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에 스타벅스가 있었나?…‘청자상감운학스타벅스문대접’ 뭐길래
현재 유행과 접목해 ‘미래의 유물’ 창조
‘새로운 장르를 만든 사람’으로 남고파
“고려시대에도 스타벅스가 있었나. 청자에 스타벅스 로고가 왜 있어?”
수많은 유물 사이에서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린 작품이 있다. 작품명은 ‘청자상감운학스타벅스문대접’. 실제 보물인 ‘청자상감운학문대접’을 재현한 다음 ‘스타벅스’ 로고 사진을 오려붙여 완성한 ‘유사유물’이다.
진짜 유물들 사이에서 발칙한 매력을 뿜어내는 이 대접을 두고 누군가는 “멋지다”고 극찬하는 반면, 일부는 “전통을 가볍게 여기는 게 아니냐”며 혀를 찰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작품을 만들어낸 유의정 작가는 진지하다. 그가 말하는 전통과 현재, ‘미래의 유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Q. 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어렵게 여긴다. ‘청자상감운학스타벅수문대접’은 과연 어떤 계기에서 만들어졌나.
▶예술이라는 영역 자체가 대중들에게 거리감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도자기는 사실 생활 속에 묻어있고 매일매일 쓰기도 하는 동시에 박물관에 예술작품으로도 존재한다. 그렇게 보면 도자기는 생활과 예술의 영역을 넘나드는 매체란 점에서 매력적이다.
그런데 어느날 박물관에 전시된 보물과 내 작품의 차이가 대체 뭘까 궁금해졌다. 게다가 시대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도 다를 텐데, 뭔가 ‘미래의 유물’이 될 만한 걸 만들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서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스타벅스는 대기업 로고이긴 하지만 현재 문화를 반영하는 상징, 즉 사인(sign)이다. 그래서 미래에는 이런 로고들이 전통문양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려시대 청자에 등장하는 ‘운학문’도 당시 불교사상 혹은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긴 ‘시대적 무늬’로 봐야 할 것이다. 조선시대 백자에 흐드러지게 그려진 포도가 마치 부와 다산의 상징이었듯이 말이다.
그래서 ‘현재는 그런 역할을 하는 로고들이 어떤 게 있을까’라고 탐구하게 됐고, 현재 유행하는 브랜드를 반영구적으로 오랜 시간 보존되는 재료인 도자기에 담게 됐다. 그렇게 동시대 문화를 반영한 도자기를 ‘미래의 유물’이라는 의미로 작업했다.
Q. 사진이 얹혀진 작품들이 많다. 사진은 어떤 방식으로 도자기에 입혀지나.
▶사진을 도자기에 프린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흔히 가정에서 사용하는 접시에 있는 꽃그림 같은 경우 ‘판화를 찍듯이’ 그림을 복사한 전사지를 붙인다. 제 작품에는 실제 사진을 잡지나 신문에서 오려내 붙이는 ‘포토콜라주’ 기법이 적용된다. 실제로 카르띠에, 에르메스 같은 명품보석 사진이 들어간 작품이 있는데, 여러 잡지를 수집해서 사진을 오려붙인 뒤 유약을 발라 코팅하는 형식으로 작품을 완성했다.
Q. 전시장 주변에 도자기를 파묻는다는 얘기가 있는데, ‘보물찾기’ 같은 것인가.
▶‘작품이 언젠가는 발견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다. 작가로서 도자기를 계속 만들 것이고, 작품을 의미 있게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릇이든 꽃병이든 사실 유물이라는 것도 누군가가 사용하던 물건이지 않나. 그런데 박물관에 있는 작품들은 우리가 ‘보물’로서 대하게 된다. 심지어 요강도 보물로서 유리관 너머에 전시되고 만지지도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내 작품과 유리관 너머의 요강은 무슨 차이가 있길래 하나는 보물이 되고, 내 작품은 아무것도 아닌가’라는 생각을 학생 때부터 했다. 어차피 계속 작업을 하고, 사람은 유한한 존재인데 그 사이에 ‘내 흔적을 어딘가에는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후대에 내가 묻었던 작품이 발굴된다면, 내가 살았거나 작업했던 행적의 지도가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조금 더 재미있는 생각을 해보자면, 어떤 건물을 짓기 위해 땅을 파다가 내 작품이 발견될 수도 있다. 건축 관련 종사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유물이 발견되는 순간 현장 작업이 중단된다고 한다. 뭔가가 발굴되고 진짜 유물인지 검증하는 데도 시간이 소요될 것 아닌가. 제 작품 ‘청자상감운학스타벅수문대접’이 발견되는 상상을 해보자. 사람들은 혼란스러울 거다. 청자 같기는 한데 스타벅스 문양이 찍혀 있고, 가짜유물 같더라도 검증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게 작품이 발굴되고 검증을 거치는 재미있는 상상을 하면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기에 아깝지는 않다. 작가로 활동했던 흔적이 되기도 하니까 작품을 땅에 묻는 작업은 계속하고 있다.
