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NGO] 캐비넷 속 ‘노란 리본’을 꺼내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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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석달 전 받아든 생애 첫 명함 속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최보민 간사'라는 글씨 하나하나가 어색하기만 한 6개월 차 활동가입니다.
전원 구조됐다던 오보에 마음을 놓았던 것도 잠시, 한살 어린 또래 친구들의 슬픈 소식은 매일매일 뉴스에 나왔습니다.
하지만 막상 사진 촬영일이 다가오자 수능을 앞두고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닌지, '나댄다'는 말이나 듣는 건 아닌지 고민됐습니다.
기본적인 법률 용어부터 복잡한 형사사법체계까지, 아는 건 없고 배울 건 많았기에 부담감 가득한 6개월을 보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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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NGO]
최보민 |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간사
저는 석달 전 받아든 생애 첫 명함 속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최보민 간사’라는 글씨 하나하나가 어색하기만 한 6개월 차 활동가입니다.
처음부터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거창한 마음가짐은 없었습니다. 시작은 고등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3이던 2014년 4월16일, 급식실 텔레비전을 통해 세월호 소식을 접했습니다. 전원 구조됐다던 오보에 마음을 놓았던 것도 잠시, 한살 어린 또래 친구들의 슬픈 소식은 매일매일 뉴스에 나왔습니다. 슬프고 화도 났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노란 끈을 샀습니다. 곧 있을 졸업앨범 촬영 때 친구들과 함께 노란 리본을 만들어 달고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사진 촬영일이 다가오자 수능을 앞두고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닌지, ‘나댄다'는 말이나 듣는 건 아닌지 고민됐습니다. 결국 노란 끈은 리본이 되지 못했습니다. 왠지 모를 부채감에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세월호 1주기 추모행사 기획단에 참여했습니다. 학교 곳곳에 노란 리본을 달고 행진하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은 이어졌습니다. 시민단체 자원 활동을 하고, 청년독립언론에서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사회적 기업에서 인턴 경험을 쌓기도 했습니다. 이어 취업준비에 한창이던 2022년 10월29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또다시 또래들 소식을 매일 뉴스로 접하며, 노란 끈을 사물함에 넣어두고 말았던 기억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결국 올해 초 참여연대 활동가 채용에 지원하게 됐습니다.
제가 일하는 사법감시센터는 검찰, 법원 등 사법권력을 감시하고 기록하며 사법제도 개혁 운동을 펼쳐왔습니다. 내년에 30주년을 맞이하는데, 로스쿨 제도 도입,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등이 그런 활동의 결과물이지요. 해마다 검찰 인사와 문제적 수사를 기록한 검찰보고서를 발간하는데 어느덧 15년째입니다.
사실 6개월 차 활동가로서 이토록 길고 집요했던 운동의 역사에 압도되기도 합니다. 기본적인 법률 용어부터 복잡한 형사사법체계까지, 아는 건 없고 배울 건 많았기에 부담감 가득한 6개월을 보낸 것 같습니다. 게다가 검찰과 법원이라는 사법권력은 상당히 폐쇄적인 조직들입니다. 기본 자료 입수조차 쉽지 않습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수사를 진행한 검사들 이름이라도 알려면 정보공개를 청구해야 하고, 그마저도 비공개 처분을 받으면 이의신청을 합니다. 검찰청에 정보공개를 청구하고 처음으로 비공개 처분 통지를 받았던 때가 떠오릅니다. 이의신청마저 기각돼 소송 아니고서는 더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상황이 됐죠. 저도 모르게 무력감에 빠져 있는데, 같은 팀 선배가 말했습니다. “그냥 공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공개하자.” 실제 검찰보고서에는 “해당 검찰청은 참여연대의 정보공개청구 중 검사에 대한 정보를 비공개처분 함”이라고 적혔습니다. 사법권력의 폐쇄성과 불투명성을 드러내는 문장이었습니다. 제게는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 대신 ‘뭐라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의 전환을 깨우쳐준 계기가 됐습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활동가의 길을 찾았고, 그 생각을 계속 되새길 때 활동을 이어갈 수 있겠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이따금 고등학생 때의 제가 끝내 꺼내지 못했던 사물함 속 노란 리본을 생각합니다. 그때 열지 못했던 사물함을 열어내는 게, 제겐 활동가의 삶 아닌가 싶습니다.
※‘각자도생의 시대 나는 왜 공익활동의 길을 선택했고, 무슨 일을 하며 어떤 보람을 느끼고 있는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의 투고(opinion@hani.co.kr)를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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