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꼭 빼닮은 9000만년의 지층… 홍길동이 꿈꾼 신비의 섬이었나[박경일기자의 여행]
대월습곡 바위 높이 무려 35m
J자로 휘어진 모양 시루떡 닮아
짧은 나무 빼곡하게 들어선 섬
고슴도치같아 ‘고섬섬’ 별명도
거센 풍랑 탓 침몰사고 잇따라
통도호·훼리호 등 아픈 기억들
고려 때 이규보 20일간 유배
홍길동전 ‘율도국 모델’ 說도
위도 8경 중 으뜸 ‘왕등 낙조’
두 섬 사이로 저무는 해 ‘절경’
부안=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 거친 바다 너머의 섬, 위도
‘섬의 형상’을 따서 섬 이름을 붙였다는 곳이 적잖다. 부안의 ‘위도(蝟島)’도 그중 하나다. 섬이 고슴도치 모양이라 고슴도치 ‘위(蝟)’ 자를 지명으로 쓴다는 얘기가 정설처럼 전해진다. 들쑥날쑥한 해안선의 모습을 지도로 보면 그럴 수 있겠다 싶기도 하지만, 전적으로 믿어지는 건 아니다. 지도도 없는데 옛사람들이 섬의 전체적인 형상을 과연 어떻게 알았겠는가 말이다.
다른 얘기가 있다. 때는 고려 건국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을 통일한 북송(北宋)이 고려 왕실 교체기에 축하사절단을 보냈다. 북송의 사신 서긍이 이끌고 온 사절단이다. 1000명이나 되는 사절단은 8척의 배에 나눠 타고 고려 개성의 벽란도로 향하다 위도에 정박했다. 날짜까지 정확하게 나온다. 1123년 6월 5일. 지금으로부터 딱 900년 전의 일이다. 물을 실으려 정박했다가 마침 동풍이 불어 사절단은 섬에서 하루 묵어갔다.
사신으로 고려의 수도 개경에서 한 달을 머문 서긍은 귀국 후에 고려의 풍물을 기록한 보고서 ‘고려도경’을 썼다. 자그마치 40권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이다. 그 책에 위도 얘기가 나온다. 그 부분을 펼쳐보자. “(6월) 5일 병술일에 (날씨는) 청명하였다. 고섬섬(苦점점)을 지나가는데 죽도에서 멀지 않았다.… 고려풍속에서는 고슴도치 털의 모양을 고섬섬이라 한다. 이 산의 나무들은 무성하나 크지는 않아 고슴도치 털과 같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 붙인 것이다….” 위도의 나무가 무성했으나 고슴도치 털처럼 크지 못했던 건 거센 바람과 급한 조류, 그리고 사나운 풍랑 때문이었으리라.
격포나 변산에서 보면 해무에 휩싸여 낭만적인 섬처럼 보이지만, 위도는 거친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이다. 갑작스러운 삼각 파도나 거센 풍랑 때문에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가장 큰 사고는 292명이 목숨을 잃은 1993년 서해훼리호 여객선 침몰사고였다. 앞서 1931년에는 더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한 칠산어장 조난사고가 있었다. 그해 4월과 8월, 12월 세 차례에 걸친 폭풍과 태풍으로 위도 앞 칠산바다에서 조기잡이를 하던 어선 500여 척이 침몰하고 어부 600여 명이 희생된 초대형 해상사고였다. 1959년 4월 22일에는 부안의 곰소와 위도를 오가는 순항여객선 통도호 침몰로 30여 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 지질과 식물 같은 과학, 그리고 풍경의 미감
위도는 거친 바다의 섬이었으니 오랫동안 중죄인의 유배지였다. 내륙인 부안에도 유배를 보냈는데, 위도는 거기서 배를 타고 한참 더 가야 하는 섬이었으니 오죽했을까.
고려 때는 이규보가 위도로 유배를 왔다. 팔관회란 잔치에서 예법에 문제가 생겼는데 정5품이던 그에게 책임이 지워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위도에 머문 시간은 20일 남짓에 불과하다. 위도로 들어가기 위해 부안에서 바람을 기다리며 한 달 반 정도 머물렀다니, 섬에 산 시간보다 바람을 기다린 시간이 더 길었던 셈이다. 금세 유배에서 풀려난 이규보는 그 뒤로 승승장구한다.