Q. 창작자들은 사람들이 작가의 의도를 완벽히 이해했을 때 뿌듯함을 느낀다고 들었다. 반응이 좋아서 흐뭇했던 작품이나 있나.
▶‘박물관 안에 있는 진짜 유물을 유리장 안이 아닌 일상생활 공간으로 꺼내놓아도 유물처럼 보일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반대로 ‘내 작품이 유리관 안에 들어가면 유물처럼 보이는 게 아닐까’ 역시 궁금했다. 그래서 유물일 것처럼 보이는 방법을 고민하던 차에 실제로 유물들 사이에 제가 만든 유사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립박물관으로 가장 오래된 박물관이 충북 음성군에 있는 ‘한독의약박물관’이다. 그곳엔 동의보감 원본을 비롯해 보물급 문화재도 여러 점 소장하고 있다. 여기에서 현대미술전을 기획하면서 제 작품을 같이 전시하게 됐다. 의약전문 박물관이다 보니 약대생이나 의대생들이 주로 관람을 했는데 대체로는 유물들 사이에 있으니 당연히 유물일 거라 생각하고 지나갔다.
그런데 누군가가 스타벅스 로고를 발견하고는 “고려시대에 스타벅스가 있었나?”라는 반응을 보이더라. 내가 원했던 반응이었다. ‘쉽게 알아차리지는 못하겠지만 누군가는 발견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진행했는데, 학생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냐”, “저기 청자에 스타벅스가 있지 않냐” 등의 반응이 터져나왔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제 작품이 유물처럼 보이기를 원했던 게 아니다. 스타벅스라는 명확한 로고가 있고 당연히 가짜이지 않나. 그렇다면 제 작품을 가짜라고 인식하는 순간, 전시관에 있는 다른 진짜 유물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했다. 마냥 동경하는 시선으로 유물을 바라보다가 한번쯤은 ‘저게 왜 보물인가’, ‘어떤 가치가 있는가’, ‘가치가 있다면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을 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Q. 혹시 새로운 형식의 작품 때문에 전통문화를 가볍게 여긴다는 비판을 받아본 적이 있나.
▶그런 적이 있었다. 전남에 무형문화재를 육성하는 국가기관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는데 ‘전통을 훼손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저는 전통을 훼손하는 게 아니고 매우 소중하게 생각한다. 물론 전통문화를 그대로 보존하고 이어가는 ‘전승’이라는 부분도 인정하고 존중하지만, 새로운 전통을 만들고 싶다는 태도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고 설명드렸다. 지금 현재 문화도 전통이 될 수 있고, 그렇다면 현재의 문화를 어떻게 남길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지 않겠나. 이런 생각을 자세히 설명드리니 재미있게 받아들여주셨다.
제 작품이 가볍게 보일 수도 있지만 작업에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특히 도자를 상감하거나 제작할 때 전통기법을 따르다보니 한달 이상 소요된다. 그럼에도 전통적인 방법을 따르는 것은 그만큼 진지한 태도로 문화를 기록하고 싶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가벼워 보일지라도 한땀한땀 장인정신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다.
Q. 시민들이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을 가지고 나와 감정을 받는 ‘TV쇼 진품명품’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나중에 그런 프로그램에서 작품이 등장한다면, 전문가들이 작가님을 뭐라고 설명하면 좋겠는가.
상상만으로도 재미있을 것 같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새로운 장르를 만든 사람’이라고 소개해주시면 감사할 것 같다. 사실 제 작품이 한국보다 해외에서 반응이 더 좋다. 한국에서는 도자기를 잘 알고 있거나 새롭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은 분위기가 좀 달라져서 클래식한 것에 대한 동경도 생기고 학생들이 ‘멋있다’고 칭찬해주기도 한다. ‘전통을 다시 보게 해준 사람’이라는 말, 먼 훗날에도 듣고싶다. 하하.
Q. 창작자로서 가장 힘이 되는 말과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작품을 듣고 싶다.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는 말이 좋다. 보통 작가들은 청자면 청자, 백자면 백자, 풍경화면 풍경화, 이렇게 특정 분야를 파고 드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저는 도자 자체를 탐구하는 작업을 하다 보니 하고 싶은 게 아주 많아서 어떤 것부터 해야할 지 고민이다. 원래 2m 이상 대형 작품을 만드는 작업을 자주 했었는데 요즘은 대부분 작은 도자기나 접시를 만들고 있다. 다시 사람 크기 이상이나 야외에 설치할 수 있는 도자기를 만들어 보려고 한다. 눈‧비 맞으면서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을 실험 중이다.
한편 유의정 작가는 오는 24일부터 10월28일까지 진행하는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일부 작품은 20일까지 ‘더 트리니티 앳 그랜드 하얏트 서울(THE TRINITY at Grand Hyatt Seoul) 갤러리 전시관에서 개최되고 있는 ‘그랜드 아트 셀러브레이션 전(展)’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