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으로 푹푹 찌는 요즘 어디로 나들이를 가야 하나 고민이 많다. 다들 도심이 아닌 교외를 떠올리지만 선뜻 목적지를 정하기란 쉽지 않다. 잠시 생각의 전환을 해보자. 시원함을 촉각이 아닌 시각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물론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자연 내지는 실내의 선선한 곳을 기본으로 한다.
이런 조건에 잘 맞는 곳이 서울 근교에 있다.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호암미술관이다. 초록빛 세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녹음이 짙고, 전시 구성 또한 시간가는 줄 모를 만큼 다양하고 풍부하다. 여기에 최근 SNS를 뜨겁게 달구는 미술관 근처 카페 ‘묵리459’도 빼놓을 수 없다. 먹을 사용했던 마을답게 먹빛과 잿빛이 적절히 녹아있는 분위기만으로 더위와 거리두기는 성공이다.
수려한 자연경관 뽐내는…호암미술관
호암미술관은 1년 반 동안의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지난 5월에 재개관했다.
호암미술관이 용인의 인기 명소가 된 데에는 주변의 푸르른 자연경관이 한몫 한다. 호암미술관의 산책 명소 정원인 ‘희원’에서는 피크닉도 가능해 하루나들이 명소로도 제격이다.
도심에서 잠시 벗어나 초록빛으로 물든 자연에서 여유를 만끽하고 싶다면 호암미술관을 찾아가보기를 추천한다. 서울에서 차로 약 1시간 거리에 있어 부담 없이 방문하기 좋다.
호암미술관은 요즘 대세인 ‘푸바오’를 볼 수 있는 에버랜드 바로 근처에 있다. 에버랜드에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함께 들러 봐도 좋을 듯하다. 호암미술관이 관람객을 위한 에버랜드 셔틀버스도 운행하기 때문이다.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1시간 간격으로 에버랜드 정류장에서 호암미술관까지 운행한다.
최고기온이 34도를 넘어서는 무더운 날에,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호암미술관을 찾았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부터 연인과 함께 온 방문객까지 관람객 부류도 다양했다.
미술관 옆에는 불국사의 다보탑을 재현한 탑이 있다. 호암미술관의 외부는 궁궐과 한옥의 전통양식으로 지어져서 탑과 함께 어우러지는 멋을 느껴볼 수 있다.
호암미술관은 내달 10일까지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 화가의 ‘한 점 하늘’ 전시를 선보인다. 전시를 관람하려면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해야 하고 입장료는 1만4000원이다. 그의 40년 예술의 여정을 담은 작품 약 120점이 관람객을 맞는다.
전시장은 선과 점으로 이룬 추상화, 한국적인 조형미와 색채가 돋보이는 그의 작품을 감상하러 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많은 작품들 중 김환기 작가의 대표작이자 최대 규모 작품인 ‘여인들과 항아리’가 특히 유명하다. 길이 5m가 넘는 1000호(281.5*567㎝)의 대형 작품으로 한쪽 벽면을 가득 채웠다. 미술 교과서에서도 많이 등장했고 국립현대미술관과 이건희 컬렉션 순회 전시에도 선보여진 바 있어 꽤나 익숙한 작품이다. 전시장에는 김환기 작가의 유품도 함께 볼 수 있다. 김환기 작가의 고민과 예술에 대한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메모와 편지도 있어 흥미롭다.
전시를 보고나면 1층에서 호암미술관의 다양한 굿즈를 구경할 수 있다.
백자로 된 주전자, 컵과 김환기 작가의 그림으로 디자인된 손수건이 가장 인기다. 이 밖에도 마그넷, 파우치 등 기념으로 구매할 수 있는 다양한 굿즈들이 재미를 더한다.
전시 관람이 끝났다면 호암미술관의 하이라이트인 정원 ‘희원’으로 가보자.
희원으로 들어가는 문은 ‘보화문’이라 하는데, 덕수궁의 유현문을 본 떠 한국 전통 문양의 돌을 쌓아 올린 모습이 아름답다.
안으로 들어가면 산책로가 늘어지고 희원의 수변광장에는 연못을 중심으로 잔디마당이 펼쳐져 있는데 여기서 피크닉도 즐길 수 있다. 호암미술관에는 카페나 식당이 없다. 날이 좋으면 먹을거리를 가져와 희원에서 피크닉을 즐겨도 된다.
요새는 무더운 날씨 때문에 잔디마당에 사람이 많이 없지만 봄에는 피크닉을 하러 오는 사람들로 희원이 가득 찼었다고 한다. 폭염이 지나고 날씨가 풀리면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감상하며 피크닉을 즐겨 봐도 좋을 듯하다.
