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3.광주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1991년 8월14일, 김학순(1922~1997)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증언한다. “정말로 분해 죽겠어요. 우리 한국 여성들 정신 차리세요!” 이후 엄청난 일들이 벌어진다. 국내외에서 자신도 피해자임을 증언하는 여성들이 나타난 것이다. 일반 시민들도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정부의 조사가 이루어졌다. 이듬해 1월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일본 고노 총리와 무로야마 총리가 담화를 통해 일본 정부가 강제 연행, 강제 동원한 사실과 군의 직간접으로 관여한 사실을 인정하며 역사 교육을 통해 잊지 않겠다는 정부 차원의 반성까지 이어졌다. 2012년 12월 타이완에서 열린 ‘제11차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아시아 연대회의’에서 8월14일을 ‘세계 위안부의 날’로 정해 기리고 있다.
■ 아직 아물지 않은 전쟁의 상처
광주 나눔의집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마당에서 할머니들의 흉상과 ‘평화의 소녀상’을 마주한다. 1991년 10월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에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임시거주지 ‘나눔의집’이 마련되고, 이듬해 8월 ‘나눔의집’ 건립추진위원회가 꾸려지고 독지가 조영자씨가 건립 부지 2천119㎡(642평)를 기증한다. 종로구 혜화동에 있던 ‘나눔의집’은 1995년 12월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가새골길85 현 위치로 이전한다. 1998년 8월 개관한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은 세계 최초로 성노예를 주제로 한 인권박물관이다.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이 저지른 ‘위안부’ 문제의 역사를 기억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1998년 제1역사관을, 2017년 제2역사관을 개관한다. 지상 2층, 지하 1층의 약 350㎡ 규모의 역사관은 기업체의 후원과 한국과 일본 시민들의 힘으로 설립됐다. 역사관에서 한국과 북한은 물론 중국, 타이완, 일본,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미얀마, 괌, 네덜란드 등에도 위안부 피해자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제1역사관에 꾸며진 전쟁 유물과 위안소를 재현한 공간에 들어서면 저도 모르게 호흡이 가빠진다. 일본군 ‘위안부’로 청춘을 송두리째 빼앗긴 할머니들과 이 분들을 보살핀 ‘나눔의집’에 성금을 보낸 후원자들의 이름을 동판에 가득 새긴 감사의 공간도 잊을 수 없다. 이런 많은 시민들의 바람과 정성이 역사를 세우고 평화를 지키는 것이리라. 제2역사관에서 일본군의 만행을 알린 할머니들의 손때가 묻은 유품과 직접 그린 그림들을 마주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일본의 전쟁범죄를 고발하며 평화를 호소하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할머니들의 사진 앞에서 송두리째 빼앗긴 소녀시절의 꿈을 상상한다. ‘정신대’로 불리다가 ‘군 위안부’를 거쳐 ‘군대 성노예’로 불리기도 한다.
“김학순 할머니는 오랜 고통과 침묵의 역사를 깨고 진실을 밝혀 세계와 연대하도록 이끌어낸 분입니다. 가장 먼저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밝혔던 분은 배봉기님이지요. 오키나와에서 있었던 일이라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인권활동가이자 평화활동가로 거듭난 것이지요. 할머니들을 인권활동가로 불러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 할머니들이 남긴 뭉클한 사연과 만나다
오정임 학예연구사의 말이다. 제2전시장에서 돌아가신 할머니들의 생전 모습과 할머니들의 유품, 그리고 영상을 통해 그 분들이 남긴 육성을 들어본다.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을 전시한 공간에 들어서면 누구나 말을 잊게 된다. 고(故) 김순덕 할머니가 1995년 그린 ‘그때 그곳에서’란 작품이 숨을 막히게 한다. 일본군 세 명이 저승사자처럼 서 있는 밤중에 벌거벗은 한 여성이 몸을 웅크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는 그림이다. 나라를 빼앗긴 결과가 얼마나 뼈아픈 일인지 절감하게 된다. 어렵게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캄보디아에 우물을 파도록 지원한 한 김화선 할머니(1926~2012)의 사연은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나누고 베풀며 사신 할머니의 표정이 평안하다. 세상을 떠난 분들을 추모하는 공간은 가장 높은 위치에 마련돼 있다. 고인이 된 일본군 ‘위안부’들의 명단이 벽면에 가득 새겨져 있다. 눈을 감으니 수천 마리의 노랑나비들이 훨훨 꽃밭을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있다. 추모공원을 찾은 관람객들이 정성껏 바람을 적은 종이들도 노랑나비처럼 보인다. 당신들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약속이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평화를 지키겠다는 다짐이다.
