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도 못 참는 자기 울음소리…‘청각 스위치’로 귀를 닫는다
참매미는 무더운 여름을 알리는 전령이다. 요즘엔 한밤중이나 이른 새벽에도 시끄럽게 울어대며 폭염에 힘들게 잠든 사람들의 잠을 방해해 눈총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랴. 무려 3~4년에 달하는 유충 시기의 수명에 비하면 성충의 수명은 매우 짧다. 한 달 남짓이다. 참매미도 몇 주일 안에 짝을 찾고 생을 마감하려면 마음이 급하다. 참매미 울음소리가 정겹고 시원하지만 때로는 애절하게 들리는 까닭이다.
모두 잠자는 밤, 매미가 세상 밖으로
매미 애벌레는 땅속에서 여러 차례 허물을 벗고 자란 뒤 땅 위로 올라와 우화(번데기가 날개 있는 성충이 되는 것)한다. 매미가 땅속과 땅 위에서 얼마나 오래 지내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일본의 연구결과 등을 보면, 매미 애벌레가 땅속에서 지내는 기간은 애매미 1~2년, 참매미 3~4년, 말매미 4~5년으로 추정된다. 국내에서 이를 관찰한 연구는 이뤄진 적이 없다.
매미는 뜨거운 여름을 가장 반기는 동물 중 하나다. 올 여름은 폭염이 기승이지만 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밤낮으로 울어댄다. 밤에도 기온이 떨어지지 않는 데다가 길가와 공원의 가로등, 광고 간판, 아파트 불빛 등 빛 공해 때문에 매미가 잠을 잊은 것이다.
집 주변의 공원은 만든 지 20여년이 되어 숲이 제법 울창하다. 나무 밑에 낙엽이 적당히 썩어있어 매미 유충이 흙을 뚫고 나오기 좋아서인지 이곳에선 매미가 자주 우화를 한다. 몇 년간 매미의 우화 장면을 관찰하고 촬영해 봤지만, 빛이 있는 곳에서는 매미가 탈피하지 않았다.
매미는 해가 지고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하면 어두운 곳에 몸을 숨겨 허물을 벗는다. 긴 밤에 이뤄지는 탄생의 과정을 느리게 지켜보기로 했다. 참매미 애벌레가 은밀하게 땅속에서 나와 나무 위에서 우화한 껍질(탈피각)은 흔히 볼 수 있지만 탈피하는 과정을 직접 보는 건 쉽지 않다.
밝은 곳은 무방비 상태의 매미에게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매미의 천적은 새, 사마귀, 거미, 말벌, 다람쥐 등인데 새가 가장 많은 피해를 준다. 매미는 위협적인 접촉이 느껴지면 움직임을 멈추고 가만히 기다리며 탈피 시간을 늦춘다.
힘겹게 3시간 만에 나왔건만…
매미 애벌레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멈춘 뒤 30여분이 지나자 새우등처럼 굽힌 등이 서서히 부풀어 오른다. 부풀리기를 수십 번, 등과 머리 쪽이 먼저 세로로 갈라진다. 껍질에서 윗몸을 빼내 몸을 일으켰다 굽혔다 하는 동작을 수십 번 되풀이한다. 오그라져 있던 날개가 3분의 1쯤 펼쳐지자 탈피각 머리 부분을 꽉 움켜쥐고 몸을 일으켜 세운다.
꼬리까지 껍질에서 완전히 꺼낸 뒤 날개가 펼쳐지길 기다린다. 허물을 벗는 단계마다 힘이 부치는 듯 움직임을 멈추고 숨 고르는 시간을 가진다. 애벌레의 탈피 시간은 개체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평균 3시간 정도 걸렸다.
우화하고 남은 탈피각은 애벌레가 지지대 구실을 해 성충이 빠져나오기 좋게 해준다. 또 몸이 마르고 굳어 날아갈 때까지 버티고 의지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우리가 나무 표면에서 흔히 발견하는 탈피각은 애벌레가 나무껍질을 꽉 움켜쥐고 매미로 태어난 기나긴 ‘산통’의 징표다.
