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두사미’로 끝난 김은경 혁신위, 이재명의 ‘플랜B’는?
현 지도부 유지·비대위·조기 전대 등 언급
(시사저널=박성의 기자)
"당과 정치를 새롭게 바꿀 수 있도록 이름부터 역할까지 모든 것을 맡기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6월16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혁신기구 책임자로 김은경 교수를 임명한 것과 관련해 "대한민국 정치를 혁신하는 데 당원과 국민 여러분께서 함께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며 이같이 말했다. 사실상 당 혁신기구에 전권을 위임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야심차게 닻을 올린 김은경 혁신위가 10일 '조기 해체'를 선언했다. 소방수로 투입된 김은경 위원장이 각종 설화로 논란을 자초하면서다. 혁신위는 해체 발표와 동시에 '대의원제 개편과 공천 규정' 등 당권과 직결된 문제를 최종 혁신안으로 제안했다. 그러나 혁신안을 두고 계파 갈등이 불거질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이재명 대표 혁신안을 어디까지 수용할지 주목된다.
'대의원 투표권 박탈'에 비명계 반발 고조
민주당 혁신위원회는 당 대표와 최고위원 등을 선출하는 전당대회에서 대의원의 투표권을 박탈하는 내용의 혁신안을 10일 제안했다. 혁신위는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최고 대의기구인 당대표와 최고위원은 권리당원 1인1표 투표 70%와 국민여론조사 30%로 선출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현행 민주당 당헌·당규의 전당대회 투표 반영 비율은 권리당원 40%, 대의원 30%, 여론조사 25%, 일반당원 5%인데 대의원 투표권을 박탈하고 권리당원 반영 비율을 대폭 늘리겠다는 얘기다. 이는 민주당 강성 지지층인 '개딸'과 친이재명계 성향의 지도부가 주장해온 내용이다.
이에 일각에선 대의원제 폐지가 당내 계파 갈등의 '화약고'가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앞서 비이재명계에선 대의원제를 폐지하면 강성 당원의 '입김'이 강해질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고수해왔다. 고민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8일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대표가 그만두는 상황을 가정하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대의원제 폐지 문제를 지금 거론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밖에 혁신위는 현역 의원에 공천 불이익도 강화하기로 했다. 혁신위는 현재 하위 20%에게 경선 득표의 20% 감산을 적용하는 규정을 하위 10%까지는 40%, 10~20%는 30%, 20~30%는 20%를 감산할 것을 제안했다. 탈당이나 경선 불복자에 대한 감산은 현행 25%에서 50%까지 상향 적용해야 한다고 혁신위는 밝혔다.
다만 공천룰 변경 역시 비명계의 반발이 예상된다. 이원욱 민주당 의원은 지난 9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공천룰 개정 검토에 대해 "공천룰을 자꾸 손보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아마도 비명계 의원들에 대한 학살 작업으로 보여진다"며 "이것이 수용 가능하려면 대의원제나 공천룰 등 때문에 당 지지도가 못 오르고 있다는 평가가 있어야 된다"고 강조했다.
코너 몰린 이재명, 비대위 가능성도
혁신위가 제안한 혁신안은 당 최고위원회의와 의원총회 등을 거쳐 최종 수용 여부가 결정된다. 이재명 대표가 혁신위에 '전권 위임'을 약속했던 터라, 이 대표로서는 반대 입장을 밝히긴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정치권 일각에선 혁신위가 제안한 안건이 모두 사장될 수 있단 우려 섞인 전망도 나온다. 김은경 위원장이 이른바 '노인폄하 논란' 등 각종 설화로 흔들리면서, 혁신위를 향한 당내 불만과 불신이 가중된 상황이어서다.
당 일각에는 혁신위를 띄운 이 대표가 '책임론'에 직면할 수 있단 시각도 있다. 혁신위발(發) 계파 갈등이 발발할 경우, 이 대표의 거취가 위태로워 질 수 있단 해석에서다. 이에 이 대표가 연말이나 내년 초쯤 사퇴한 후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릴 것이란 구체적인 '퇴진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민주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 대표 궐위 시 잔여임기가 8개월 미만이면 전당대회 없이 비대위를 꾸릴 수 있다.
다만 당 내부에는 비대위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외부인사를 내세워 비대위를 꾸린다해도 혁신위와 같은 한계에 직면할 것이란 해석에서다. 이에 조기 전당대회를 열자는 주장도 나온다. '이재명 퇴진'을 바라는 비명계의 목소리를 수용하는 모양새지만, 조기 전당대회는 친명계에게도 불리한 기회는 아니다. 당 대표 선거에서 대의원 투표 반영 비중이 낮아지면, 강성 당원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 친명계 주자가 유리해진다.
다만 친명계는 이 대표의 퇴진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또 혁신위가 고심 끝 내놓은 혁신안들의 '가치'를 폄훼해서도 안 된다는 주장이다. 친명계 좌장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지난 7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지금 단계에서 정기국회 이후에 비대위로 전환해야 되는지 안 해야 되는지 희망하거나 논의할 사항이 아니다"라며 "정기국회 이후에 총선을 위한 당내 기구를 만들 때 이재명 당대표가 당 안팎의 여러 의견들을 종합, 당의 변화와 혁신안들을 구체적으로 내놓은 다음에 어떤 것이 당의 승리를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인지를 선택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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