계절의 감성 품은 핫한 카페…묵리459
‘묵리459’는 2030세대를 저격한 감성과 이색 메뉴들로 이름을 알린 유명 카페다.
호암미술관에서는 차로 40분 정도 걸린다. 대중교통으로 가기에는 다소 불편하니 택시나 차로 이동하기를 추천한다.
묵리459는 콘셉트가 확고하다. ‘묵리459’라는 이름은 실제 지번 주소인 ‘묵리 459’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묵(墨)리’는 오래전부터 먹을 만들던 마을로 알려진 곳이다.
박탄 묵리459 대표는 “묵리의 정신을 살려 카페의 이름을 지었고, 실제로 여러 메뉴에 먹의 빛깔을 담았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건물 외관도 먹색이고 내부는 흰색과 먹색의 조화로 디자인한 모습이다. 묵리의 다양한 브런치 메뉴와 음료에서 먹을 연상하게 하고, 검은 파스타면을 사용한 메뉴도 볼 수 있다.
카페 안쪽에는 자연이 그대로 비춰지는 통창이 있는데, 이곳이 묵리의 인기 포토존이다.
이우진 묵리459 점장에 따르면 묵리 459는 사계절의 모습이 모두 매력적이라고 한다. 곧 다가올 가을에는 단풍으로 물들어 한층 분위기가 고즈넉해지고, 겨울에는 눈이 소복이 쌓인 낭만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묵리의 가을과 겨울이 어떨지 궁금해 계절이 바뀔 때 방문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묵리459는 카페 본연의 역할도 충실하다. 대표 메뉴인 ‘묵리플’과 ‘시그니처 묵리 샐러드’, 그리고 신메뉴인 ‘주상절리’가 요새 사랑받고 있다.
주상절리는 ‘묵크림’이 가득한 크루아상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올라간 묵리의 새로운 디저트 메뉴다. 묵크림은 묵리의 다양한 메뉴에 들어가는 크림으로, 흑임자 맛이 나 부드럽다. 먹색의 크루아상은 울산의 대형 베이커리 카페인 ‘라메르판지’와 협업해 만들었다. 네모난 먹색의 크루아상을 자르면 안에 있는 묵크림이 흘러나온다. 쫄깃한 크루아상을 크림에 찍어서 먹고 아이스크림으로 마무리하면 금상첨화다.
‘시그니처 묵리 샐러드’는 식물을 물에서 키우는 수경재배로 자란 건강한 채소를 쓴다. 채소의 식감이 부드럽고 촉촉하다. 양상추와 토마토, 견과류, 파프리카에 묵리 특제 소스를 넣어 섞어 먹으면 맛이 좋다.
묵리459하면 빼놓을 수 없는 ‘묵리플’은 크로플 위에 치킨이 올라간다. 치킨 옷을 먹물 반죽으로 입혀 튀겨 치킨이 까맣다. 생각지 못한 비주얼에 놀랄 수 있지만 맛을 보면 금방 묵리플의 매력에 빠진다. 크로플은 달달하면서 촉촉하고, 치킨의 튀김은 바삭하고 속은 야들야들해 집에 가면서도 다시 생각날 맛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료도 매력적이다. ‘묵라떼’와 ‘오로라 에이드’를 고객들이 선호한다고 관계자가 귀띔했다. 묵라떼는 먹을 닮은 크림 라떼로, 라떼에 묵크림이 올라가 고소하고, 라떼의 진한 맛이 일품이다.
오로라 에이드는 보자마자 카메라를 켜게 되는 비주얼이다. 밑에는 노란 파인애플 청이 있고 라벤더 티백으로 보랏빛 색을 내서 음료를 섞으면 분홍빛으로 변한다. 오로라 에이드는 파인애플의 달콤함과 에이드의 청량함을 한 번에 느낄 수 있는 묵리의 별미 음료다.
묵리459에서는 특별한 클래스도 진행 중이다. 바로 카페 바로 옆 ‘묵리샵’에서 여름시즌 ‘티 블렌딩 클래스’를 열고 있다.
여름과 잘 어울리는 차 재료를 다양하게 준비했다. 히비스커스, 레몬그라스, 페퍼민트, 라벤더 등 여러 가지 차 재료 중 마음에 드는 차를 취향에 맞게 블렌딩해 ‘나만의 티’를 만들 수 있다.
차와 어울리는 간단한 다과도 함께 제공하고 있어 연인, 친구, 가족과 함께 즐기기 좋다. 소요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이고 ‘네이버 예약’을 통해 예약할 수 있다.
호암미술관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감성과 배를 동시에 채우는 묵리459로 무더위를 날려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