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에서 소비로' 축 이동에 올인..中이 유커 족쇄 푸는 까닭은
중국 정부가 전격적으로 한국과 일본 등 이른바 '친미'로 분류되는 국가들에까지 관광 빗장을 푼데는 그만큼 국내 경제상황에 대한 우려가 절박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코로나19(COVID-19) 이후 닫았던 단체관광의 문을 올 초와 3월 순차적으로 열어왔는데, 대상이 태국 등 친중으로 분류되는 나라들에 국한됐었다.
10일 중국 정부는 그간 제한해 온 한국과 미국, 일본 향 유커(游客,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에 대한 단체비자 발급을 전격 허용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때를 같이 해 한국인들의 중국 방문에 큰 허들로 지적받아 온 지문채취도 올 연말까지 면제하기로 했다. 양국 간 관광ㅍ제한을 모두 폐지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셈이다.
중국은 이에 앞서서는 그간 막혔던 한국과의 서해안 국제여객선(카페리) 승객 운송도 재개했다. 사실상 제한 완전 해소의 준비동작을 해 왔다.
중국 정부가 전격적으로 관광 빗장을 풀기로 한건 경제상황에 대한 타개책 마련이 시급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국제사회의 디플레이션(내수소비와 물가가 동시 장기 침체되는 상황)우려에 대해 '단기적 여파에 그칠 것'이라며 표정관리를 하고 있지만 실질경기에 대한 걱정은 지대해 보인다.
전날 발표된 중국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0.3%(전년동월대비)로 2년 5개월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생산자물가지수(PPI)도 -4.4%로 10개월 째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갔다. CPI와 PPI가 동시 마이너스를 기록한건 28개월만이다. 지난 6일 발표된 수출성적표도 최악이다. 7월 2817억달러(약 370조원) 수출에 그쳤는데 전년 동월 대비 무려 14.5% 줄었다. 41개월만에 최대 낙폭이다.
CPI 침체는 중국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다는 의미다. 중국 경제의 또 다른 축인 부동산 경기가 장기 부진에 빠진 가운데 수출이 부진하면서 무역을 통한 달러 유입도 기대하기 어렵다. 여기다 소비까지 얼어붙었다. 경제 엔진이 완전히 꺼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중국이 그간 백안시했던 한국과 일본 등 친미성향 분류 국가들에도 전격적으로 관광제한을 푼 배경이다.
중국 주재 한 국내기업 관계자는 "주요 경제지표들이 디플레이션을 향해 가고 있는 상황에서 항저우 아시안게임이나 중추절, 국경절 연휴 등을 명분으로 친미국가에도 중국 여행을 허용하면서 이를 통한 경제활성화를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지문등록 절차 면제는 가까이서 자주 왕래하는 국가들부터 여행절차를 간소화해 여행객을 유치하려는 의도일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중국 정부가 자국민들의 해외 관광 장려에 나선 것에 대해서는 '저축'에서 '소비'로 가계의 중심 축을 이동시켜야 한다는 절박감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망에 따르면 1995년 3분기 무려 60.4%였던 중국인들의 저축률은 경제급성장에 따라 낮아져 2017년 말엔 39.2%까지 떨어졌다. 그러던게 2022년 1분기엔 45.4%까지 높아졌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속에 주민들이 돈을 쓰지 않고 모으고 있다는 뜻이다. 급속도로 경제가 성장하며 중국의 글로벌 경제 라이벌로 떠오르는 인도의 저축률은 30% 안팎으로 알려졌다. 경제활력의 온도차가 엿보인다.
다른 관계자는 "(이번 조치는)저축된 돈을 소비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내수경제가 살아난다는 점에서 국제적으로 보다 안정된 상태를 만들어 국민들로 하여금 안정감을 갖고 소비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일 것"이라며 "저축을 소비로 전환시키는게 핵심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개별산업 측면에서 보면 중국 정부가 단기적으로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중국에서 유럽이나 미국 등으로 가는 장거리 비자는 포화상태다. 지금 신청해도 4개월 가량 대기해야 한다. 중국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국제선 증편에 대한 필요성이 언급될 정도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장거리 여행을 원하지만 비자가 나오지 않고, 상대적으로 여력이 없는 사람들은 그나마 국내 여행에서도 지출을 최소화한다.
중국 정부가 국적항공사들의 손실을 메우기 위해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는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한국과 일본 단체여행을 허용하면서 여행객을 늘리면 국적항공사의 수입이 늘어나고, 국가보조금 지출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cheeru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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