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 조용하게 올드 머니 패션에 스며들다

김의향 THE BOUTIQUE 기자 2023. 8. 10.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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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한 Y2K(90년대 중반~2000년 초반까지 유행한 세기말 패션)가 유행하는 유니버스. 그 다른 패션의 유니버스에선 초고급의 드레스 코드가 젠지(Gen Z: Z세대) 사이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 조용하고 심플하며 고급을 추구하는 트렌드는 ‘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 ‘올드 머니(Old Money)’, ‘리치 걸(Rich Girl)’이란 세 가지 서브 트렌드를 만들어 냈고, 그중에서도 ‘올드 머니 패션’이 트렌드의 센터를 차지했다. 밀레니얼 세대로부터 유행의 주도권을 이어받은 Z세대들은 화려하고 자유분방한 Y2K 패션에도 점점 지쳐가고 있는 듯하다. 핑크로 충만한 바비코어를 실컷 즐기고 무더위가 잠잠해지는 초가을부터는 ‘올드 머니 패션’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AI 아트로 재창조한 @feli.airt의 가상 모델이 올드 머니 패션의 해시태그를 달고 Z세대들 사이에 퍼져 나갔다. / @feli.airt

미학적인 트렌드로서의 올드 머니 패션

‘올드 머니(Old Money)’의 옥스포드 사전 정의는 ‘자수성가가 아닌 상속받은 재산’이다. 현실적으로 자수성가형의 ‘뉴 머니(New Money)’는 누구에게나 기회가 있지만, ‘올드 머니’ 는 극소수에 한정된다. 명망 높은 가문에 상당한 유산까지 물려 받아야 하니, 금수저도 아닌 다이아몬드 수저 정도는 되어야 올드 머니 라이프스타일을 실현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유행하는 ‘올드 머니’ 패션은 가문의 명성이나 유산을 요구하지 않는 하나의 스타일이자 미학적인 트렌드가 됐다. Z세대의 ‘올드 머니 미학’은 명문 가문과 상속된 부라는 사전적 의미 대신 고품질과 장인 정신에 중점을 둔다. 고가의 명품 제품보다는 클래식한 브랜드의 중고품이나 신진 디자이너의 제품들에서 올드 머니 패션 아이템을 찾는다. 그 제품들은 시간에 묶이지 않고 트렌드에 휩쓸릴 일 없이 오래 입을 수 있다. 비록 ‘올드 머니’ 라이프스타일을 누릴 수는 없지만, 올드 머니 패션만큼은 한 번의 클릭으로 쉽게 접할 수 있다.

미디어 재벌 일가의 이야기를 담은 HBO의 TV 시리즈 '석세션(Succesion)'의 흥행이 올드 머니 패션 유행을 점화시켰다.

Z세대의 올드 머니 패션 아이콘 소피아 리치

올드 머니 패션은 잔잔하고 조용하게 Z세대들에게 스며들어 갔다. 트렌드로 급부상하게 된 건 HBO 시리즈 ‘석세션(Succession)’이 세계적으로 흥행하면서부터다. 미디어 재벌 머독 가문의 이야기를 다른 ‘석세션’ 속 패션은 어느새 경제적 능력도 지닐 만큼 성장한 Z세대들을 매료시켰다. 구글 빅 데이터에 의하면 ‘석섹션’ 방영 후 ‘올드 머니’의 검색량이 874% 증가했고, ‘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 검색량도 684%나 증가했다. 또한 TV 시리즈 ‘석세션’의 완벽한 실사판이 되어줄 인물이 등장했다. 팝스타 라이오넬 리치의 딸이자 모델인 소피아 리치가 그 주인공이다. 간결하고 깨끗한 라인의 드레스와 팬츠 룩, 블랙, 화이트 등 뉴트럴 컬러 팔레트 안에서 세련된 데일리 룩을 보여주는 소피아 리치의 소셜 네트워크 속 OOTD(Outfit of The Day: 그날의 데일리 룩을 의미하는 SNS 용어)는 기존 패션 인플루언서들의 ‘좋아요’ 버튼 세례를 받을 만큼 근사하고 고급스러웠다. 게다가 소피아 리치는 실제 올드 머니인 유니버설 뮤직 창업자의 아들 엘리엇 그레인지와 결혼하면서 진정한 올드 머니가 되기도 했다.

Z세대 올드 머니 패션 트렌드를 리드하고 있는 소피아 리치. / 소피아 리치 인스타그램.

