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보듯 과거와 마주하는 남녀…영화 '너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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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치 좋은 바닷가에 캠핑카를 대놓고 생활하는 사진작가 정후(우지현 분)는 어느 날 눈에 띈 영(옥자연)의 뒷모습을 허락도 안 받고 카메라로 찍었다가 셔터 소리를 들은 영에게 들킨다.
영은 정후에게 불쑥 "재워줄 수 있어요?"라고 묻고, 정후는 "사진 모델이 돼주실래요?"라고 제안한다.
영은 캠핑카에서 자기 사진을 다른 여자들의 사진과 같이 걸어놓은 게 불편하다고 정후에게 툴툴대며 속내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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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경치 좋은 바닷가에 캠핑카를 대놓고 생활하는 사진작가 정후(우지현 분)는 어느 날 눈에 띈 영(옥자연)의 뒷모습을 허락도 안 받고 카메라로 찍었다가 셔터 소리를 들은 영에게 들킨다.
두 사람이 입씨름을 벌이는데 소나기가 쏟아지고, 영은 정후의 캠핑카에서 비를 피한다.
영은 정후에게 불쑥 "재워줄 수 있어요?"라고 묻고, 정후는 "사진 모델이 돼주실래요?"라고 제안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캠핑카에서 동거하고, 영은 정후의 일을 돕게 된다.
이상준 감독이 연출한 '너의 순간'을 여느 로맨스물과 구별하게 하는 건 사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점이다.
영은 정후의 아버지도 유명 사진작가란 걸 알게 되고, 정후 몰래 그를 만나 사진을 배운다. 그러면서 정후와 아버지가 왜 소원하게 지내는지 조금씩 알게 된다.
세 사람은 사진으로 소통한다. 정후는 영을 오래된 사진관으로 데려가 빛바랜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돌아가신 어머니 이야기를 한다.
영은 캠핑카에서 자기 사진을 다른 여자들의 사진과 같이 걸어놓은 게 불편하다고 정후에게 툴툴대며 속내를 드러낸다. 정후의 아버지는 영이 찍은 사진에 담긴 아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인생은 끊임없이 흐르지만, 사진은 어느 한순간을 포착한다. 대개는 사진으로 남겨놓고 싶다는 마음이 들 만큼 아름다운 순간이지만, 늘 그렇지는 않다. "사진이 꼭 행복한 순간만 보여주는 건 아니에요. 어떤 사람에겐 끔찍한 순간을…"이라는 정후의 말처럼 말이다.
누구나 좋은 기억만 가져가려고 하고 나쁜 기억은 잊어버리려고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그렇게 우리는 과거를 회피할 수 없고, 그걸 치유하는 과정엔 고통이 따른다. 정후와 영,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부산의 바닷가에서 촬영한 이 영화엔 아름다운 장면이 많다. 정후와 영이 석양으로 물든 해변에서 뛰놀고 대화하는 장면은 잘 만든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두 사람이 바닷가 마을의 이곳저곳을 돌면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인형 가게에서 사진을 찍는 장면도 영상미가 돋보인다.
둘의 대화는 연인의 대화가 가지는 미묘한 느낌을 담고 있다. 처음 만나 호감을 가진 두 사람이 어색함 속에서도 어떻게든 관계를 이어가려고 주고받는 말을 듣다 보면 첫사랑의 기억이 떠오를 법하다.
이완민 감독의 '사랑의 고고학'에서 조용한 성격의 영실 역을 맡았던 옥자연은 '너의 순간'에선 밝고 적극적인 영을 연기하며 새로운 느낌을 선보인다.
'더스트맨'(2021), '검은 여름'(2020), '춘천, 춘천'(2018) 등 독립영화로 주목받은 우지현은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을 품은 정후의 내면을 사소한 표정이나 말투 하나로 표현해낸다.
'너의 순간'은 이상준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제2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한국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16일 개봉. 83분. 12세 관람가.
ljglor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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