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선생님’들의 일상이 평범하고 안온할 수 있기를 [K콘텐츠의 순간들]
일상의 순간을 포착하여 만화 언어로 옮긴 작품을 일상툰 또는 생활툰이라 부른다. 웹툰 태동기를 함께 이끈 웹툰 〈낢이 사는 이야기〉나 〈마음의 소리〉도 이 장르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생활툰이라 하면 유머가 가미된 귀여운 만화 정도를 떠올리곤 한다. 물론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생활툰이 언제나 웃기고 가벼운 건 아니다. 간혹 생활툰 작품을 펼치면 재미있고 소소한 장면들 너머로 묵직한 현실의 무게감이 전달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반지하 셋방에서 사는 자매들의 일상을 다룬 웹툰 〈반지하 셋방〉에는 낯선 외부인이 한밤중에 자매의 집 잠금장치를 누르는 장면이 그려지고, 대학원생의 연구실 생활을 그린 웹툰 〈대학원 탈출일지〉에는 (일부 희화화되어 그려지기는 하지만) 대학원생이 교수의 갑질에 속수무책 당하는 일들이 묘사된다. 웹툰 〈열무와 알타리〉는 발달장애 아동과 양육자에게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을 그려내기도 했다.
귀엽고 웃긴 줄만 알았던 생활툰 장르 작품에서 문득 이런 현실이 도드라지듯 나타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일상은 애초에 그런 것이니까. 일상을 연구했던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는 저서 〈일상생활의 사회학〉에서 노동자의 구체적 생활에 근거를 둠으로써 ‘정상의 비정상성'을 꿰뚫어볼 수 있으며, 나아가 이런 작업이야말로 곧 진실이 되리라고 썼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라는 구호를 굳이 통과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살아 숨 쉬는 일상의 시공간에는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진실이 숨어 있다.
네이버웹툰에서 연재 중인 만화 〈그냥 선생님〉도 생활툰이다. 이 만화는 교육 현장 당사자가 아니라면 알기 힘든 구체적 상황을 작품 안에 섬세하게 녹여냈다. 특별하지 않고, 남다른 것도 아닌 ‘그냥 선생님’이라는 제목이 마음을 잡아끌었다. 작품의 주요 인물은 초등학교 교사들이다. 모두 실존 인물이 아니라 작가가 창작한 가상의 캐릭터다. 대다수 생활툰에서는 작가가 곧 작품 속 주인공으로 재현되며 실제 주변 인물을 모티브 삼아 그려지지만, 이 만화는 가상의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캐릭터 중에는 교단에 선 지 몇십 년이 넘은 베테랑 교사가 있고, 중간 연차의 교사도 있는가 하면 이제 막 처음 학교에 부임한 신규 교사도 있다. 일상과 로맨스를 골자로 하는 만큼, 이 만화는 시시콜콜한 일상의 장면과 달달한 로맨스를 엮어 전반적으로 귀엽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의 순수한 행동에 나도 모르게 웃음 짓게 되고, 관심과 애정 사이를 아슬아슬 줄 타는 감정선에 함께 두근거린다. 여태 이 만화는 나에게 보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명실상부 ‘힐링툰’이었다. 7월18일, 한 초등학교 교사가 서울 강남의 한 학교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왜 그 장면을 제대로 못 보았을까
비통한 뉴스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 무렵, 문득 이 만화가 떠올라 다시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달달하고 귀여운 분위기에 취해 무심하게 넘겼던 장면들이 새삼스레 다시 눈에 들어왔다. 신학기 준비를 위해 신입 교사들이 2월부터 출근해서 일하지만, 정식 발령은 3월이라 2월은 일을 해도 월급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6화), 교실에 책걸상을 채우는 건 물론이고 학급의 게시판을 꾸미거나 교자재를 채우는 것 모두 턱없이 적은 예산에서 하느라 교사들의 수작업이 필수라는 것(8화). 수업과 교구 준비는 물론이고 온갖 공문서와 행정 업무에 대응하려면 쉬는 시간에도 일해야 하며(15화), 점심시간엔 학생들의 식사 지도를 하느라 정작 자신의 식사는 건너뛰게 되는 일들(24화). 왜 지금까지 이 장면들을 제대로 보지 못했는지 그게 오히려 놀라울 정도로, 이 작품에는 선생님들의 노고가, 아니 ‘노고’라 불러도 될지 모를 ‘과노동’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작품을 통해 슬쩍 엿본 수준에 불과하다. 이 작품에는 학생만 등장하고 학부모는 거의 그려지지 않으며, 행정 업무가 얼마나 많은지 얼핏 언급되기는 하지만 민원 같은 건 생략되어 있다. 아이들 간 상호작용과 관계성이 일부 그려져 있지만, 중점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물론 이건 작품의 잘못이 아니라 작품 기획 취지에 따라 이루어진 적합한 취사선택이다. 교사의 노동 현장을 고발하는 르포 만화였다면 이 모든 것이 속속들이 그려졌을 테지만, 이 만화는 어느 정도 일상을 미화하고 각색한 일상·로맨스 만화이기 때문에 이런 부분까지 구체적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도리어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냥 선생님〉이 ‘편집본’임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의 과로가 작품 안에서 여실히 드러난다는 점이다. 일상을 잘라내고 덜어내 그 편린을 모은 것이 이 정도라면, 현실은 대체 어느 정도의 무게일까.
하나의 교실을 책임지는 건, 그 안에 겹겹이 포개진 수많은 업무의 레이어를 총체적으로 관리한다는 의미다. 학생들이 사용해야 하는 책걸상과 사물함 등 기본 설비를 관리하고, 교실에서 활용하는 각종 교구와 문구들을 준비하는 업무. 학습계획서와 알림장, 가정통신문 등 갖가지 행정 문서를 작성해 배포하는 일. 학급 내 규칙을 만들고 학습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학생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외우고 성향과 기질, 알레르기 여부 등을 챙기는 돌봄. 수업을 계획하고 수업용 자료와 시험지 등을 만들어 이를 진행하는 교육. 그 외에도 학교 운영이나 행사, 체험학습, 기타 행정과 민원을 챙기는 것까지. 하나의 교실을 오직 단 한 사람이 이끌어야 한다는 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괴롭고 어려운 과업이었던 게 아닐까.
“기뻐하고, 속상해하고, 뿌듯해하며, 배우고 성장하겠습니다.” 초등학교에 새로 부임한 신규 교사 ‘윤솔’의 인사말이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그 교사도 처음 교실에 발 디뎠을 때 아마 윤솔과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부대끼고, 그 안에서 기쁨과 속상함, 뿌듯함을 모두 누리며 함께 성장하는 ‘그냥 선생님’이 되겠다고 말이다. 그 마음을 꺾은 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 사회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조차 마음이 이토록 참담한데, 교육 현장에서 분투하고 있는 다른 교사들의 마음은 어떨지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마음이 무너져 내렸을 다른 동료 교사들께 위로와 연대의 마음을, 그리고 자신이 견디고 책임져야 했던 그 공간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선생님께 추모의 마음을 더하고 싶다. 무엇보다도 ‘그냥 선생님’들의 일상이 평범하고 안온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빈다.
조경숙 (만화 평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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