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 두 번 꺾고 한반도 정중앙 가로지르는 ‘카눈’… 해수 온도 상승이 위력과 불확실성 키웠다
고기압과 2번 충돌 후 바람 타고 한반도行
“오래 가는 강력 태풍, 움직임 변화폭 커”
제6호 태풍 카눈이 10일 오전 9시 20분쯤 경남 거제 부근으로 상륙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오전 9시 기준 카눈은 330㎞ 반경에 초당 32m 풍속으로 북상 중이다. 한반도 상륙 직전까지 카눈은 강도 등급 ‘강’을 유지했으나 상륙 직전 ‘중’으로 떨어졌다.
매년 여름마다 여러 차례 태풍이 지나가지만 그 중에서도 카눈은 특히 많은 관심을 받았다. 두 번에 걸쳐 이동 방향을 격하게 꺾은 데다가 한반도 전역을 뒤덮으며 지나간다는 점 때문이다. 기상청이 태풍 관련 자료 수집과 기록을 시작한 1951년 이후 이렇게 한반도 내륙 전체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며 전국적인 영향을 주는 태풍은 카눈이 처음이다.
전문가들은 카눈과 같은 태풍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해수 온도 상승을 짚었다. 태풍은 여름철에 뜨거워진 바다에서 나오는 수증기를 먹으며 자라는데, 바닷물 온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강한 생명력을 얻은 태풍이 다양한 기상 환경에 노출된 결과 좀처럼 볼 수 없는 이동 패턴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온난화를 먹고 자라는 태풍
열대성저기압이라고도 불리는 태풍은 적도 부근 바다와 공기가 열을 받아 뜨거워지는 것을 시작으로 형성된다. 해수와 대기 온도가 상승하면 수증기를 많이 머금은 공기가 위로 올라가는 상승기류가 연속적으로 발생한다. 이 상승기류는 수직으로 발달하는 구름인 적란운이 되고, 적란운이 점점 커지면서 태풍으로 변한다.
현재 해수면 온도는 빠르게 오르는 추세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에 따르면 올해 4월 전 세계 해수면 평균 온도는 21.1도로 측정됐다. 1981년 관측을 시작한 이후 최고치였다. 이렇게 되면 적도 부근에서 상승기류가 더 많이 발생하면서 태풍 위력 또한 전보다 강해질 수 있다.
네덜란드 브리제대 환경연구소의 나디아 블로멘달 교수 연구팀은 지난해 4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게재한 논문에서 “전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이번 세기 중반까지 기후변화로 강한 열대성저기압(태풍) 발생 빈도가 2배 이상 높아지고 최대 풍속은 20%가량 증가해 많은 위험이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비슷한 연구가 한국에서도 나왔다.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연구단이 2020년 12월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게재한 논문에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2배로 늘어나면 약한 상륙 태풍은 감소하는 반면 3등급 이상의 강한 상륙 태풍이 50% 늘어날 것”이란 분석이 담겼다.
◇힘 세고 오래가는 태풍 카눈, 변화무쌍한 기상을 만나다
그렇다면 카눈이 격하게 방향을 틀며 한반도 전역을 뒤덮고 지나가는 것 또한 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 탓일까. 전문가들은 태풍의 방향 전환을 일으킨 요인만 놓고 보면 그렇게 분석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손석우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처음에 중국 쪽으로 향하던 카눈이 오키나와 방향으로 꺾인 건 지난달 발생한 5호 태풍 독수리가 지나가면서 생긴 고기압 때문”이라며 “태풍은 저기압의 일종이기 때문에 고기압을 만나면 힘이 약해져 사라지거나 튕겨 나가게 돼 있다”고 말했다.
카눈이 오키나와 주변에서 90도에 가깝게 방향을 바꾼 것도 비슷한 원리다. 차동현 울산과학기술원(UNIST) 재해기상예측연구실 교수는 “일본 오키나와로 방향을 바꾼 카눈은 매년 이맘때쯤 일본 남쪽에 형성되는 북서태평양 고기압과 다시 한 번 충돌해 방향이 직각으로 꺾인 것”이라며 “이런 가운데 고기압인 한반도 남쪽에서 저기압인 북쪽을 향해 강한 바람이 분 것도 카눈이 한반도로 향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 태풍이 생명력을 유지한 채 한반도까지 도달한 건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도 있었다. 차 교수는 “강한 고기압에 두 번이나 튕겨 나갔음에도 강도를 유지했다는 건 카눈이란 태풍의 생명력이 매우 끈끈하다는 뜻”이라며 “온난화로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 그만큼 태풍이 힘세고 오래가면서 다양한 날씨 영향을 받아 움직임 변화 폭이 클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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