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은 왜 신냉전의 한복판으로 들어갔나?

2023. 8. 1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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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칼럼]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이 진짜 온다(중)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wooksik@gmail.com)]
과거에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 구도가 고착되지 않은 데에는 남북한의 선택도 크게 작용했었다. 노태우 정부 때부터 본격화된 남한의 북방외교는 큰 성과를 거두었었고, 북한도 경제적·외교적 고립을 탈피하고자 남방외교를 추구했었다. 또 가다 서다를 반복했었지만, '통일지향적인 특수관계'라는 남북관계의 규범력도 강했었다.

하지만 모든 게 달라지고 있다. 김정은 정권은 남방외교의 미련을 사실상 접었고 윤석열 정부는 미일동맹에 '다걸기'를 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남북관계마저도 '관계'는 실종되고 '적대적인 두 국가 체제'로 고착될 위험이 커지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엄중하다. 대개 동아시아 신냉전의 배경과 원인으로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전쟁의 장기화 등 외부 요인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러한 진단은 한반도 내부 원인에 둔감하게 만든다.

전환기적 사건은 2019년에 일어났다. 2019년 2월 북미정상회담이 '하노이 노딜'로 끝난 것과 6월 남북미 정상들의 '판문점 번개팅'이 안 하니만 못한 결과를 낳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가장 큰 전환은 북한에서 일어났다.

1990년대 초반 이래 한반도 문제의 다양성의 핵심에는 북핵 문제와 한미일 사이의 상호작용에 있었다. 북한의 핵개발은 한미일의 군사협력 강화의 원인이면서도 북핵 해결을 위해서는 대화와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외교적 과제이기도 했다.

북한 역시 때로는 벼랑끝 전술로, 때로는 대화와 협상으로 한미일과의 관계를 풀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가 쉽사리 부상하지 않았던 핵심적인 요인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랬던 북한이 2019년 말부터 대화의 문을 굳게 닫아걸었다. 남북·북미정상회담이 허망한 결과만 낳았다고 판단하고는 안보는 핵으로, 경제는 자력갱생으로, 외교는 중국과 러시아 중심으로 가져가겠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이는 한미일과의 관계 개선 미련을 버렸다는 것과 마찬가지 의미를 품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선택이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국제정치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한미일 대 북중러의 갈등 구조가 고착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는 점이다.

북한을 대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태도도 달라졌다. 이들 나라는 2017년까지만 하더라도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면 대북 규탄과 제재에 동참했었다. 그러나 2020년 이후 북한의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 급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추가 제재 불가를 외치고 있다. 왜 그럴까?

전통적으로 북핵 문제는 미중러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협력적 의제였다. 이견도 있었지만 핵비확산이라는 국제규범의 규정력은 강했었다. 하지만 신냉전의 기운이 확연해지면서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비확산보다 세력균형이 훨씬 중요해진 것이다.

이는 중러가 공식적으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는 없더라도 북핵을 세력균형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묵인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러로서는 미국과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미국이 동맹국들을 규합하자 북핵의 전략적 가치를 재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중동의 세력균형을 위해 이스라엘의 핵무장을, 중국 견제를 위해 인도의 핵무장을 묵인했던 것처럼 말이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들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전쟁의 장기화, 미중 전략 경쟁의 격화, '동아시아의 화약고'로 불리는 대만 해협의 불안정, 미국 주도의 나토-태평양 동맹 네트워크 등장 움직임, 일본의 대규모 군비증강 등이 맞물리고 있다.

이러한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던 2022년 5월에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미일동맹에 다걸기를 하면서 국제정치도 '편가르기'로 일관하고 있다. 보수 정권이었던 이명박·박근혜 정부도 거리를 두려고 했던 한미일 삼각동맹 구축에 여념이 없다. 달라진 북한과 강경한 남한의 출현이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구도를 고착시키는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는 셈이다.

▲ 7월 27일 정전협정체결일에 각각 기념행사에 참석한 윤석열(왼쪽)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이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현상도 발견할 수 있다. 진영 내부의 '동조화'가 바로 그것이다. 최근 북중러가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이 '국제질서의 다극화'이다. 다극화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제(MD)에 대응해 중러가 2000년대 초반부터 주창해온 것이다.

북한은 달랐다. 북한의 최대 목표는 단극체제의 패권자였던 미국과의 관계정상화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미련을 접은 후에는 '다극화'를 강조하고 있다. 2021년 9월에는 김정은의 입에서 이 표현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북미관계 정상화 실패, 미국의 상대적 쇠퇴와 중국의 부상이 맞물리면서 나타나고 있는 전략 경쟁의 본격화, 미국과 러시아의 대결 등이 맞물리면서 김정은으로서는 다극화된 세계 질서에서 생존과 번영을 도모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미일 사이에서도 동조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북중러를 대표적인 독재·권위주의 국가들로 묘사하면서 '가치 연대'를 강조하고 있다. 이 와중에 대북 위협 인식의 '동조화'도 강해지고 있다. 북한의 핵 능력이 남한→일본→미국 본토로까지 확대되자 북핵 위협에 맞서 한미일이 군사적으로 결속하려는 움직임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것이다.

2022년 11월 13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공동성명은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준다. 성명에선 "북한이 한반도 그리고 그 너머에서" 위협이 되고 있다며, "북한 미사일 경보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자 한다"고 했다. 이는 한미일이 MD 협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한미일은 2023년 들어 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MD와 핵무기를 비롯한 미국의 전략자산을 가시화하고 이를 한국과 일본의 비핵 군사력과 결합해 사실상의 3각 동맹을 추구하려는 움직임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가시화될수록 북중러의 결속도 강해지고 있다. 지난 7월 27일 북한의 '전승절'에 중러가 대표단을 파견해 열병식을 지켜본 장면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러한 지정학적 갈등과 대결도 문제지만, 한국 경제가 사면초가에 몰리고 있다는 점은 새롭고도 위험한 상황이다. 냉전 시대 최전방 반공기지로서의 한국의 위치는 미국과 일본이 한국의 경제발전을 도왔던 지정학적 동기였다. 하지만 오늘날의 상황은 판이하게 달라졌다.

미국은 한국을 으르고 달래면서 '미국 경제이익에 복무하라'는 식의 이기주의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을 딛고 반도체와 전기차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면서 한국의 잠재적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최대 무역 흑자 상대국이었던 중국은 어느덧 최대 적자국으로 바뀌었다.

또 있다. 한때 한국 경제의 '블루오션'으로 일컬어졌던 남북경제협력과 이에 힘입은 북방 경제로의 진출 비전도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있다.

하여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 구도가 고착화될수록 우리가 '쌍둥이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도 커지고 만다. 지정학적 위기는 냉전 시대 못지않게 커지고 있는 반면에, 냉전과 탈냉전 시대에 존재했던 지리경제적 이점은 오히려 리스크로 돌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미일동맹과의 경제안보론에 갈수록 심취하고 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wooks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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