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은행, 직원 불법 계좌개설 알고도 금감원에 늑장 보고 의혹

김유진 기자 2023. 8. 1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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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동의 없이 계좌 1000여개 개설
금융실명법 위반 해당할 수 있어
실명법 위반 시 지체 없이 보고해야
대구은행 “의도적 지연 없어” 해명
대구은행 영업장 모습. /연합뉴스

대구은행 직원 수십명이 고객 몰래 예금 증권계좌를 개설한 사실을 대구은행이 인지하고도 곧바로 금융감독원에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금감원은 대구은행의 금융사고를 대구은행의 보고가 아닌 외부 제보를 통해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구은행은 “자체검사를 통해 금융실명법 위반 사실이 명확해진 뒤 보고하려고 했다”라며 의도적인 보고 지연을 부인했다. 그러나 현 검사·제재규정에서는 금융실명법 위반 혐의가 있거나 위법·부당한 업무 처리로 금융기관의 공신력을 저해할 경우에는 지체 없이 금감원에 보고하라고 명시돼 있어 대구은행이 늑장 보고 논란을 피해 가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10일 금감원에 따르면 감독 당국은 지난 8일 외부 제보를 통해 대구은행 다수 영업점에서 증권계좌 개설 실적을 높일 목적으로 1개 증권계좌를 개설한 고객의 정보를 이용해 동의 없이 다른 증권계좌를 추가 개설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금감원은 이튿날인 9일 긴급 검사에 착수했다.

앞서 대구은행의 일부 지점 직원 수십명은 지난해 고객의 동의 없이 문서를 위조해 1000여건의 예금 연계 증권계좌를 개설한 혐의를 받고 있다. 대구은행은 지난 2021년 8월부터 은행 입출금통장과 연계해 다수 증권회사 계좌를 개설할 수 있는 서비스를 도입하고 운영 중에 있다.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을 종합하면 해당 영업점 직원들은 고객이 영업점에서 작성한 A증권사 계좌 개설 신청서를 복사한 후 이를 수정해 B증권사 계좌를 임의로 개설하는 데 활용했다. 또한, 임의 개설 사실을 숨기기 위해 계좌개설 안내문자(SMS)를 차단하는 방식 등도 동원했다.

금융감독원 건물. /조선비즈DB

대구은행은 직원들의 실명법 위반 행위를 인지하고도 한 달 가까이 지나도록 해당 사실을 금감원에 보고하지 않았다. 대구은행은 지난 6월 30일 직원들의 실명법 위반 행위와 관련한 민원이 접수돼 해당 사실을 파악했다. 대구은행은 민원 접수 후 12일이 지난 7월 12일부터 자체 감사를 진행했으나, 금감원에 해당 사실을 보고하지 않았다. 대신 대구은행은 지난달 영업점에 고객의 동의 없이 기존 전자문서 결재 건을 복사해 별도의 자필 없이 계좌를 신규 개설하는 것은 불건전 영업행위이므로 이를 예방하라는 내용의 안내 공문만 돌렸다.

대구은행에서 발생한 금융사고는 고객 동의 없이 정보를 이용한 것으로 금융실명법 위반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은행권 관계자는 “대구은행 사고의 경우 고객 몰래 정보를 이용해 계좌개설을 한 것으로 실명법 위반해 해당할 수 있다”라고 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검사 중이어서 법규 위반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판단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금감원의 금융기관 검사·제재에 관한 규정 시행세칙 제67조에 따르면 금융기관은 소속 임직원이 ▲금융업무와 관련해 금융실명법 위반 혐의가 있는 경우 ▲위법 또는 부당한 업무처리로 금융기관의 공신력을 저해하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에 지체 없이 금융감독원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실명법 위반 혐의의 경우 ‘실제 자기명의 거래가 이뤄졌으나 서류 미비 등 단순 절차 사항만을 위반한 경우에는 보고하지 않을 수 있다’라는 단서조항이 있지만, 이번 대구은행의 사고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만약 실명법 위반이 아니더라도 이번 사고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에 해당해 보고 의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은 대구은행 검사 과정에서 늑장 보고를 하게 된 경위에 대해 조사를 한 뒤 보고 지연 문제를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금감원은 이날 발표 자료에서 “대구은행이 본 건 사실을 인지하고도 금감원에 신속히 보고하지 않은 경위를 살펴보고 문제가 있다면 이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을 방침이다”라고 했다.

대구은행 제2본점 전경. /대구은행 제공

금감원 관계자는 “(보고 지연은) 살펴봐야 하는 부분이어서 현재 대구은행에 파견돼 조사 중인 직원이 이를 확인하고 있다”라며 “신속하게 보고 안 한 경위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지만, 일단 경위 보고를 받고 판단해야 할 문제다”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당국 관계자는 “검사 중인 사안이지만 대구은행의 경우 시행세칙에서 명시한 (즉시 보고) 예외 부분에 해당되지는 않는 것 같다”라고 했다.

대구은행은 늑장 보고 의혹에 대해 “의도적인 보고 지연은 없었다”라고 했다. 대구은행 관계자는 “관련 민원이 접수돼 해결 과정에서 문제점을 발견해서 자체적으로 전수조사한 뒤 불법행위가 의심되는 직원들의 소명 절차가 진행 중이었다”라며 “(사고) 인지 후 내부 감사에 착수해 실명법 위반 여부에 대해 검토 확인이 필요한 상황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금감원에는 실명법 저촉이 명확할 때 보고해야 해 의도적으로 (금감원) 보고를 지연하거나 은폐하려는 부분은 없었다”라며 “검사가 끝난 뒤 금감원의 판단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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