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민이 세우는 ‘동학 학살 사죄비’…나주에 첫 건립
“동도(東徒·동학농민군) 7명을 잡아 와 성밖 밭 가운데 일렬로 세우고 대검을 착검하여 모리타 1등 군조의 호령에 따라 일제히 돌격하여 찔러 죽였다. 구경하던 조선 사람들과 병사들이 몹시 경악하였다.”
1895년 1월 31일 동학농민혁명 진압을 위해 전남 나주에 주둔했던 일본군 보병 제19대대 소속 쿠스노키 비요키치 상등병이 남긴 ‘종군일지’ 기록이다. 당시 일본군은 전남 장흥 등에서 최후 항전한 동학농민군을 토벌하기 위해 1월5일부터 2월8일까지 35일간 나주에 주둔했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농민군들이 일본군에 학살을 당한 전남 나주에 일본인을 주축으로 ‘사죄비’ 가 건립된다.
나주시는 10일 “동학농민혁명 당시 나주에서 일본군에 희생됐던 농민군을 기리는 사죄비가 세워진다”고 밝혔다. 동학농민군 희생자를 기리는 ‘사죄비건립추진위원회’는 오는 10월 30일 옛 나주역에 있는 나주학생운동독립운동기념관에 이 비를 세운다는 계획이다.
동학혁명 당시 일본군의 토벌로 학살당한 농민군에 대한 일본인 명의의 사죄비가 세워지는 것은 전국에서 나주가 처음이다. 사죄비 건립에는 일본에서 동학혁명을 연구해 왔던 일본 지식인들이 참여했다.이들이 발굴한 비요키치의 ‘종군일지’는 나주에서 벌어진 일본군의 학살 행위를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다.
종군일지 2월 4일 자에는 “성 남문에서 400m 남짓 떨어진 곳에 작은 산이 있다. 시체가 실로 산을 이루었다”면서 “농민군이 포획되어 고문당하고 살해된 것이 매일 12명 이상 103명에까지 이르렀다”고 적혀있다. 또 “이곳에 버려진 시체가 680명에 달했다. 근처에는 악취가 심하고 땅은 시체에서 나오는 기름이 얼어붙어서 마치 백은(白銀)과 같았다”고 기록했다.
선조들의 기록으로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일본 시민들은 먼저 사죄의 마음으로 성금을 모았고 여기에 한국 시민과 나주시가 뜻을 더했다. 사죄비에는 일본군이 나주에서 동학농민군을 학살했다는 사실과 함께 “사죄비가 한일 시민 연대를 넘어 세계 평화의 초석이 되길 기원한다”는 내용이 담긴다.
나천수 사죄비건립추진위원회 대표(77)는 “2019년 일본의 양심 있는 교수들이 나주에서 첫 번째 ‘동학혁명 학술대회’를 연 것을 계기로 사죄비 건립이 추진됐다”면서 “일본인이 직접 ‘잘못했다’라며 세우는 비는 한·일 화해와 상생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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