조선 시대 위도로 유배된 이들 중에는 인현왕후의 살해를 도모했다는 죄명으로 유배 온 장희빈의 당숙 장찬과 이조판서 출신의 유명견 등이 끼어있다. 장희빈의 당숙 장찬은 지금은 다리가 놓여 위도와 이어진 정금도라는 손바닥만 한 섬에 유배됐는데, 그 뒤의 얘기가 뜻밖이다. 유배 중 청어잡이로 큰돈을 벌어 거부가 됐던 것. 그렇게 번 돈으로 부안 고을에 굶주린 백성을 위해 쌀 수천 석을 기부했다고도 하고, 엽전을 부어 위도와 정금도를 잇는 ‘노둣길’을 만들려고 했다고도 한다. 그러다 위도보다 더 먼 바다의 섬, 왕등도로 금을 캐러 가다 풍랑으로 배가 침몰하면서 몰락했고 ‘엽전 노둣길’도 없었던 일이 됐다는 얘기다.
유배는 아니지만, 단종을 보필하다 세조에게 죽임을 당한 김종서 여종이 김종서의 유일한 혈육인 아들을 몰래 위도로 데리고 들어와서 길렀다는 얘기도 있다. 위도가 허균의 홍길동전에 나오는 가상의 나라 율도국의 모델이라고도 하고, 위도 인근 바다가 심청전에서 심청이 물에 빠지는 인당수라고도 한다. 홍길동전부터 장희빈까지, 조기잡이 어부의 희생부터 여객선 침몰 참사까지 위도에는 두터운 시간 속에 수많은 이야기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있다. 여기다가 지질과 식물 같은 과학과 경관이 드러내는 미감까지…. 위도에서는 보고 느낄 것이 다양하다. 위도 여행이 장르를 넘나드는 재미있는 책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 위도를 대표하는 최고 지질명소
여행지 명소도 시류를 타고 달라진다. 과거 인기 있던 관광지가 한순간 발길이 뚝 끊겨 적막한 곳이 있고, 거들떠보지도 않던 곳이 뜻밖에 인기를 누리기도 한다. 이런 변화 중에는 ‘한때의 유행’으로 치부할 수 있는 경우도 있겠고, ‘여행 방식이나 취향의 다양화’로 해석할 수 있는 사례도 있겠다. 가장 먼저 소개하는 위도의 명소는 후자의 사례에 가깝다.
지금 위도를 대표하는 최고의 볼거리는, 단연 ‘지질명소’다. 부안과 고창을 아우르는 바로 전북 서해안 일대는 지난 5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됐다. 전북 서해안의 지질 명소는 모두 32곳. 전북 부안과 고창이 사이좋게 나눠 갖고 있는데, 부안이 19곳이고 고창이 13곳이다. 면적 대비 지질명소가 가장 집중된 곳은 부안의 위도다. 위도 섬 안에만 지질명소가 7곳이나 된다.
위도의 지질명소는 주상절리, 공룡알 화석지, 층간 습곡 등 종류가 다양하지만, 가장 볼만한 곳이 시루떡 같은 지층이 횡으로 압력을 받아 J자 모양으로 휘어진 ‘횡와(橫臥)습곡’이다. 횡와는 ‘가로로(橫) 누웠다(臥)’는 뜻이다. 습곡 이름이 ‘대월(大月)’이다. ‘큰달’이란 이름처럼 대월습곡 바위 단면의 높이가 아파트 12층(35m)에 육박할 정도로 거대하다.
대월습곡에 가보면 ‘지리학도도 아닌데, 지층이 무슨 재미가 있겠냐’란 생각은 쑥 들어간다. 습곡은 말 그대로 장관이다. 얼핏 나무의 나이테처럼 보이는 지층의 위압감이 대단하다. 떡을 쌓듯 겹겹이 겹쳐진 지층이 보여주는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은 또 어떤가. 대월습곡이 만들어진 건 공룡이 살았던 백악기. 자그마치 9000만 년 전이다.
