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개발시대의 레거시

2023. 8. 10.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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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까지 주공아파트 평판은 민간 건설사보다 우위에 있었다. 공공이 짓는 집이라서 품질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이 소비자들의 전반적인 반응이었다. 불과 20년 전의 일이다. 공공주택을 짓던 주공과 택지를 개발하던 토공은 효율을 높인다는 명분 아래 중앙정부 주도로 2009년 통합된다. 직원 3000~4000명 정도 규모였던 두 회사는 합병 후 몇 년 만에 직원 1만여 명의 거대 기업이 되었다. 전국의 공공주택과 택지 개발을 거의 독점하게 된 것이다. 공공아파트의 품질을 비하하는 휴거, 엘사 등 신조어가 나타난 것은 통합 후 몇 년이 지나지 않아서였고, 신뢰할 수 있는 공공아파트라는 평판은 사라져버렸다.

20년 전에 비하면 건설 현장도 급격히 달라졌다. 현장에서 40대 이하 한국인은 찾기 힘들다. 다양한 국적의 일용직 외국인들이 과반을 차지하다 보니 비숙련에 언어 소통까지 문제가 된다. 건축학과 졸업생들에게 선망의 직장이었던 설계사무소는 저임금 때문에 인기를 잃었고, 이직률도 높은 직장이 되어버렸다. 시공과 설계 분야에서 경험을 쌓는 인력 수가 줄어드니 감리인들 제대로 작동하기 힘들다. 최저입찰제는 품질 제고를 더욱 어렵게 한다. 건설사들은 시간을 아껴서 건설비용을 줄여야 하고, 최저가로 낙찰받은 후 설계 변경을 통해서 비용을 확보하려는 전략을 쓴다. 발주처와 시공사는 완공 때까지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게 되어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무량판 구조도 돈과 시간을 함께 줄여줄 수 있는 공법이므로 여러 곳에서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무량판 구조는 이미 검증된 방식이다.

공기업의 사업 구조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우리가 개도국이었을 때, 가난했던 정부는 공기업에 교차보전이라는 방식을 도입했다. 돈 되는 곳에서 벌어들인 자금을 임대주택 건설 같은 적자 사업에 쏟아넣는 사업모델이었다. 중앙정부가 진행하는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면 수익을 남겨야 하는 공기업들은 아직도 이것을 유지하고 있다. 선진국이 되었다고 자부하면서도 공공이 아파트를 분양도 하고, 민간 토지를 수용해서 다시 민간에 되파는 일을 반복한다. 당연히 건설업체들은 공공이 내놓은 보다 저렴한 토지를 사려고 줄을 서게 된다.

지난 4월 말 무너져 내린 무량판 구조 주차장은 설계, 시공, 감리 등 우리 건설업 여러 분야의 심각한 현황을 노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경기주택도시공사(GH), 한국토지주택공사(LH) 같은 공기업은 물론이고, 민간 기업도 많은 문제를 갖고 있음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공정한 심사, 강화된 전관예우 방지 등 여러 대책이 고민 끝에 나오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지는 의문이다. 전관예우는 공기업에 국한되지 않은 우리 사회 여러 곳에 퍼진 병폐이고, 지금까지 이를 명확하게 해결한 분야를 보지 못했다. 제도가 미비해서 전관예우가 생긴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독점이 있는 곳에 전관예우가 생긴다. 보다 근원적인 문제를 도외시하고 전관예우에만 초점을 몰아가도 실기하게 된다. 공기업이 주택과 토지 공급을 독점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이를 통해 정부 정책을 신속하게 추진하는 것이 최적이며, 교차보전은 당연하다는 생각은 개발시대의 생각이다. 개발시대 레거시와의 단절, 위기에 처한 건설업을 살릴 수 있는 첫걸음이다.

[김세용 경기주택도시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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