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이 ‘대한민국’ 국호를 쓴 까닭

김창수 2023. 8. 10.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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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처음 언급했다. 국호 사용은 남북한이 두 개 국가에 기초해서 평화롭게 공존하자는 느긋한 주장이 아니다.

북한 동정이 심상치 않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연일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막말에 가까운 강경 발언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런데 그의 발언은 북한이 정전 70년 동안 취해온 정책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어째 께름칙하다.

김여정 부부장이 담화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언급한 것은 남북 관계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김 부부장이 대한민국을 언급한 이후 강순남 국방상도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했다. 곱게 대한민국이란 국호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온갖 비하하는 표현을 했다.

김여정 부부장이 담화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처음 언급했다. ⓒREUTERS

남과 북은 그동안 공식 합의문에서만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으로 표기했다. 북한 매체에서는 ‘남조선’이라 했고, 우리는 통상 ‘남한’ ‘북한’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남북회담을 하거나 북한 사람들과 마주 앉을 경우에 양측 모두 ‘남측’ ‘북측’이라는 용어를 썼다. 두 개의 국가가 아니라는 차원에서 ‘대한민국’과 ‘조선’을 대신해, ‘남측’ ‘북측’이라 불러왔다.

이는 1991년에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에 기초하고 있다. 남북기본합의서에서는 “남과 북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잠정적 특수관계”라고 밝혔다. 김여정 부부장의 대한민국 국호 사용은 ‘잠정적 특수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남북을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라는 두 개의 국가관계로 설정하고 있음을 공식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북한은 이미 이런 속내를 비치기 시작했다. 지난해 7월, 북한이 전승절이라 부르는 정전협정 체결일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윤석열 정권에 대해 “때 없이 우리를 걸고 들지 말고 더 좋기는 아예 우리와 상대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고 말했다.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이어진 김여정 부부장의 발언은 더 노골적이었다. “제발 좀 서로 의식하지 말며 살았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다.”

남북 협상을 하거나 북한을 방문할 때 북한 사람들이 남한 사람들의 말에 심하게 거부감을 드러낼 경우는 대략 세 가지다. 하나는 이른바 북한의 ‘최고 존엄’에 대한 모독이다. 수령제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서 최고 존엄에 대한 모독은 1호 범죄에 해당한다.

다음으로는 북한 체제에 대한 비난이나 무시다. 북한 사람들은 흔히 자존심이 세다고 한다. 북한 스스로 힘으로 이뤘다고 여기는 것에 대한 비난이나 무시는 북한 사람들의 자존심을 가장 크게 건드린다. 세 번째가 ‘남한’ ‘북한’ 용어 사용이다. ‘남한’ ‘북한’ 호칭 때문에 자주 티격태격하곤 했다. 이렇듯 ‘남한’ ‘북한’이라는 호칭은 최고 존엄이나 북한 체제의 자존심에 버금갈 정도로 북한이 예민하게 여긴다. 그런데 김여정 부부장이 '대한민국'이라고 칭한 것이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위원장이 7월25일 조국해방전쟁 참전 열사묘를 찾았다고 보도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

국가 인정 문제는 동·서독의 경우에도 매우 민감했다. 1972년 체결된 동·서독 기본조약에서 동·서독을 ‘동등한 자격의 원칙에 따른 상호 정상적인 선린관계’로 규정했다. 서독의 기본법은 ‘통일 완수의 사명’을 명시하고 있었다. 우리 헌법의 ‘평화적 통일’ 규정과 비슷한 문구다. 서독에서는 당연히 동·서독 기본조약이 서독의 기본법에 어긋난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김여정 부부장의 또 다른 역할?

서독 헌법재판소는 기본조약에 대해 동독에 대한 ‘특수한 형태의 승인’이라고 해석해 논란을 잠재웠다. 통일 지향성이 있다는 것이다. 서독은 동·서독 관계를 남북 기본합의서처럼 ‘특수관계’로 설정하려고 했다. 하지만 분리정책을 추구한 동독의 반대로 동독에 대한 국가승인을 내포한 ‘선린관계’로 합의했고, 헌법재판소는 이를 특수한 형태의 합의로 해석했다.

반면 동독은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 이후 1974년 헌법을 개정했다. 통일 조항을 삭제하고 내친김에 ‘2민족론’을 주장했다. 동독의 피셔 외무장관이 ‘사회주의 민족’과 ‘자본주의 민족’이라는 2민족론을 제기했다. 이 같은 2민족론은 서독과의 관계에서 동독의 위상이 약해지면서 동독이 택한 길이었다.

