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 지원 끊긴 ‘국산 1호 mRNA 백신’ 해외에 팔릴 판
정부 mRNA 임상지원 정책 단절에
아이진 ‘이지코비드' 투자유치 추진
글로벌 3상 자금 부족에 수혈 나서
해외 기업들과 기술수출 등 협의
국내에서 개발 속도가 가장 빠른 메신저리보핵산(mRNA) 코로나19 백신이 상용화를 위한 임상 3상 비용 부족으로 결국 해외에 팔릴 상황이다.
글로벌 백신 주권 확보는 물론 차세대 신약 플랫폼으로 각광받는 mRNA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의 정책자금 지원과 함께 개발이 시작됐지만 후속 지원이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중국에 이어 한국보다 늦게 mRNA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착수했던 일본까지 제품 개발을 완료한 가운데 바이오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일관된 지원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산 코로나19 백신 ‘이지코비드(EG-COVID)’를 개발 중인 코스닥 상장사 아이진(185490)은 다음 달 호주에서 임상 2a상을 마치는 대로 3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공동임상 연구 계약 또는 기술이전(라이선스 아웃)을 추진하고 있다. 아이진은 소액의 정책자금 외에 호주에서 진행 중인 임상 2a상에 자체 자금을 200억 원가량 투입했다. 하지만 1000억 원 이상이 투자돼야 하는 임상 3상은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없어 결국 외부 투자 유치가 불가피해졌다.
아이진 관계자는 “임상 2a상 결과를 기반으로 공동 임상이나 기술이전 등의 형태로 임상에 필요한 자금을 투자 받기 위해 국내외 기업을 물색하고 있다”며 “아직 국내 기업은 없고 몇몇 해외 기업이 먼저 제의해와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대로 해외 기업과의 계약이 성사되면 첫 국산 mRNA 코로나19 백신이자 mRNA 신약의 권한 일부 또는 상당 부분이 해외로 넘어가게 되는 셈이다.
현재 mRNA 백신 정책자금 지원은 사실상 단절된 상태다. 정부의 K바이오 백신펀드 조성도 수개월째 지연되고 있다. 미국은 정부 주도로 41조 원을 투입해 화이자·모더나가 신속하게 mRNA 백신 개발을 완료하고 플랫폼을 활용해 벌써 변이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백신 상용화와 혼합백신 임상에 착수했다. 중국은 올해 3월 mRNA 백신 개발을 완료했다. 아이진보다 반 년 이상 늦게 개발을 시작한 일본 다이이찌산쿄도 이달 2일 코로나19 mRNA 백신 ‘다이치로나’를 후생노동성에서 승인받았다.
아이진 관계자는 “국가신약개발재단의 코로나19 백신 개발 지원은 지난해 조기 종료됐고 mRNA백신사업단은 초기 물질 중심으로 소규모 지원을 하고 있다”며 “K바이오백신펀드가 조성되면 국가전략기술로 지정된 백신 상용화에 대규모 자금이 투입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장기간 답보 상태”라고 답답해 했다.
미국·중국에 이어 일본에서도 첫 메신저리보핵산(mRNA) 코로나19 백신이 허가됐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깜깜무소식이다. 일부 바이오 기업들이 임상을 진행하고 있지만 성과가 나오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여 해외 선진국과 비교하면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라는 평가다. 더구나 야심 차게 mRNA 백신 개발에 출사표를 던졌던 일부 기업들은 코로나19가 엔데믹에 접어든 후 개발을 지연하거나 축소했다. 정부 지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1000억 원 이상 들어가는 후기 임상까지 하는 데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어렵게 축적한 mRNA 백신 기술을 해외로 넘길지 고민하는 상황이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언젠가 다시 올지 모를 팬데믹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mRNA 같은 차세대 백신 플랫폼 개발을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놓고 파격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일본 다이이찌산쿄는 올해 초 mRNA 백신 생산시설을 설립한 데 이어 이달 2일 첫 mRNA 백신을 허가받았다. 반면 국내 제약·바이오사들은 mRNA 백신을 개발하고 있지만 수년째 초기 임상에서 멈춘 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한미약품(128940)·GC녹십자(006280)·에스티팜(237690) 등이 주축이 된 ‘차세대 mRNA 백신 플랫폼 기술(K-mRNA) 컨소시엄’은 2021년부터 코로나19 백신 후보 물질 ‘STP2104’에 대한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다. 2021년 출범 당시 2년 이내 상용화를 목표로 세웠지만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는 모양새다.
보령바이오파마·큐라티스(348080)·아이진·진원생명과학(011000)이 참여한 ‘백신안전기술지원센터 인프라 활용 mRNA 바이오 벤처 컨소시엄’도 출범 이후 별다른 활동이 없다. 당초 지난해까지 mRNA 백신 조건부 허가를 받고 장기적으로 연간 10억 회분 규모의 생산능력을 갖춘다는 목표였다. 컨소시엄에 참여한 바이오 업체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이 잦아들면서 컨소시엄 활동이 흐지부지됐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코로나19 백신 컨소시엄이 아닌 mRNA 백신 컨소시엄이기 때문에 향후 협력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mRNA 백신 생산능력을 확보하기 위한 인프라 작업도 다소 더디다.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는 모더나 mRNA 백신의 후공정(DP)을 맡고 있다. 지난해 5월 mRNA 원료의약품(DS)에 대한 생산설비 준비를 마치고 미국 바이오 기업 그린라이트의 mRNA 임상용 백신 시험 생산을 완료했지만 수주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국내 mRNA 백신 개발이 늦어진 것은 정부 지원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은 정부가 국가 백신 개발 및 생산 전략을 채택하고 5개 백신 개발에 1700억 엔(약 1조 5000억 원)을 투입했다. 백신 연구를 위한 인적 및 재정적 지원과 신속한 규제 프로세스 개선을 추진하면서 백신 개발을 완주할 수 있었다. 다이이찌산쿄의 mRNA 백신 공장은 정부 지원으로 2027년까지 증설하면서 글로벌 수준의 생산능력을 지닐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코로나19 mRNA 백신 개발에 319억 달러(약 41조 원)를 투자했다. 대부분이 백신 구매 비용이고 임상 지원액은 23억 달러(약 3조 원)다.
반면 한국 정부는 mRNA 백신 임상 지원 예산으로 105억 원을 투입하는 데 그쳤다. 임상 3상만 해도 약 1000억~2000억 원이 드는 점을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백신 개발 업체들은 코로나19가 엔데믹에 접어들면서 피험자 모집과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며 임상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지난해 출범한 mRNA 백신사업단이 2025년까지 mRNA백신 플랫폼을 확보하기 위해 총 900억 원 규모의 연구비를 투입하겠다며 뒤늦게 나섰다.
mRNA 같은 차세대 백신 플랫폼을 확보하려면 민간의 투자와 정부의 리스크 분담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오기환 한국바이오협회 산업정책본부장은 “미국은 미래 팬데믹 대비를 위한 컨트롤타워조직(OPPR)을 출범시켰고 일본은 백신 연구를 위한 지원, 신속한 규제 프로세스 등을 통해 mRNA 기반 코로나19 백신을 가진 나라가 됐다”며 “코로나19 변이주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미래에 있을 팬데믹에 대비하려면 mRNA 같은 플랫폼 백신 개발은 정책의 최우선 순위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개발과 구매에 있어 주도적으로 리스크를 분담할 수 있고 민간의 생산시설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인할 수 있는 지원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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