대월습곡은 위도에서 가장 큰 해수욕장이자 유일한 백사장 해변인 위도해수욕장에서 이어지는 해안가 숲길 끝에 있다. 줄곧 울창한 숲 그늘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20분쯤 걸으면 대월습곡 앞에 서게 된다. 습곡도 습곡이지만, 거기까지 가는 숲길의 운치도 훌륭하다. 인상적이었던 건 숲길 구간에서 수시로 출몰하는 붉은 집게발을 가진 도둑게들. 쓱싹쓱싹, 서걱서걱, 수런수런…. 한발 한발 디디면 앞쪽에는 이런 소리가 가득하다. 인기척과 발걸음 소리에 놀란 도둑게들이 재빨리 게 구멍에 몸을 숨기거나 도망가며 내는 소리다. 처음에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도둑게들이 게 구멍을 들고나는 모습이 각별했다.
# 위도해수욕장이 유난히 호젓한 이유
해수욕장 얘기가 나온 김에 전하는 위도의 여름휴가 팁 하나. 절정의 휴가시즌인 이즈음 위도의 해수욕장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적하다. 섬은 여객선 정원이 있어 자연스럽게 체류 인원이 조절되는 법. 그런데 올여름, 위도를 드나드는 여객선 2척 중 1척이 정비를 이유로 운휴 중이다. 하루 8번 남짓이던 여객선 운항이 절반으로 줄어든 데다, 부안의 잼버리대회까지 겹치면서 위도를 찾는 피서객이 급감했다. 인파에 치이지 않는 한적한 여름휴가를 원한다면 여기만 한 곳이 없다.
위도에는 해수욕장이 모두 4개인데 다 서쪽, 그러니까 육지 반대쪽 해안의 만(灣)에 있다. 가장 큰 해수욕장이 위도해수욕장이다. 너른 백사장과 완만한 수심으로 위도의 해변휴양지를 대표한다. 그런데도 지난주 금요일 위도해수욕장의 피서객은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캠핑장에도 텐트 예닐곱 동이 고작이다.
위도해수욕장 외에 위도에는 깊은금해수욕장과 미영금해수욕장, 논금해수욕장이 있다. 세 곳 모두 모래가 아닌 몽돌 해안이다. 작고 둥글고 납작한 몽돌이 해안가에 가득 깔려있다. 몽돌이 해안을 차지하고 있는 건, 급한 수중경사로 모래가 다 떠내려가고 해안에 몽돌만 남기 때문. 해수욕장 규모가 작고, 수심이 깊으며 화장실이나 샤워실 등 편의시설도 없지만, 파도에 해변 갯돌이 차르르 구르는 해변의 정취가 제법이다.
이중 가장 손이 덜 닿은 은밀한 느낌을 주는 곳이 논금해수욕장이다. 논금해수욕장 몽돌해변으로 내려가는 길은 딱 하나. 해안가 펜션 마당을 거쳐야 하는데 이런 이유로 펜션이 자연스럽게 해수욕장 전체를 프라이빗 비치처럼 쓰고 있다. 이곳을 예약할 수만 있다면 자그마한 해수욕장 하나를 독차지하며 즐기는 휴가를 보낼 수 있겠다.
# 다른 섬에는 없는 것, 두 가지
위도에는 다른 섬에는 없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위도상사화고, 다른 하나는 띠뱃놀이다. 상사화는 여름 끝자락에 피는 꽃. 꽃대가 올라와 꽃을 먼저 피운 뒤, 꽃 지고 잎이 난다. 상사화(相思花)란 이름은 꽃과 잎이 서로 볼 수 없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보통 상사화는 보랏빛이 살짝 도는 분홍색. 그런데 위도에는 흰 꽃 상사화가 핀다. 그게 위도에서만 자생하는 ‘위도상사화’다.
위도상사화는 보통 8월 말에 피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번에 가보니 그게 아니다. 위도해수욕장 뒤쪽의 상사화 군락지의 꽃은 8월 말쯤 만개하지만, 일찌감치 섬 이곳저곳에서 위도상사화가 개화했다. 만개를 넘어 꽃이 지고 있는 무리도 있다. 지금 가면 온통 꽃이 흐드러진 군락지를 볼 수 없지만, 해안도로나 양지 바른 집 주변에서 순백의 깨끗한 위도상사화를 볼 수 있다. 꽃 색깔이 여행자에게 무슨 큰 의미일까 싶은데, 그래도 위도 말고는 어디서도 자생하지 않는 꽃이라니 감회가 새롭다. 꽃 보러 위도 가자 권할 일까지는 아니겠지만, 위도 가서 위도상사화를 보는 경험은 귀하다.