남북한 관계에서 국호 사용 여부가 민감한 것은 2개의 국가론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김여정 부부장이 민감한 문제를 건드린 것이다.

김여정의 현재 직함은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으로 추정된다. 2018년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김여정 부부장 부서에서 ‘만리마 속도전’이란 말을 만들었다”라고 했다. 이런 선동 용어를 만들고, 최고 지도자 띄우기와 주민 사상교육을 담당하는 부서가 노동당 선전선동부다.

김여정 부부장이 북한 권력의 전면에 나선 것은 2014년이다. 당시 스물다섯 살인 그의 호칭이 노동당 부부장이었다. 백두 혈통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초고속 승진이다. 이후 김여정 부부장은 북·미 정상회담과 남북 정상회담 등 남북 관계와 대미 외교무대에서 김정은 위원장 곁을 지켰다. 이때만 해도 김 부부장이 백두 혈통으로서 김정은 위원장의 비서실장 같은 역할을 겸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2019년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김여정 부부장은 미국이나 남한과 관련한 북한의 공식 메시지를 발표하는 일을 도맡았다. 대부분 험담과 막말이었지만, 그의 입을 통해서 북한은 대외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때마다 김여정 부부장은 ‘위임에 의해서’라는 전제를 붙였다. 당연히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위임받았다는 뜻이다.

김여정은 노동당 부부장 이외에도 한국의 NSC 상임위원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AP Photo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김정은 시대에 북한은 내부 의사결정 체계를 제도화해왔다. 김정일 시대와 다른 점이다. 김여정 부부장이 의사결정 체계를 통해서 결정된 사안을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위임받았다고 풀이하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아직 그런 의사결정 체계는 드러난 적이 없다.

가장 유사한 체계는 조선중앙통신이 2013년 1월27일 자로 보도한 ‘국가안전 및 대외부문 일꾼협의회’이다. 이 협의회에는 김정은 위원장을 비롯해 당·군·정부에서 군사·외교·치안을 담당하는 책임자 8명이 참석했다. 한국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비교하는 시각도 있지만, 상설조직이 아니라 일종의 태스크포스(TF)라는 분석이 유력했다. 그 후 이와 비슷한 조직이나 협의체는 드러나지 않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김여정 부부장의 역할은 두 가지로 추정할 수 있다. 하나는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으로서 대남, 대미 관계에 국한해 일종의 노동당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보다 더 위상이 높은 차원에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경우다. 이는 2013년에 ‘국가안전 및 대외부문 일꾼협의회’와 같은 조직이 상설화되고, 김여정 부부장이 이 협의회의 일정한 책임을 가지며 대외 발표를 담당하는 것이다. 2021년 1월, 노동당 8차 당대회 때 북한판 NSC 같은 조직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이와 관련해서 아직 확인된 것은 없다.

김여정이 노동당 부부장 외에 다른 직책을 맡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드러난 바는 없다. 다만 그의 역할과 발언으로 미루어보건대 한국의 NSC 상임위원과 비슷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지난 7월17일 김여정이 발표한 담화 내용은 파격적이다 못해 충격적이었다. 수십 년간 북한이 근본 문제로 제기해왔던 핵심 요구를 모두 수정해버린 것이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변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그 사실뿐이라는 말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이 그동안 북·미 회담이나 남북 대화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근본 문제로 제기한 것은 테러지원국 지정 철회, 주한미군 철수 문제, 한·미 연합훈련 중지 등이었다. 상황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지기도 했다. 또 주한미군 철수 문제에 대해선 비공식적으로는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 주둔의 필요성을 인정한 사례가 있었다. 한·미 연합훈련 중지는 문재인 정부 시절 북한이 다른 어떤 문제보다 가장 강력하게 한·미 양국에 제기했던 사안이다.

7월19일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미국의 오하이오급 핵추진 탄도유도탄 잠수함 켄터키함(SSBN-737)에 올랐다. ⓒ대통령실 제공

그런데 김여정이 이를 수정한 것이다. 김여정은 한·미 연합훈련, 미국 전략자산 전개, 주한미군 철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등의 사안도 협상 의제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런 모든 조치를 ‘가역적’이며 ‘시간 벌기’라고 규정해버렸다. 즉, 빠른 시일 안에 원상회복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조치를 가지고 거래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가령 한·미 연합훈련을 잠정 중단한다고 해도 20일이면 병력을 투입해 재개할 수 있다는 게 김여정의 주장이다.

