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선의 풀무질] 잼버리가 망한 이유? 축제는 수단이 아니건만!
[전범선의 풀무질]
전범선 | 가수·밴드 ‘양반들’ 리더
잼버리가 망했다. 4만3천여명 참가자 전부 야영을 멈추고 8개 시·도 숙소로 퍼졌다. 공동조직위원장인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잼버리가 끝난 것이 아니고 커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새만금 잼버리는 끝났지만 코리아 잼버리는 계속된다는 것이다. 이런 변명은 잼버리 정신을 모독한다. 잼버리(jamboree)의 본질은 ‘청소년 야영축제’다. 시끌벅적하게 모여서 논다는 뜻으로 19세기 미국에서 만들어진 말이다. 각자 흩어져 호텔, 기숙사, 연수원에 묵는 것은 야영도, 축제도 아니다. 잼버리가 아닌 단체 관광일 뿐이다.
어쩌다 이 사달이 났을까? 가장 먼저 철수를 결정한 영국스카우트연맹은 4가지 이유를 들었다. 위생, 음식, 폭염, 의료. 정부는 태풍을 탓하지만 사실 애초 행사 준비가 형편없었다. 청소년 건강과 안전이 위험할 정도였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끔찍하게 더러웠고, 쓰레기도 버릴 곳이 없어서 사방에 널려 있었다. 음식은 충분하지 않았고, 비건, 할랄 등 식단을 온전히 배려하지도 못했다. 폭염 대비나 의료 지원도 부족해 온열병 환자가 속출했다. “실망스럽다”는 것이 영국 쪽 입장이다.
스카우트운동의 원조인 영국은 이번에도 제일 많은 4500여명을 파견했다. 대부분은 수년 동안 아르바이트와 모금을 통해 참가비 600여만원을 마련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철수로 호텔비로만 예비비 17억원을 지출했다. 앞으로 3~5년 동안 활동에 지장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미국 스카우트 대원 1500여명도 경기 평택에 있는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로 이동했다. 학부모들의 불만이 상당하다. 영내 성범죄 부실 대응 논란도 있었다. 주최 쪽인 대한민국 정부의 책임을 묻는 소송이 이어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 세계잼버리는 14~17살만 참가할 수 있고 4년에 한번이기 때문에 이번 기회를 놓치면 끝이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청소년들의 무너진 기대와 염원을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나도 중학생 때 잼버리에 참여한 적이 있다. 2004년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에서 열린 제24회 아시아태평양잼버리다. 고성 잼버리수련장은 설악산을 등지고 동해를 내려다보는 천혜의 명당이다. 계곡과 호수와 바다가 가깝고 숲이 우거져 폭염에도 견딜 만하다. 20년이 돼가는 지금도 잼버리의 추억이 또렷하다. 텐트 치고 외국 친구들과 어울리고 배지를 교환했다. 야외 활동을 통해 모험심과 협동심을 길렀다. 지금 생각하면 군대놀이 같아서 약간 께름칙하지만 그때는 참 즐거웠다. 그야말로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나날들이었다.
축제란 그런 것이다. 인생의 하이라이트다. 생일, 결혼, 환갑잔치도 그렇고 페스티벌과 잼버리도 그렇다. 죽기 전에 회상하면 웃음과 함께 떠오를 반짝이는 순간들이다. 우리는 어쩌면 축제를 즐기기 위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삶을 예찬하고 살아 있음을 축하하는 것이야말로 생명의 목적 아닌가? 축제는 우리가 제한된 시공간에서 구현해내는 유토피아다. 잠깐이라도 모두가 건강하고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가장 좋은 나라는 일상이 축제인 나라다. 행복한 나라를 건설하는 일과 축제를 기획하는 일은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은 잼버리는 물론 월드컵과 올림픽과 엑스포도 거뜬히 개최하는 나라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혀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축제 기획의 기본은 알맞은 때와 장소를 정하는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 한국에서 8월에 12일 동안 대규모 야영 축제를 벌이는 것은 누가 봐도 위험하다. 그것도 그늘 한점 없는 간척지에서 하겠다는 결정은 축제문화에 전혀 관심이 없거나 무지한 사람만 내릴 수 있다. 이러한 우려에도 새만금 개최를 강행한 것은 전북연구원이 6조원에 달하는 경제효과를 예상했기 때문이다. 잼버리 유치 때 새만금신공항, 고속도로, 항만 등 사회기반시설이 조기 구축된다는 논리였다. 물론 지금은 신기루 같은 이야기다. 생명의 갯벌을 덮고 죽음의 땅과 호수를 만든 새만금 개발 논리야말로 이번 잼버리 파행의 근본 원인이다.
이제 와서 아이돌을 동원해 케이(K)팝 콘서트를 개최하면 국격이 회복될 거라고 자위한다. 도대체 축제를 왜 하는지 묻고 싶다. 돈을 위해? 나라를 위해? 이태원 참사 직후 ‘축제도 집회다’라는 칼럼에 썼듯이 축제는 수단이 아니다. 목적이다. 오히려 돈과 나라가 축제를 위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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