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 헌혈 시 혜택 좀"…다급해진 식약처, 교육부에 도움 요청
국가필수의약품인 혈액제제 면역글로불린의 품절 사태로 다급해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교육부에 도움을 요청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면역글로불린은 세포·바이러스로부터 몸을 지켜주는 항체로 보통 헌혈로 공급받은 혈장으로 만든다. 가와사키병(소아에서 발생하는 원인 불명의 급성 열성 혈관염)과 암환자 등 소아·중환자 치료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의약품이다. 그런데 고령화와 코로나19 등으로 면역글로불린 수요가 늘어난 반면 헌혈, 특히 고교생 헌혈이 급감하면서 면역글로불린이 부족해지자 의료 현장에서 치료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에 식약처가 고교생 헌혈이라도 늘 수 있도록 대학입시 때 헌혈 봉사활동 인정 기준을 넓혀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10일 정부 부처, 의료계에 따르면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는 지난달 식약처에 면역글로불린 품절 사태의 해결을 촉구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이에 의약품을 관리하는 식약처는 지난 8일 관련한 회의를 연 뒤 당초 이달 말에 예정됐던 공급 계획을 긴급하게 당겨서 1만2000병의 면역글로불린을 국가출하승인 후 의료 현장에 공급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당장은 숨통이 트일 수 있지만 다음달 중순부터는 다시 면역글로불린 품절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며 "근본적으로는 헌혈량이 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식약처는 최근 교육부에 헌혈 공급 확대를 위해 대학입시 때 헌혈 봉사활동 실적 인정 기준을 확대할 것을 요청하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식약처 관계자는 "수요가 늘어난 반면 국내 헌혈량이 줄어 면역글로불린 공급이 더 어려워졌다"며 "다급한 마음에 고교생 헌혈 참여 확대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교육부에 협조 요청 공문을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세계보건기구(WHO) 협약에 따라 한국에선 매혈이 금지돼 있고 자급자족 원칙에 따라 헌혈받은 혈장으로 면역글로불린을 만들어야 하는데 헌혈량이 줄고 수요는 늘고 있어서 헌혈 참여를 독려할 필요가 있다"며 "2021년까지는 면역글로불린 자급자족이 됐는데 현재는 자급자족이 되지 않고 있다"고 부연했다.
실제 국내 고교생 헌혈은 급감했다.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지난해 16~19세 헌혈 실적은 46만2186건으로 코로나19 발생 직전인 2019년 80만321건 대비 45.6%(33만8135건) 감소했다. 저출산으로 16~19세 인구가 줄어든 영향도 있지만 인구 감소 대비 헌혈 실적 감소폭이 더 크다. 통계청의 연령별 추계인구에 따르면 15~19세 인구는 2019년 268만5976명에서 2022년 227만8815명으로 15.2%(40만7161명) 감소했다. 16~19세의 헌혈 실적이 전체 현혈 실적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게 줄었다. 2019년 28.7%에서 지난해 17.4%까지 축소됐다.
헌혈 현장에선 교육부가 변경한 2024년 대학입시 때 봉사활동 실적 인정 기준이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본다. 교육부는 2019년 말 발표한 '대입 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에 따라 봉사활동 시간, 자기소개서 등 정규 교육 과정 외 활동을 대입 생활기록부에 반영할 수 없도록 했다. 2024학년도 대입(졸업생 포함)부터 상급학교 진학 시 학교 봉사활동 실적은 인정하나 개인 봉사활동 실적은 인정하지 않아 개인적으로 헌혈한 경우 봉사활동으로 인정을 받을 수 없게 됐다. 이는 현 고교생 3학년부터 적용된다.
식약처 관계자는 "개인으로 헌혈한 경우라든지, 아니면 학교 교육계획에 반영되지 않았더라도 단체 헌혈버스를 통한 헌혈인 경우를 봉사활동 실적으로 인정해 고교생 헌혈을 독려할 필요가 있다"며 "그래야 혈액 자급자족의 원칙이 지켜질 수 있다"고 말했다.
혈액정책을 담당하는 보건복지부도 교육부 등에 헌혈 증진을 위한 협조를 요청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관련 교육부 관계자는 "복지부와 식약처의 협의 요청이 오면 해당 내용을 검토해보겠다"고 했다.
한편 면역글로불린 품절사태 관련 제약업계에선 복지부에 해당 약가를 현재의 1.5배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부족한 국내 혈장 대신 매혈이 가능한 미국 혈장을 수입해 면역글로불린을 만들 수 있는데 현재는 면역글로불린 보험약가보다 미국 혈장 수입 가격이 높아 공급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 식약처와 복지부 등은 다음달 회의를 열고 추가 대책을 논의하기로 했다.
박미주 기자 beyo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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