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숙·재생원 사건, 이제 부산시도 적극 나서라”
영화숙·재생원 인권침해 사건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직권조사까지 오는 데엔 손석주(61)씨의 공이 컸다. 언론에 제보를 했고, 보도가 나간 뒤엔 피해생존자들을 규합해 직권조사를 압박했다. 현재도 영화숙·재생원피해생존자협의회 대표를 맡아 활동하고 있다.
10일 오전 한겨레의 전화 인터뷰에 응한 그는 “진실화해위의 직권조사를 환영한다”면서 “영화숙·재생원 관리·감독 책임이 있었던 부산시가 적극적으로 나설 때”라고 말했다.
그가 잊으려고 애썼던 영화숙·재생원의 악몽을 다시 떠올리고 세상에 드러낼 결심을 한 결정적 계기는 지난해 10월29일 이태원 참사였다. 젊은이들의 죽음에 대한 전국민적 관심과 추모 열기는 역설적이게도 박탈감을 안겨주었다.
“아무 죄없이 납치되다시피 끌려가 못 먹고 병들어 죽고, 맞아죽은 수많은 아이들이 있었는데 왜 이들은 아무도 모르고 기억해 주지 않는 걸까.”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졌고, 이틀 뒤 울컥하는 마음을 안고 경남 양산시청 기자실을 무작정 찾아갔다. 이후 <국제신문>이 2022년 11월부터 영화숙·재생원 사건을 연속보도하기 시작했다. 보도 이후 피해자들이 모여들었고 협의회를 조직했다.
1971년과 1973년에 두 번이나 재생원에 끌려갔던 그는 각각 2개월과 11개월간 그곳에서 지내다 두 번 모두 영화숙으로 옮기면서 탈출했다. 이번에 피해자들을 만나보니 본인이 가장 ‘막둥이’라고 했다. 그는 올해부터 잊혀진 망자들을 기리는 음력 9월9일(올해는 10월28일)에 영화숙·재생원 희생자 위령제를 지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희생자 유해발굴에 대한 기대감도 드러냈다. 다음은 일문일답.
―어린 시절 어떻게 끌려가게 됐나.
“9살 때 부산에서 신문 팔다가 끌려갔다. 아버지 이름과 주소까지 다 말했는데 집에 연락을 안 해줬다. 영화숙은 아동 시설이었고 재생원은 아동과 성인이 함께 있었다. 재생원에 먼저 가둬놓고 선별해서 영화숙으로 보내는 구조였다. 영화숙은 일도 시키고 나름 자유롭게 안에서 다닐 수 있었는데 재생원은 하루종일 철창 생활이었다. 거기서 두 달 지내다 담 하나를 사이에 둔 영화숙에 올라가자마자 이틀만에 탈출했다. 재생원은 감옥처럼 안에 변기통이 있는데, 영화숙은 밖에 화장실이 있었다. 밤에 화장실 간다는 핑계가 운좋게 먹혀 도망쳐 나왔다.”
―2년 만에 또 잡혀 들어갔다고 들었다.
“신문팔이 하다가 끌려갔던 경험 때문에 도망나온 뒤엔 구두닦이로 살았다. 구두닦이는 신문팔이와 달리 일정한 장소가 있고 함께 생활하는 위의 형들도 있었다. 다시는 잡혀갈 일 없을 거라 여겼다. 근데 구두닦는 형들도 틈만 나면 때려 거기서 도망쳐 나왔다. 양산 집으로 가려고 부산진역에 갔다가 또 어떤 아저씨한테 붙들려 재생원에 갔다. 처음에 탈출한 거 들킬까봐 이름도 손기석으로 바꿨다. 재생원에서 11개월 있었다.”
―거기서 또 탈출했다.
“그렇다. 그때가 1973년이었는데 영화숙과 재생원이 폐쇄된다는 이야기가 돌 때였다. (경기도 선감도의 소년수용소) 선감학원으로 보낸다는 소문이 있었다. 거기로 가면 영영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는다고들 했다. 관리자들마저 ‘열차 타고 선감도로 이동할 텐데 그때 자유롭게 놔둘테니 도망가라’고 했다. 선감학원으로 가겠다는 희망자는 많지 않았다. 나중에 영화숙·재생원에서 선감도로 간 사람이 있다고 듣기는 했다. 나는 재생원에서 영화숙으로 옮기고 일주일만에 다시 도망나왔다.”
―재생원 생활은 어땠나.
“재생원에선 10대가 안된 아이들부터 60대 노인까지 30~45명 되는 사람들이 여섯 평될까 말까 한 좁은 공간에서 함께 생활했다. 밥 먹으러 식당 갈 때와 오후에 운동장에서 30분 햇볕 쬐는 거 말고는 감옥처럼 살았다. 변기통이 두 개 있었는데, 밤에 오줌 누러 가다 사람들 발 밟는 일이 허다했고 오줌통을 차서 엎어버리는 바람에 한밤중에 모두 일어나 장판을 닦고 난리친 적도 있다.”