■ 소녀의 꿈, 소녀의 표상-위안부 피해의 역사 바로 알기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서는 국적과 민족에 상관없이 대학생을 대상으로 ‘역사적 화해, 평화를 위한 인권교육’ 프로그램인 ‘평화의 길 peace road’를 연간 2회 실시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 7월부터는 ‘소녀의 꿈, 소녀의 표상(表象)’이란 주제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경기도와 광주시의 지원으로 진행되는 ‘2023 박물관·미술관 지원 사업-소녀의 꿈, 소녀의 표상’은 위안부로 끌려가 소녀시절을 송두리째 빼앗긴 할머니들의 아픔을 기억하고, 이를 직접 글과 그림으로 표상함으로써 역사와 인권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다.
“총 24차로 10월까지 진행되는 교육은 1차 역사교육, 2차 창의표현활동으로 이루어져요. 역사교육에서는 광주시 문화관광해설사 선생님의 지도로 ‘일본의 침략 전쟁사’와 매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시위 역사’도 배웁니다.”
성노예, 정신대, 위안부라는 용어를 풀이하며 위안부 피해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는 시간도 가지고, ‘평화의 소녀상’을 비롯한 역사관에 전시된 조형물의 의미에 대해서도 배운단다. 7월15·22일 이뤄진 특별 순례 프로그램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참가자들은 독립운동가 신익희 선생의 생가를 둘러보고, 일본군위안부역사관의 관람과 추모공원을 참배하는 뜻 깊은 시간을 가졌다.
“우리가 마주하는 평화의 소녀상은 왜 단발머리를 했는지, 소녀상 어깨에 앉은 새는 무엇을 상징하는지 알아봅니다. 할머니들이 생전 남긴 말씀 중 기억해야할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간도 갖지요.” 특히 ‘창의표현활동’은 참여 학생들이 피해 할머니들에게 위로편지를 쓰고,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며 역사에서 배운 느낌을 표현하는 활동인데, 아이들의 상상력과 재능을 발휘하는 재미있는 시간이다. “이제까지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학생들이 지은 가사를 대중가요나 민요 같은 노래에 붙여 노래를 만들 것입니다. 우수한 활동을 펼친 모둠을 오는 10월21일 역사관에 초청해 ‘소녀 아리랑’ 공연을 진행할 계획이지요.”
■ ‘위안부’할머니들 여성인권활동가로 거듭나다
일본은 현재도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부라고 왜곡한 논문을 발표한 하버드 램지어 교수 등을 내세워 강제성을 부인하는 주장을 국제사회에 퍼뜨리고 있다. 또 지난해 일본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서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에 대한 서술을 지웠다. 광주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은 이런 현실을 직시하며 역사적 진실을 널리 알리는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이번 교육을 통해 우리 청소년들이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졌으면 해요, 나의 인권과 타인의 인권을 생각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소녀의 꿈, 소녀의 표상’은 좋은 호응을 받아 관내 초중고를 비롯해 지역아동센터, 홈스쿨링 단체 등 다양한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의 말을 담은 스티커를 팔에 붙이는 시간도 가진다. “이 모든 것이 강요였다는 걸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we must record these things that were forced upon us).”
역사관은 지난해 11월 ‘나눔의집,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방향모색과 전망’이라는 주제로 관계 전문가들과 토론회를 열어 역사관의 방향성과 전시체제 및 공간의 재구성을 깊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새롭게 출발한 일본군‘위안부’역사관이 부디 지치지 않고 전진하기를 응원한다. 김준영(다사리행복평생교육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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