북한은 이와 같은 사안이 가역적인 것에 불과하므로 미국이 북한에 요구하는 ‘완전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와 교환 불가를 선언한 셈이다. 김여정은 남북 대화와 북·미 대화가 어떻게 가능한지 그 조건을 밝히지 않았다. 미국의 전략폭격기와 전략핵잠수함의 출현, 공중정찰 행위, 한·미 핵협의그룹 출범 등을 비난하면서 압도적인 억제력을 가져나갈 것만 강조했다. 이제 북한의 군사적 공세가 시작됐다는 위협으로 담화를 마무리했다.

김여정의 이런 위협성 발언을 허투루 볼 수만은 없다. 이런 주장은 따지고 보면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 결렬이 그 기원이다.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4월1일부터 2019년 8월5일까지 친서 총 27통을 주고받았다. 김정은 위원장은 하노이 회담 직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4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도 엿보였다. 김정은 위원장이 하노이 결렬에도 불구하고 신뢰를 유지하게 된 데는 트럼프 대통령의 노련함도 작용했다.

2019년 2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했다. ⓒAP Photo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노딜’ 이후 20일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김정은 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냈다. 김일성 주석 생일(북한은 매년 4월15일 ‘태양절’로 기념한다) 축하와 두 사람이 앞으로 공동의 목표를 계속 견지하자는 제안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미련을 접지 못한 결정적 이유로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미련을 접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2019년 8월5일에 보낸 친서가 마지막이었다. 그 친서에서 2019년 6월30일 판문점에서 열린 3차 북·미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한·미 군사훈련이 실시되는 것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했다. 사실상 북·미 정상 간 대화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그로부터 두 달이 조금 지난 후 〈노동신문〉은 김정은 위원장이 백두산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백마를 타고 백두산 꼭대기에 올라 “또다시 세상이 놀랄 웅대한 작전”을 구상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의 웅대한 작전은 자력갱생(정면돌파)과 국방력 강화로 이어졌다. 자력갱생은 남북 대화 단절로, 국방력 강화는 각종 미사일 능력 강화로 귀결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우리국가제일주의’이다. 우리국가제일주의는 2017년 처음 등장했지만, 2019년부터 김정은 위원장 입을 통해서 공식화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남북 정상회담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바탕으로 북한의 미래 번영에 대한 내부 자긍심 다지기 차원이었다.

하지만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에는 남북 관계에서도 1국주의에 입각한 각자도생의 노선으로 우리국가제일주의 성격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2021년 1월 노동당 8차 당대회에서 노동당 규약에서 ‘우리민족끼리’를 삭제했다. 우리민족끼리는 아버지인 김정일 위원장이 ‘우리민족제일주의’에 입각하여 통일의 제1원칙으로 제시한 민족자주 노선이다.

8월18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이 열린다. 지난 5월 히로시마 G7 회의에서 만난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일본 총리, 윤석열 대통령(왼쪽부터). ⓒ연합뉴스

대한민국 국호 사용은 군사 공세의 시작?

김여정의 대한민국 호칭 사용은 남북한이 두 개 국가에 기초해서 평화롭게 공존하자는 느긋한 주장이 아니다. ‘군사적 공세’의 시작이고, 위험한 도발의 전주곡이다. 8월18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이 열린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 강화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그 이름이 어떻든 간에 한·미·일 3국의 핵억제협의체가 논의될 것이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한·미·일 군사협력체가 만들어질 것이다.

국민들은 일본과 교류 협력하는 것을 찬성한다. 하지만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고, 우리 영토에 대한 야심을 버리지 않는 일본과의 군사협력은 반대해왔다. 그동안 국민들이 지켜온 마지노선이 흐물거리게 될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북한은 그 틈을 군사적 공세의 기회로 삼을 것이다.

8월21일부터 한·미 연합훈련인 ‘을지 자유의 방패(UFS)’가 실시된다. 벌써 사상 최대 규모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UFS는 한·미 연합방위 태세를 유지하기 위한 방어적 성격의 연례 훈련이라는 것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방어적 성격의 연례 훈련은 북한의 군사적 공세와 맞물릴 수 있다. 한반도의 8월과 9월이 심상치 않은 이유다.

튼튼한 국방이 오히려 안보를 위협하게 되는 것이 국제정치에서 말하는 ‘안보 딜레마’다. 튼튼한 국방 태세는 평화 만들기를 위한 노력과 병행해야 한다. 그 길이 안보 딜레마에서 벗어나 우리의 안전을 보장한다. 지금 한반도에서는 평화 만들기의 첫걸음인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을 위한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김창수 (전 코리아연구원 원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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