위도 띠뱃놀이는 정월 초사흘에 용왕에게 풍어와 마을의 평안을 빌며 띠로 지은 작은 배를 바다에 띄워 보내는 민속놀이다. 위도에 띠뱃놀이 원형이 남아 전승되고 있는 건 한때 번성했던 조기 파시의 기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위도의 남쪽 바다는 조기잡이의 보물창고였다던 ‘칠산어장’이다. 전남 영광 법성포와 송이도 사이. 일산도부터 칠산도까지 일곱 섬이 늘어서 있는 일대를 칠산어장이라 불렀다. 동지나해에서 겨울을 보낸 조기는 4월 무렵이면 이곳 칠산어장까지 올라왔다. 조기떼가 몰려들고 조기 울음소리가 칠산바다를 온통 뒤덮을 무렵, 위도에는 조기 파시가 섰다.
매년 3월부터 6월까지 조기 파시가 서면 위도에는 1100여 척의 고깃배가 몰려 닻을 내렸다. 파시가 가장 번성했던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 어선이 400척이었고, 한국인 어선이 700척 정도였다. 선원부터 장사치까지 5500여 명이 지금 여객선 터미널이 있는 작은 어촌 파장금에 북적였다. 파장금(波長金)이란 지명은 ‘폭풍이 몰아쳐 물결이 길면 어선이 모이는 곳’이라고 해서 붙여졌다고도 하고, ‘파도가 치면 돈(金)이 몰려온다’는 의미라는 얘기도 있다.
파시가 들어섰을 때 위도가 얼마나 번성했는지는 당시 기록으로 충분히 짐작되고 남는다. 당시 파장금에 일본인이 운영하는 요릿집이 6개, 한국인이 경영한 음식점이 35곳이나 됐다. 술집의 ‘색시’만 400∼500명이었다. 손바닥만 한 섬마을에 선구점과 기계수리점, 잡화상, 이발소, 다방, 세탁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가게들이 문을 열었다. 수백 척 어선이 만선 깃발을 매달고 돌아왔다던 40년 저쪽의 꿈 같았던 시절 이야기다.
# 영험한 샘물과 전설
위도 띠뱃놀이가 행해져 온 위도의 대리마을에는 수많은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뒷짐 지고 골목길로 들어서면 이런 전설과 마주치게 된다. 대리마을 뒤쪽 산자락 아래 ‘대룡샘’이 있다. 대룡(大龍)이란 이름답게 일 년 내내 마르지도, 넘치지도 않는다고 전해지는 영험한 샘이다. 지금은 오염돼 식수로 쓸 수 없어 이런저런 폐자재로 샘을 덮어놓았지만, 대룡샘은 오랫동안 마을 주민의 무병장수와 건강을 기원하는 신성한 물이었다. 띠뱃놀이를 하면 지금도 꼭 여기서 뜬 물로 제를 지낸다.
대룡샘에는 전설이 있다. 물장사로 생계를 이어가는 절세미인 이씨 부인이 있었는데, 극심한 가뭄이 들자 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서해 용왕의 아들 대룡이 마르지 않는 옹달샘을 선물했는데, 그게 대룡샘이란 얘기다. 마을 뒷산에 올랐던 절충장군이 쇠스랑을 질질 끌고 마을로 내려왔는데, 쇠스랑이 지나간 고랑마다 대룡샘 물이 흘러 도랑이 생겼다는 전설도 있다. 도랑은 빨래터 겸 노천목욕탕으로 썼다는데, 지금은 복개돼 자취를 찾을 수 없다.
대룡샘 얘기는 900년 전 북송의 사신 서긍이 쓴 ‘고려도경’에도 나온다. 서긍은 폭풍을 만나 위도에 하루 묵어가면서 주민들에게 쌀을 주고 대룡샘의 물을 받아 마셨다. 대리마을 주민들 사이에서는 서긍이 자기 나라로 돌아간 뒤에 높은 벼슬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던 이유가 위도에서 마신 대룡샘 물의 영험한 기운 때문이었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진다.