올드 머니 패션과 함께 스타일의 뉴 르네상스를 연 셀럽들

HBO TV 시리즈 ‘석세션’이 점화하고 소피아 리치가 리드하는 올드 머니 패션은 켄달 제너, 카일리 제너 자매와 같은 특급 패션 인플루언서들로 퍼져갔다. 이전에 ‘뉴 머니 패션’에 가까운 스타일을 보여주었던 그녀들의 스타일 변화는 금세 이슈가 됐다. 특히 놀라운 변화를 보여준 스타는 배우 제니퍼 로렌스다. 최근 가수 아델과 배우 라일리 코프의 스타일리스트인 제이미 미즈라히로부터 스타일 코치를 받으면서 제니퍼 로렌스의 스타일은 드라마틱하게 뒤바뀌었다. 새 영화 ‘노 하드 필링스(No Hard Feelings)’ 홍보 투어 내내 보여준 제니퍼 로렌스의 스타일은 더 이상 ‘헝거 게임스’ 시대의 그녀가 아니었다. 올드 머니 패션, 그리고 ‘스텔스 웰스(Stealth Wealth: 부를 드러내지 않는 슈퍼 리치들) 무드를 띤 제이미 미즈라히의 스타일링은 아름답고 절제됐으며 이제까지 패션 인플루언서로 주목받은 적 없던 로렌스를 패션의 최신 뮤즈로 만들었다. 알라이아(Alaïa)의 컨트리 클럽 스타일의 화이트 셔츠 드레스, 로에베의 조형적인 미디 드레스, 더 로우(The Row)의 톱과 팬츠 세트 등은 고품질, 로고 프리, 뉴트럴 컬러 등으로 정의되는 올드 머니 룩의 근사한 예로 찬사 받았다. 올드 머니 패션을 통해 로렌스는 패셔니스타로 급부상했다.

올 블랙의 올드 머니 패션을 입은 켄달 제너. /켄달 제너 인스타그램.
올드 머니 패션으로 스타일을 바꾼 카일리 제너. / 카일리 제너 인스타그램.
스타 스타일리스트 제이미 미즈라히로부터 스타일링 받으며 올드 머니 패션의 뮤즈로 떠오른 제니퍼 로렌스. / 제이미 미즈라히 인스타그램.

90년대 미니멀리즘에 대한 노스탤지어

올드 머니 패션은 90년대의 미니멀리즘과 클린 뷰티를 이끌었던 패션 아이콘들을 다시 소환했다. 뉴욕 기반의 패션 브랜드 더 로우의 창립자인 애슐리 올슨과 메리 케이트 올슨 자매는 앞서 올드 머니 패션 유행을 이끌었던 아이콘들이다. 작은 키와 깡마른 체형을 지녔음에도 맥시한 길이와 박시한 핏의 패션으로 지적이면서도 세련된 올드 머니 패션 룩으로 패션 미디어를 도배했고, 이 쌍둥이 자매의 브랜드 더 로우는 그녀들의 패션 스타일이 고스란히 디자인화 되어 있다. 고인이 된 존 에프 케네디 주니어의 배우자 캐롤 베셋 케네디의 고급스런 심플리즘도 90년대의 미니멀리즘의 아이코닉 스타일로 사랑 받았다. 통이 넓은 팬츠와 셔츠, 심플한 롱 스커트, 테일러드 재킷과 코트 등 캐롤 바셋 케네디는 에센셜한 디자인의 아이템들을 간결하게 매치해 입었는데 소재감과 테일러링의 고급스러움이 언제나 돋보였다. 시어머니였던 재클린 케네디와 함께 영원히 기억될 올드 머니 패션의 정석이며 아이콘이다.

90년대 미니멀리즘의 아이콘인 캐롤린 베셋 케네디는 그 시대 올드 머니 패션을 대표한다. / @carolynbessette
패션 브랜드 '더 로우'의 창립자이자 90년대 올드 머니 패션의 아이콘인 메리 케이트와 애슐리 올슨 자매./ 더 로우 인스타그램.

@feli.airt의 AI 패션 인플루언서의 등장도 Z세대를 더욱 올드 머니 패션에 열광하게 했다. 전성기의 배우 브룩 쉴즈를 떠올리게 하는 풍성한 블론드 헤어와 클래식한 미모를 지닌 @feli.airt의 가상 모델은 랄프 로렌의 광고 캠페인에서 튀어 나온 듯 보이기도 하다. AI 아트로 만들어졌지만 화이트 셔츠와 승마 팬츠, 프레피 룩을 즐겨 입고 요트와 승마를 즐기는 가상 모델은 올드 머니의 해시태그(#oldmoney)를 달고 퍼져 나갔고 킴 카다시안 같은 유명 인사들의 ‘좋아요’ 버튼을 받기도 했다. ‘조용한 럭셔리’에서 시작해서 ‘올드 머니 패션’이란 해시태그로 Z세대들에게 물결을 일으키고 있는 이 시대의 뉴 미니멀리즘은 조용하게 거대한 유행의 빅 웨이브가 됐다.

브룩 쉴즈를 떠올리게 하는 풍성한 블론드 헤어와 클래식한 미모를 지닌 @feli.airt의 가상 모델. 올드 머니 패션의 버추얼 아이콘으로 사랑 받고 있다. / @feli.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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