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 AI·반도체·양자컴퓨팅 대중 투자 제한···미 동맹에도 적용 요구할까

이윤정 기자 2023. 8. 10.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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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미국 뉴멕시코주 벨렌에 있는 풍력에너지 관련 기업 아르코사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중국 첨단 기술 분야에 대한 민간 자본의 투자를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미 중국에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을 사실상 금지하고 있는 미국이 이번엔 중국 첨단 기술 개발에 미국 돈이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으면서 양국 간 긴장감이 더 높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향후 미국 정부가 한국, 일본, 유럽 등 동맹국에 비슷한 형태의 중국 견제 조치 동참을 요구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 기업들 중국 투자시 재무부에 의무 신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중국의 첨단 반도체, 양자 컴퓨팅, 인공지능(AI) 등 3개 분야에 대해 미국 사모펀드와 벤처 캐피탈 등의 투자를 금지하거나 제한할 수 있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의회에 보낸 서한에서 “군사, 정보, 감시, 사이버능력 등 핵심 기술 분야에서 중국과 같은 나라들의 기술 발전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국가 위기 상황을 선언한다”며 “일부 미국 자본의 투자가 이같은 위험을 한층 키우고 있다”고 행정명령의 배경을 설명했다.

해당 분야에서 중국에 투자를 진행하려는 기업들은 사전에 투자 계획을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한다. 투자 금지를 포함한 규제권은 재닛 옐런 미국 재무 장관이 가진다. 미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해당 조치로 안보 이익에 직결되는 분야에 대해서는 중국에 대한 투자가 전면 금지되며, 다른 민감한 투자에 대해서는 신고가 의무화된다”면서 “이번 조치는 동맹을 포함해 의회와 초당적 논의를 거쳐 이뤄졌다”고 말했다.

행정부는 이번 행정명령이 세 가지 첨단 기술 분야의 ‘제한된 하위 기업들’에 적용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재무부가 주로 군사적 사용을 위해 설계된 AI, 반도체 설계 자동화를 위한 소프트웨어, 군사 통신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양자암호 등에 대한 투자 제한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바이든 정부는 업계의 의견을 청취한 뒤 세부 시행 규칙을 별도 고지할 방침이다. 앞서 블룸버그통신은 전체 수익의 절반 이상을 첨단기술로 벌어들인 중국 기업만 투자 금지 대상에 올라 사실상 중국 스타트업 신규 투자만 제한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최근 미·중이 최근 고위급 대화를 재개하며 관계 개선에 나선 가운데 이번 조치가 발표되면서 양국 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 조치로 중국과의 갈등이 한층 고조될 전망”이라며 “이번 행정 명령은 세계 양대 경제의 사이를 벌려놓고 있는 가장 최근 조치”라고 평했다.

WP는 “중국이 경제 둔화에 직면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2049년까지 세계적 수준의 전투력을 개발하려고 하고 있다”며 “미국의 이번 조치는 최근 해빙에 들어간 분위기 속에서도 미국이 중요한 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계속 제한할 것이라는 것을 중국 지도부에 알리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동맹 참여 여부가 효과 가를 듯

효과를 두고는 전망이 갈린다. 이미 중국에 대한 미국의 투자는 급감한 상태다. 중국에 대한 미국계 벤처 캐피털 총 투자액은 2021년 329억달러에서 지난해 97억달러로 쪼그라들었다. 올해 들어 지금까지 중국 기술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한 미국 벤처 캐피털 자본은 12억달러에 불과하다. 양국 간 관계가 얼어붙은데다 중국 시진핑 정권이 서방 동맹 기업들을 강도 높게 감시하고 있어서다. 최근 중국에서 활동하는 일본 기업의 한 임원이 스파이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특히 이번 행정명령 내용이 모호해 AI 등의 사용에서 ‘군사적’ 목적 사용을 어떻게 분리해 구분할지도 과제로 떠올랐다. 미 사모펀드 업계가 단기 수익성이 좋은 중국 투자를 포기하는 만큼 중국 자금 흐름에 타격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책 <중국의 기술전쟁>의 저자인 앤드루 콜리어는 “서방 펀드들이 중국 투자에서 기회를 잃을 수 있겠지만, 중국은 이미 국내 자금이 많아 큰 피해를 입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이 필요한 건 미국의 자본이 아니라 기술”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번 조치가 효과적일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에릭 슈미트 전 구글 최고경영자(CEO)가 이끄는 특별 경쟁 연구 프로젝트의 경제 전문가 리자 토빈은 WP에 “중국이 (미국 등과의) 합작 투자를 통해 첨단 기술에 접근하고 있다는 증거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면서 “중국은 실리콘밸리와 월가의 전문성을 원하고 있다”며 중국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물론 자문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매체들은 미국이 동맹국을 얼마나 이번 조치에 동참시키는지 여부에 따라 효과가 갈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미 지난 5월 주요 7개국(G7) 히로시마 정상회의에서도 해당 문제가 논의됐다고 미 고위당국자는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행정부가 최근 몇 달 동안 유럽과 아시아의 동맹국들에게 중국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기 위해 비슷한 조치를 시행하도록 압박하고 있다”며 영국과 독일 등 일부 유럽 동맹국이 미국과 유사한 자체 규제에 착수했다고 전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에밀리 벤슨은 “이번 조치가 미국 동맹국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또 중국이 어떻게 대응할지가 행정명령의 핵심 문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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