허물을 갓 벗고 나온 매미는 눈에 초점이 없어 보인다. 전체적으로 색소가 부족해 허옇고 날개에도 하얀빛이 돌았다. 연약한 몸이 단단하게 굳어지고, 눈이 반짝이고, 날개가 꼿꼿하게 펴지기까지는 탈피로부터 10시간이나 더 걸렸다. 애벌레가 땅 위로 나와 완벽한 매미의 모습을 갖추는데 12~13시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한밤중에 예상치 못한 매미의 천적이 출현했다. 인적이 드문 오전 2시께 나타난 길고양이가 탈피한 지 얼마 안 돼 날지 못하는 매미를 낚아채 나무 위로 뛰어오른다. 그동안 공원에서 배회하던 길고양이 서너 마리가 촬영 장소로 접근하면 대수롭지 않게 쫓아 버리곤 했는데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나무마다 살피며 사냥하는 모습이 능수능란하다. 매미가 나무 높은 곳으로 올라가 탈피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몸집이 통통한 매미는 많은 동물에게 ‘맞춤 간식’이다. 매미 전문사냥꾼으로 나서는 직박구리는 낮 동안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살피며 날아가는 매미를 쫓아가 잡기도 한다. 매미가 늦은 밤에 탈피하는 이유는 이처럼 새들의 공격에 취약하기 때문인데 밤에도 뜻밖의 다른 천적이 있었던 것이다.
매미 청각은 ‘온오프’가 가능하다
수컷 매미는 번식을 위하여 암컷을 불러들이기 위해 운다. 수컷은 배판에 특수한 발성 기관이 있어 소리를 낸다. 암컷은 나무에 구멍을 뚫고 알을 낳기 때문에 배판이 있지만 매우 작으며 발성 기관 대신 산란 기관으로 채워져 있어서 소리를 내지 못한다. 산란관이 있는 꼬리도 수컷보다 뾰족하다. 사람이나 새들에게 잡혔을 때 ‘나 좀 놔줘라!’하고 귀가 터질 정도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 수컷, 조용히 발버둥만 친다면 암컷이다.
매미는 종마다 발성 기관의 구조와 소리가 다르다. 수컷 참매미는 뱃속에 브이(V)자 배열 힘줄과 여기에 연결된 발성 기관이 고유의 소리를 낸다. 현악기가 소리를 내는 원리와 비슷하다. 다만 워낙 소리가 커 자신의 청각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에 매미는 자기 청각을 끄고 켤 수 있는 재주가 있다. 이 때문에 한창 노래하는 매미는 다른 소리를 못 듣는다. 등 쪽 좌우에 청각기관이 있어 소리를 진동으로 감지한다.
참매미는 7~9월 초에 출현하는데, 한여름인 7월 중순부터 8월에 가장 개체 수가 많다. 수컷 참매미는 ‘맴맴’ 혹은 ‘밈밈’ 소리를 연속적으로 낸 뒤 마지막에 ‘밈~’하고 높은 음을 한 번 낸다. 그러면서 몸 전체를 뒤로 빼고 일직선 자세로 꼬리를 아래로 꼿꼿이 뻗는다. 그런 뒤 나서 다른 나무로 이동한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매미 소리는 참매미의 울음소리다.
무더운 여름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서 쉬노라면 정겹게 들려오던 매미소리. 그러나 어릴 적 기억에 매미는 밤에 울지 않았다. 낮에만 울었던 과거와는 달리 요즘엔 늦은 밤까지 울어댄다. 열대야가 지속되는 데다가 밝은 가로등 빛 탓에 매미가 밤낮을 구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매미 소리가 커진 건 사람 탓
참매미는 기온이 23도 이상, 말매미는 27도 이상 올라가야 소리를 낸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매미가 밤에 우는 날이 점점 늘어났다. 도시개발과 함께 수도권 지역이 밝아지는 빛 공해를 비롯해 각종 인공 시설물의 증가, 콘크리트 피복의 증가 등에 따른 인공열 증가, 자동차 통행 증가, 탄소 배출에 따른 온실 효과 등의 영향으로 도시 중심부의 기온이 주변 지역보다 현저하게 높게 나타나는 열섬 현상이 심해진 탓이다.
밤잠을 괴롭히는 매미가 미울 때도 있지만 매미 입장에선 빛 공해, 소음 공해가 심해진 도시에서 더 크고 멋지게 울어야 암컷을 부를 수 있으니 별 수 없는 일 아닌가. 매미 소리가 귀찮을 정도로 증폭시킨 것은 우리 탓일지도 모른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한겨레 환경생태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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