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핵폭탄 영화는 못참지”…세상의 파괴자가 된 한 남자 [리뷰]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3. 8. 10.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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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신작 ‘오펜하이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를 가만히 보면 ‘대칭’을 발견할 수 있다.

‘다크나이트’ 트릴로지에선 선과 악의 이율배반을 다뤘다. ‘인셉션’은 공간의 확장을, ‘테넷’은 시간의 역행을 이야기했다. ‘인터스텔라’가 무한한 우주를 다룬 반면, 이달 15일 개봉하는 ‘오펜하이머’는 눈으로는 관찰 불가능한 원자로 향한다.

놀란 감독은 이처럼 영화를 통해 복잡다단한 세상의 균형점을 찾으려 한다. 그의 깊이와 넓이를 상상하면 그의 나이가 겨우 53세(1970년생)란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영화 ‘오펜하이머’의 한 장면. 배우 킬리언 머피가 주연을 맡았다. [사진 출처 = 유니버설 픽쳐스]
‘오펜하이머’는 세상의 구원자이자 세상의 파괴자가 된 한 남자를 다룬다.

미국의 핵개발 프로젝트 맨해튼 계획에 참여해 원자폭탄을 다룬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1967)의 삶을 다룬 전기 영화다. 오펜하이머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장으로 핵개발을 두고 심리적으로 갈등했던 복합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영화 ‘오펜하이머’는 오펜하이머와 루이스 스트로스의 갈등이 중심축이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추진 과정에서 과학자들은 고뇌에 빠진다. 나치에게 핵개발을 빼앗길 수 없지만 동시에 이 무기가 인류의 미래를 압살하리란 불온한 예감 때문이다.

맨해튼 계획은 1942년부터 1946년까지 진행됐는데, 이 과정에서 오펜하이머와 스트로스는 의견차를 보이며 갈등한다. 킬리언 머피가 주연 오펜하이머를, ‘아이언맨’으로 익숙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스트로스 역을 맡았다. 오펜하이머 등장 장면은 컬러 화면으로, 스트로스 등장 장면은 흑백 화면으로 구성됐다.

극사실주의를 추구하는 놀란 감독이 농축 우라늄을 통한 핵개발 영화를 만든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간에서는 “설마 놀란 감독이 정말로 핵무기를 터뜨리는 건 아니겠지”란 웃지 못할 농담이 나돌기도 했다.

놀란 감독는 CG 없는 촬영을 추구해 왔다. ‘다크 나이트’에서 고담종합병원 폭파 장면은 세트장이 아니라 실제 폐공장을 병원으로 꾸민 뒤 실제로 날려버린 것이다. 놀란 감독은 ‘인터스텔라’ 촬영을 앞두고는 캐나다의 옥수수밭 60만평을 구매해 1년 동안 재배하기도 했다.

거대한 모래바람은 CG가 아니라 특수 골판지를 갈아 모래 폭풍으로 연출한 것이다. ‘인셉센’의 호텔 회전 장면도 세트장을 360도 돌려가면서 찍을 정도로 놀란 감독의 극사실주의는 악명 높다. 다만 ‘오펜하이머’의 핵폭발 장면은 실제로 핵을 터뜨린 것은 아니고 재래식 폭약을 폭발시켜 찍었다고 전해진다.

영화 ‘오펜하이머’의 한 장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루이스 스트로스 역을 맡았다. [사진 출처 = 유니버설 픽쳐스]
주연으로 캐스팅된 킬리언 머피는 놀란 감독의 페르소나로 유명하다. 머피는 놀란 감독의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두 얼굴의 악역 스케어크로우 연기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영화 ‘인셉션’에서 코브와 아서가 타깃으로 삼는, 회장 아들 로버트 피셔 역을 맡았다. 킬리언 머피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오펜하이머’ 출연으로 내년 오스카 남우주연상의 강력한 후보로 올라선 상태다.

‘오펜하이머’는 단지 ‘올해’가 아니라 ‘금세기’ 최고의 영화로 추앙받을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경이로울 지경이라는 해외 평가가 줄을 잇는다. 이 영화는 7월 19일 첫 개봉 뒤 2주 만에 세계 총수입 5억달러를 넘어섰다. CGV 용산 아이맥스관은 티켓 구하기도 쉽지 않다.

공교롭게도 개봉일이 8월 15일인 점도 눈에 띈다. 1945년 8월 6일 연합국이 일본제국에 핵탄두 ‘리틀 보이’와 ‘팻 맨’을 투하한 뒤 15일 일본제국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즉 이날은 핵으로 인해 인류 역사의 향방이 결정된 날이다.

이 모든 일의 시작에 오펜하이머가 있었다. 오펜하이머는 핵실험이 끝난 뒤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 기타’를 인용해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Now I am become Death, the destroyer of worlds)”라고 말하기도 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연출한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전기 영화 ‘오펜하이머’. 놀란 감독의 11번째 장편 영화다. [사진 출처 = 유니버설 픽쳐스]
‘오펜하이머’는 이번 영화 촬영 과정에서 1940년대 미국을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유니버설 픽처스에 따르면 미국 뉴멕시코주 고스트 랜치에 1940년대 도시 로스앨러모스를 똑같이 만들어냈다.

다른 출연진도 기대 이상이다. 오펜하이머의 아내 키티는 에밀리 브런트, 핵무기 사용을 총지휘한 군인 레슬리 그로브스는 맷 데이먼, 오펜하이먼의 내연녀로 알려진 공산주의자 진 테트록은 플로렌스 퓨, 해리 트루먼은 게리 올드먼가 열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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