―직권조사가 된다는 게 뜻밖이겠다.
“맞다. 지난 5월25일 진실화해위 기자간담회 때 김광동 위원장이 직권조사 못 하겠다고 해서 엄청 실망했었다. 그 이후에도 직권조사 관련해 진실화해위에 면담도 요청했는데 응해주지 않았다. 그러더니 어쩐 일인지 진실화해위에서 먼저 전화가 왔다. 그리고 김광동 위원장이 7월28일 부산에 와서 피해자를 만났다. 큰 이변 없는 한 직권조사안이 통과될 것이라 하더라.”
―김 위원장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나.
“가해자 처벌은 원하지 않으니 부산의 수용시설에서 벌어진 일에 관해 진실을 제대로 밝혀달라고 했다. 부산에는 6.25 이후 사람들이 몰리면서 수많은 수용시설과 보육시설이 생겨났다. 영화숙·재생원 말고도 덕성원 칠성원 등 같은 시대에 같은 아픔 겪은 시설 수용자들이 많다. 부산 뿐만이 아닐 거다. 가령 내가 나중에 갔던 대구 희망원도 악명이 높았는데 피해자 규합이 안되고 있다. 전국적으로 수용시설이 얼마나 많았겠나. 말 한마디 못 꺼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 분들도 잘 검토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유해발굴도 가능한지 물었다. 유해발굴에 관해서는 생각해 본 적 없다는 답을 들었다.”
―사망자들이 많았다고 알고 있다.
“지금 부산 사하경찰서(사하구 신평동) 뒤가 재생원 터 일부다. 가마니에 덮인 주검을 메고 뒷산에 올라가 묻은 경우가 서너번이나 됐다고 증언해준 분도 있다. 최소한 열구 이상의 주검이 묻혀 있다고 본다. 아니 그 이상일 거다. 나는 직접 묻은 적이 없지만 내 또래 친구들이 아침이나 식당 갈 때 가마니에 덮인 장면을 여러 번 봤다. 병이 나도 치료를 안해 주었다. 반세기가 지나 흔적이 남아있을 지 모르겠지만 확인은 해봐야 하는 거 아닐까.”
―부산시에 할 말이 많겠다.
“7월28일 김광동 위원장과 만날 때 부산시 관계자가 왔길래 물었다. 영화숙·재생원 인권침해 직권조사에 어떻게 협조할 거냐고. 조사관 파견 이야기를 하더라. 그래서 부산시 예산도 잡혀있냐고 했더니 ‘없다’고 했다. 8월부터 내년도 부산시 예산 심의 들어간다는데 예산이 잡힐 계획이 있다는 이야기도 못 들었다. (부산시의회는 올해 3월 ‘부산광역시 형제복지원 사건 등 피해자 명예 회복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개정해 형제복지원 사건 외 집단수용시설 인권유린사건 등을 포함시켰다.) 조례를 뭐하러 만들었냐고 물었다. 해결해보겠다는 이야기만 하더라. 8월18일 진실화해위 전체위원회에서 직권조사 의결하면 부산시도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국가책임이지만 명백히 부산시 책임 아닌가. 부산시에서 관리감독을 했다.”
―영화숙·재생원피해생존자협의회는 잘 굴러가나.
“부산지역 피해생존자 10여명이 모인 적이 있지만 전국의 피해자들이 한 자리에 모인 적은 없다. 음력 9월9일이 잊힌 망자 기리는 날이라 그날 위령제를 할 계획인데, 부산에서 전국 피해자가 다 모이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직권조사 사실이 조금 알려진 뒤 피해생존자협의회 가입자가 40명이 넘었다. 피해자들은 나한테 꼭 연락주기 바란다. 내 번호 남긴다. 010-8569-0424.”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이제 그 시절이 지나갔지만 앞으로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현재 수용시설에 계신분들이 과거 우리가 받았던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게 해야 한다. 나같은 시설 수용 경험자들에게는 공통분모가 있다. 수용시설에서 인생이 다 망가졌다. 대부분 여러 수용시설을 거쳤다. 나도 서울시립아동보호소, 대전아동보호소, 대구희망원 등 전국 시설 6군데를 돌아다녔다. 지금도 수용시설에 계신 분들은 나올 수가 없다. 나와도 사회생활을 할 수가 없다. 아무 죄없이 끌려가고 이유와 영문도 없이 고통받았다. 그런 분들 억울함 달래주고 지금 수용시설이 개선되도록 해야 한다. 이제는 진실을 말해야 한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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