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투자제한에 중국 “시장경제·공정경쟁 위배…권익 수호할 것”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중국의 첨단 반도체와 양자 컴퓨팅, 인공지능(AI) 등 3개 분야에 대한 미국 자본의 투자를 규제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하자 중국은 “과학기술을 이용한 괴롭힘이며, 시장경제와 공정경쟁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중국은 세부 시행 규칙 등을 지켜보며 반격 조치를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행정명령이 잠시 해빙 기류를 맞았던 미·중 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외교부는 10일 대변인 명의 입장문을 통해 “미국이 대중 투자 제한 조치를 내놓은 것에 강한 불만을 갖고 있고 단호히 반대한다”면서 “이미 미국 측에 엄정한 교섭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의 진정한 목적은 중국의 발전 권리를 박탈하고 패권적 사익을 지키려는 것이며, 적나라한 경제적 강압이자 과학기술을 이용한 괴롭힘”이라며 “이는 시장경제와 공정경책 원칙을 엄중히 위반하는 것으로, 스스로의 권익을 단호히 수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측이 말하는 엄정한 교섭은 외교 경로를 통한 항의를 의미한다.
중국 상무부도 대변인 명의 입장문에서 “미국 측이 ‘디리스킹(위험 제거)’이라는 간판을 달고 투자 영역에서 ‘디커플링(탈동조화)’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는 국제 경제무역 질서를 파괴하며 글로벌 산업체인과 공급망 안전을 심각하게 교란하는 것”이라며 “중국 측은 이에 대해 앞으로 조치를 취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외신들은 이번 행정명령이 최근 대화국면을 이어가고 있는 양국 관계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당장 이달 말로 예정된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의 방중 계획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조치가 중국 지도부에게는 최근 외교관계의 훈풍 속에서도 미국이 핵심 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계속 제한할 것이라는 신호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미 관리들은 국가 안보를 위해 좁게 표적화한 조치라고 설명하지만 중국 당국자들은 중국 경제 발전에 대한 ‘목조르기’라고 말한다”며 이번 조치가 양국간 외교적 해빙 시도를 다시 냉각시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중국은 이번 조치에 대해 세부 시행 규칙 등을 지켜보며 반격 조치를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지난해 10월 미국이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을 사실상 금지하면서 네덜란드와 일본 등 주요 동맹국들까지 동참하도록 조치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지난 5월 미국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의 제품 구매를 중단했다. 이어 반도체 핵심 소재 광물인 갈륨과 게르마늄 등 30개 품목의 수출을 통제하는 등 맞대응에 나섰다.
문제는 기대 이하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로 내수와 수출 모두 부진한데다, 소비자물가와 생산자물가 모두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등 디플레이션 위기에 처한 중국의 경제 상황이다. 자칫 잘못하면 중국이 일본식 장기 불황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이번 투자 제한 조치에 한국과 일본, 유럽 등 다른 동맹국들까지 가세하게 되면 대중국 투자가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미 올해 1분기 중국 내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중국이 확전을 피하는 대신 유연한 대응으로 실리를 챙기려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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