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중 첨단기술 투자까지 금지…한국 동참 압박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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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일 중국의 양자컴퓨팅, 인공지능(AI), 첨단 반도체 분야에 대한 미국 자본 투자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반도체 제조 장비 등의 수출 통제에 이어 투자 통제까지 단행한 것으로, 미국 각료들의 잇따른 방중으로 조성된 대화 미-중 분위기에 악영향이 예상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행정명령을 통해 미국 벤처캐피털과 사모펀드 등이 3대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국에 투자할 때 재무장관 허가를 받도록 해 사실상 투자를 금지시켰다. 행정명령은 “(중국의) 반도체 산업, 마이크로 전자공학, 양자 정보 기술, 인공지능 역량의 급속한 발전은 미국 안보를 위협하는 능력을 크게 향상시켰다”며 투자 통제 필요성을 설명했다.
미국 재무부는 구체적으로 군사나 정보 활동 용도와 관련된 인공지능, 반도체 칩 설계 자동화 소프트웨어, 암호화 기술을 무력화할 수 있고 군용 통신에 손상을 가할 수 있는 양자컴퓨팅 기술 등이 투자 금지 대상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행정명령은 3대 첨단기술 분야에서는 이 수준에 해당하지 않는 대중 투자도 재무부에 신고하도록 했다. 더 상세한 규칙은 미국 업계 등의 의견을 추가 수렴하면서 마련될 예정으로, 행정명령은 내년에 시행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투자 금지 행정명령이 중국의 관련 산업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불확실하다. 일부 미국 자본은 이미 행정명령을 염두에 두고 중국 투자 법인을 분사시키거나 투자를 줄여왔다. 시장조사 업체 로듐그룹은 미국 벤처캐피털의 중국 투자 규모는 2018년에 144억달러(18조9360억원)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에는 13억달러로 10년 만에 최소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대중 직접투자 총액은 지난해 82억달러로 20년 만에 가장 적었다.
바이든 행정부가 2년여간 대중 투자 금지 행정명령을 준비하면서 대상 분야는 애초 고려한 것보다 줄었다. 지난해 말에는 전기차와 바이오테크 분야가 검토 단계에서 제외됐다. 지난달 중국을 방문한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좁은 표적”만을 대상으로 할 것이라며, 중국 경제 전반을 억누르려는 게 아니라고 설명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마당은 좁게, 담장은 높게”라는 표현을 써왔다. 미국 안보와 관련해 한정된 분야만 고강도로 억제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번 행정명령은 중국 견제를 위해 전례 없는 수준의 경제적 압박을 동원할 수 있다는 의지를 다시 내보인 것이어서 중국의 반발을 부르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 인공지능과 슈퍼컴퓨터에 사용되는 반도체의 대중 수출을 금지시켰다. 그동안 투자 제한은 중국군과 관련된 특정 중국 기업들만 대상으로 해왔다. 그런데 이번 행정명령으로 첨단산업 분야에서 수출에 이어 투자까지 광범위하게 금지하게 됐다.
이에 따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옐런 장관의 잇따른 방중으로 조성된 미-중의 대화 재개 분위기에 악영향이 불가피해 보인다. 주미 중국대사관은 “미국은 기술과 무역 이슈를 계속 정치화하면서 국가 안보라는 이름으로 이를 도구와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며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면서 우리의 권리와 이익을 확고히 지켜내겠다”고 밝혔다. 앞서 중국은 미국 반도체 업체 마이크론에 제재를 가하고, 반도체 제조 등에 쓰는 갈륨과 게르마늄에 대한 수출 통제에 들어갔다. 그동안의 수세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이번 행정명령에 대해 추가적인 보복 조처가 나올 수도 있다.
미국이 한국 등 동맹국에 투자 제한 동참 압박을 강화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은 지난 5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등을 계기로 동맹국들에게 이번 행정명령에 대해 설명하고 협조 의사를 타진해왔다. 미국 행정부 고위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이번 조처에 대한 동맹의 참여는 매우 중요하다”며, 영국과 독일은 비슷한 투자 통제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은 자국 업체들의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 대중 수출을 차단한 뒤 일본과 네덜란드를 압박해 비슷한 조처를 이끌어낸 바 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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