단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최재성 전 의원도 YTN 라디오에 나와 "대의원제를 폐지해도 총선에는 아무 영향이 없다. 이것은 차기 당권을 둘러싼 변화로 작동하는 것"이라며 "지금 굳이 다루지 않아도 되는 내용"이라고 일축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은경 혁신위원장이 10일 국회 당 대표실에서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어리 기자(naeor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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