대리마을 골목으로 들어서면 드넓은 담벼락에 사진을 새긴 대형 벽화가 있다. ‘위도 전설’이란 제목을 내건 두 장의 사진이다. ‘위도 전설’ 중 하나는 조기 파시 사진이다. 벽 하나 가득 조기 파시 당시 파장금의 모습을 담은 파노라마 사진이 새겨져 있다.
벽화에 그려진 또 하나의 ‘위도 전설’ 장면은, 12년 전의 것이다. 2011년 서남해안 일대 섬마을을 돌며 콘서트를 열었던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그해 9월 21일 위도해수욕장 야외 공간에서 ‘섬마을 무료 콘서트’를 펼쳤다. 벽에는 그가 바다를 배경으로 피아노 연주를 하는 사진이 새겨져 있다. 세계 정상급 음악가가 이 먼 섬까지 와서 피아노를 연주해 준 것이 ‘위도의 전설’이 된 것이다.
# 왕등도를 붉게 물들이며 해가 지다
이제 위도에서 가봐야 할 곳들을 모아보자. 위도의 깊은금해수욕장 뒤쪽 숲 속에 암자 내원암이 있다. 섬에 있는 절이라면 바다를 보고 섰을 법도 한데, 내원암에서는 손톱만큼도 바다가 보이지도 않고, 파도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풍경에도 소리에도 방해받지 말고 진공 같은 침묵 속에서 불법을 닦으란 얘기일까. 내원암은 고창 선운사의 말사다. 선운사 도솔암에 내원궁이 있다면, 위도에는 선운사 말사 내원암이 있는 격이다. 내원암은 근래 지은 절집처럼 보이는데, 뜻밖에 1178년에 창건한 절이다. 암자의 내력만 845년이다.
내원암에서 눈길을 붙잡는 건 주 법당인 세존전 앞마당에서 자라는 거대한 배롱나무다. 수령 300년을 넘긴 아름드리 배롱나무는 법당 크기에 맞먹을 정도로 크다. 그런데 올해 내원암 배롱나무 꽃이 많이 늦다. 아직 꽃눈조차 달리지 않았으니 여름 끝에나 필 것 같다. 내원암에는 오래전에 그윽한 소리로 우는 종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위도 8경 중 제1경이 내원암의 저물녘 종소리를 뜻하는 ‘내원모종(內院暮鐘)’이다.
위도 8경 중 가장 근사한 건 제7경 ‘왕등 낙조’다. 왕등 낙조란 위도에서 보는 왕등도 너머로 해지는 풍경을 말한다. 부안 격포에서 위도까지 거리와 위도에서 왕등도까지 거리가 각각 25㎞로 비슷하다. 이맘때쯤이면 위도 해안 일주도로 변의 낙조 전망대에서 상왕등도와 하왕등도 사이로 정확하게 해가 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위도 여객선터미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서해훼리호 위령탑이 있다. 서해훼리호 사고가 1993년 10월 10일에 발생했으니 올해로 꼭 30년이 된다. 한 세대가 지나면서 사고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고 있지만, 주민들은 위도 주민이었던 백운두 선장의 생존설 오보로 인한 상처를 잊지 못하고 있다. 당시 언론들은 백 선장이 배에서 탈출한 뒤 숨어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비난을 쏟아냈는데, 선장은 사고 닷새 만에 침몰한 배의 무선통신실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지금도 그 얘기를 하면, 주민들은 가슴을 친다.
■ 부안의 새 명소 직소천
부안군과 변산반도국립공원이 새만금세계스카우트잼버리대회 영외활동 장소로 조성한 ‘직소천 물놀이장’이 여행 명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부안댐 아래 물과 기암이 근사하게 어우러진 직소천 구간에다 다리를 놓고 다양한 물놀이 시설을 들여놓은 곳이다. 준비부족에 폭염까지 겹치면서 파행으로 치달았던 잼버리대회에 참가했던 스카우트 대원들은, 그나마 낮 시간 이곳에서 물놀이를 즐기며 더위를 식혔다. 변산반도국립공원 사무소는 직소천을 여름철 상설 물놀이장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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